본문 바로가기

[전영기 칼럼니스트의 눈] 쓰레기에서 장미꽃을 피우는 동해시의 산업재생

중앙일보 2020.09.29 00:32 종합 20면 지면보기

쌍용양회 무릉3지구서 태어난 호수 2개

동해시 석회석 폐광지인 무릉3지구의 과거, 현재, 미래. 2020년 폐광지 빈 터에 K1 거대 호수가 생겨난 모습. [사진 동해시]

동해시 석회석 폐광지인 무릉3지구의 과거, 현재, 미래. 2020년 폐광지 빈 터에 K1 거대 호수가 생겨난 모습. [사진 동해시]

어리석은 개미는 자신의 덩치가 작아 말처럼 빨리 달릴 수 없음을 한탄하지만 현명한 개미는 작은 몸집 덕분에 말 등에 올라타 멀리 내달릴 수 있음을 자랑한다. 동해는 한국의 가장 큰 바다이나 동해시는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에 불과하다. 동해시는 과거 (주)쌍용양회로 상징되는 시멘트 생산 기지였다. 지금은 대기 오염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청정지역이 되었다. 지난 22일 첫 확진자가 발생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한국의 242개 시·군·구 가운데 8개월간 코로나 환자 한 명 없었던 곳이다. 우연히 일어난 일은 아니다. 산업화 시대의 지정학적 숙명을 인간의 지혜와 선택으로 타개하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8개월간 ‘코로나 환자 0’ 청정 도시
석회석 40년 파먹은 곳에 생명수가
호수 지키려 복구 명령권 사용 절제
기업도 호응, 40년 무상사용권 넘겨

동해시 서쪽 ‘무릉 3지구’(삼화동 산 110의 3 일대)라는 곳을 가보니 쓰레기에서 장미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산업화 시대의 폐기물을 정보화 시대의 자산으로 재탄생시키는 이른바 산업재생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현장이다. 그곳에서 동해시청 김순기 전략사업팀장을 만날 수 있었다. 김 팀장에 따르면 2016년까지 쌍용양회는 이곳 산악 지대에서 지천으로 깔린 석회석을 캐 시멘트 원료용 가루를 생산했다. 40여년간 석회석을 파먹어 온 산이 허옇게 파였다. 그런데 120만㎡ 넓이 옛 노천광 지역 두 개의 깊숙한 구덩이에 저절로 호수 두 개가 생겼다. 폐광된 쇄석장 바닥에서 용출수가 솟아나고 주변의 계곡물들이 유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인공 호수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2016년 폐광될 때 사진으로 윗 부분에 K1 호수가 생기기 전 허옇게 깊숙이 파인 빈 터가 보인다. [사진 동해시]

2016년 폐광될 때 사진으로 윗 부분에 K1 호수가 생기기 전 허옇게 깊숙이 파인 빈 터가 보인다. [사진 동해시]

둘 중 K1으로 불리는 큰 호수는 둘레가 1.5㎞, 수심이 20m에 이른다. 제주 백록담의 분화구 둘레가 1.7㎞, 포천 산정호수의 심저가 23.5m라고 하니 무릉 3지구의 폐광 호수 두 개(K1, K2)는 아마 한반도 남쪽의 백두대간 줄기에서 가장 늦게 태어난 가장 규모가 큰 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수질도 석회석을 다 들어낸 뒤 암반 아래서 솟거나 심심산천을 거쳐 내려온 물들이 합수한 것이어서 청량하기 그지없다. 동해시청에 비치된 수질검사서를 확인해 봤다. 용존산소,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 대장균수 등에서 두 호수는 7개 등급 가운데 일반적인 정수처리로 생활용수 사용이 가능한 생활환경기준 2급수에 해당했다. 육안으로도 산천어, 쏘가리 등이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잿빛 폐광의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감돌던 산중에 갑자기 펼쳐진 청명한 호수의 풍광은 충격이자 반전이었다.
 
무릉계곡의 산업재생 프로젝트는 2027년까지 10년 계획으로 짜여 있다. 원칙적으로 쌍용양회는 폐허처럼 변질된 빈터에 흙을 다시 붓고 나무를 심어 40년 전 산하 그대로 원상 복귀시켜야 했다. 법령에 따라 시는 복구 명령권을 갖고 있었다. 분쟁의 소지가 컸다. 그러나 심규언 동해시장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인공 호수를 그대로 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인공 호수를 또 하나의 자연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기업과 지방정부는 숱한 격론과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호수는 그대로 두고 산지만 원상회복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친환경 문화재생의 창조적 기반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2017년 쌍용양회와 동해시 사이에 상생협약이라는 것이 체결됐다. 상생협약에 따라 동해시가 쌍용양회에 대해 원상복구 명령권을 선택적으로 행사하였고, 쌍용양회는 사유지인 무릉3지구의 사용권을 40년간 동해시에게 넘기는 것으로 협력하였다.
 
2027년도 산업재생 사업이 완료됐을 때 조감도. [사진 동해시]

2027년도 산업재생 사업이 완료됐을 때 조감도. [사진 동해시]

3년이 지난 2020년, 무릉3지구 환골탈태 계획이 구체화하고 착실하게 진행되자 쌍용양회는 동해시에 폐광지의 사용권을 아예 기부채납키로 했다. 심규언 동해시장은 “환경 문제는 복고주의나 낭만주의처럼 과거로 돌아가는 게 능사가 아니다. 그랬다면 기업은 원상 복구의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파산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고, 지방정부도 보람없이 법령에 적혀있는 권한만 휘두르다 허무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적 조건을 따져 가며 미래 가치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 환경 문제에 접근하는 올바른 방식”이라는 게 심규언 시장의 철학이었다.
 
