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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혁의 데이터이야기] 데이터 분석가는 통역가이자 중재자 돼야

중앙일보 2020.09.28 00:23 종합 25면 지면보기
유혁 윌로우 데이터 스트래티지 대표

유혁 윌로우 데이터 스트래티지 대표

개와 고양이가 상극인 것은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렇다. 고양이가 꼬리를 치켜세우는 건 화가 났다는 뜻이지만, 개는 반대로 기분이 좋을 때 꼬리를 친다. 그런 조우는 끝이 좋을 수 없다. 기업 내에서 IT와 마케팅 부서의 관계가 그런 식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IT쪽 사람들은 마케팅 쪽 사람들이 늘 구름 잡는 얘기나 한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마케팅 전문가들은 IT부서에서 원하는 정보를 얻는 것이 힘들고 복잡한 과정이라고 여긴다. 실제로 그 두 팀이 간단하다고 할 수도 있는 문제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 사고와 대화의 방식이 달라서 그런 경우가 많다.
 

부서 갈등 원인은 소통 부재
분석팀은 다양한 입장 포용해
데이터에 총체적 접근 필요
독립 분석팀이 객관적 판단해야

예를 들어 마케터가 고객 가치를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우수 고객을 분석하고 그와 비슷한 성향의 다른 고객들을 타깃으로 삼으려 한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데이터를 수집 관리하는 IT부서에 우수고객 명단과 그에 딸린 정보를 넘겨 달라고 하면 그 요구 자체가 분란의 소지가 될 수 있다. 막연히 우수고객이라니? 그걸 무슨 기준으로 정할 것인가? 거래액이 많은 고객? 자주 방문한 고객? 적립 포인트가 많은 고객? 할인 여부를 굳이 따지지 않는 고객? 만약 고액 거래를 했던 고객이 최근에는 아무 활동도 하지 않았다면? 쓸 수 있는 정보가 많으면 질문도 자세히 해야 한다. 기술적인 사람들은 컴퓨터에 더 가깝기 마련이며, 그들은 기계가 ‘아직’ 모호한 표현은 제대로 못 알아듣는다는 걸 안다.
 
이렇듯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중간에서 사업 목적과 관련된 요구 사항들을 논리적으로 해석해주는 중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어느 쪽에서도 고맙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역할은 데이터 분석팀이 맡아야 오해와 분란이 최소화된다. 거꾸로 말하면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은 사업과 테크놀로지의 언어에 두루 능통해야 하며, 기술적이고 수학적인 업무 뿐 아니라 통역사의 역할도 마다하면 안 된다.
 
데이터이야기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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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 하나만으로도 데이터 전문가들이 IT나 마케팅 부서에 부속되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기업들은 비전문가들에게 생소하고 기술적이라고 여겨지는 직책들을 한 곳으로 몰아 놓는다. 반면에 데이터를 오랫동안 다뤄 온 조직들은 데이터와 분석의 총책을 독립부서로 둔다. IT는 인프라와 기술적 요소를 책임지는 부서로, 데이터 관리·분석팀은 데이터에서 인사이트를 도출해 내는 부서로 서로 동등하되 다른 전문적 역할을 가지는 것이다.
 
데이터 시스템과 인력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조직 내 정보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서 그런 경우가 많다. 게다가 데이터란 정체된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목적에 따라 그 형태가 유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데이터를 많이만 모아 놓았다고 저절로 가치가 생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데이터가 무슨 플랫폼에 있느냐, 어떤 툴셋으로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느냐 등의 문제를 넘어선 것이다.
 
영화를 제작할 때 배우들이 훌륭하고 촬영만 잘하면 좋은 작품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각본·편집·음악·음향·CG·배경 등 영화를 망칠 다른 요소들은 많다. 영화감독은 그 모든 요소를 꿰뚫어 볼 뿐 아니라 그 완성된 작품이 제작자의 의도와 관객의 입맛에 맞느냐 까지도 늘 고려해야 한다. 만약 기술적인 면에 치중하는 촬영감독에게 총감독의 일까지 맡으라고 하면 영화는 아름답지만 지루한 장면의 연속이 될 수도 있다.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그런 감독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은 데이터와 분석 관련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과연 어떤 일을 해야 조직 전체에 도움이 될지, 분석 결과를 타부서들이 어떻게 활용할지, 효율성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향상시킬지에 대해 늘 고민하는 비즈니스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다. 만약 중역들의 몰이해로 인해 독립 분석팀의 가치가 평가절하되어 그것이 IT나 마케팅 등 다른 부서에 종속되면 축적된 데이터를 가지고 무슨 일을 어떤 순서로 해야 사업에 이득이 될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중재자도 잃게 될 수 있다.
 
데이터를 다루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기술적 난관의 극복이 아니라 개와 고양이 사이 같은 문과와 이과적 감성의 중간에서 논리적 문제 제기를 통해 가시적 성과로 이어지는 실용적 과제를 내는 일이다. 중재자란 늘 외롭고 피곤한 자리지만 정보 분석가들이 피할 수 없는 역할이다.
 
유혁 윌로우 데이터 스트래티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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