산업재생은 종료된 산업의 인프라나 결과물을 허물지 않은 채 적절한 변형이나 기술적 혁신을 가해 추억이나 교육, 치유, 관광 등 다른 종류의 가치 있는 공간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말한다. 무릉3지구 산업재생의 키워드는 치유다. 한국의 산업화를 선도한 시멘트 생산을 위해 무릉계곡이 수십년간 상처 입고 희생했으니 이제 퇴역 후엔 힐링 공간으로 새로 태어나게 한다는 컨셉트다(고석민 동해시청 전략사업과장). 이런 계획이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이제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중앙정부의 예산도 지원되고 있다. 일단 석회석을 캤던 곳엔 흙을 깔아 라벤더 꽃밭으로 만들기로 했다. 폐광지를 항공사진처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스카이 글라이더라는 짚라인 시설을 추진하고 있다. 폐쇄석장 절벽에는 2차 산업의 상징인 굴착기 형태의 전망대를 설치할 예정이다. 잘게 부서진 석회석 가루를 산악에서 항구까지 콘베이어벨트로 운반하던 통로엔 북카페나 갤러리가 들어서 환경 교육장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곳 산업재생의 하이라이트는 K1, K2 호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고 할 수 있다. 동해시는 규모가 방대하고 자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 중앙정부와 민간자본의 유입을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사멸에서 생명이 솟아난 한 폭의 그림인데다 스토리의 울림이 큰 만큼 그 모습 그대로 두는 것도 가치가 있을 수 있겠다. K1, K2는 아무런 작용을 가하지 않을수록 거대한 작용이 일어나는 ‘무위의 위(無爲之爲)’ 혹은 ‘오래된 미래’ 효과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해시는 수십년간 쌍용양회의 무릉3지구를 다루면서 대기 오염을 낮추고 지역 사회에 기업이 기여토록 하는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했다. 무릉3지구 인근의 무릉1지구와 2지구는 현재 쌍용양회가 석회석을 캐 시멘트 원료를 만들고 있는 곳이다. 지난 4년 사이만 비교해도 일반 먼지, 미세먼지를 생성시키는 질소산화물, 염화수소가 각각 37.8%, 29.9%, 273.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동해시 환경과). 동해시는 환경 오염의 결과를 기계적으로 처벌하는 방식이 아니라 환경 오염원을 설득하고 압박하고 조정하는 스킬을 사용했다. 오염의 원천과 발생 과정에서 개입하는 방식이다.
 
동해시엔 쌍용양회 말고도 DB메탈(제련공장), 동서발전과 GS동해전력(석탄발전소) 등 산업시설이 들어섰으나 주민과 큰 마찰 없이 한국 최고의 청정 대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디지털 환경기술의 발전과 엄격한 예방 체계, 오염기업을 다루는 노련한 행정경험이 어우러진 덕분이다. 그저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고 틈만 나면 기업을 때려잡을 궁리나 하는 듯한 현재 중앙 권력의 실세들이 배울 게 많은 곳이 동해시이다.
 
심규언 “쌍용양회~동서발전~GS동해전력 환경여행 구상”
심규언 동해시장

심규언 동해시장

심규언 동해시장의 트레이드 마크는 재생과 힐링이다. 과거를 버리지 않고 보존하고, 다듬어서 가치를 높이자는 게 그의 경영 철학이다. 심 시장은 무릉3지구의 변신 작업을 지휘하기 전인 2012년 시장권한대행 시절에도 인구 유출로 적막했던 묵호 논골담길을 골목 재생의 표본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논골담길은 1980년대까지 오징어와 명태로 황금어항을 자랑하다 어획량 급감 등으로 20년 이상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곳 청년 작가들의 상상력을 흡수해 논골담길에 벽화를 그리고, 집집마다 겉은 그대로 둔 채 속을 이노베이션하며, 동네 꼭대기에 ‘바람의 언덕 등대’를 짓는 등 도시문화 재생 사업에 몰두했다. 중앙정부 지원금까지 포함해 100억원을 집중 투자했다. 오래된 마을이 쾌적한 카페와 도서관, 산업화 시대의 추억을 소환하는 힐링과 연인의 거리로 변하면서 논골담길은 동해시 관광의 명소가 되었다. 멀리 밤바다의 고깃배들은 논골담길을 고층 아파트 지역으로 착각하곤 한다. 심 시장은 “논골담길의 경험이 재생과 치유에 눈을 뜨게 해줬다”고 했다.
 
무릉3지구 이후 심규언 시장의 구상은 쌍용양회~동서발전~GS동해전력~DB메탈의 오염 시설 내부를 학생, 일반인의 환경교육 여행지로 노출시킨다는 것이다. 일종의 산업관광인데 기업은 철저한 오염 방지 기술의 개발 및 도입에 주력하고, 학생들은 현장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기회가 되지 않겠느냐는 게 심 시장의 생각이다. 관건은 이들 대기업을 설득해서 협조를 받아 내는 일이다. 기업과의 대화 기술은 심 시장의 장점 목록에 들어 있다. 그는 “과거의 영광과 오욕, 현재의 문제와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미래 가치를 추구하다 보면 사람들의 마음에 재생과 치유가 일어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고 말한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