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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민 정서에 불지르는 ‘김정은 비호’

중앙일보 2020.09.28 00:12 종합 30면 지면보기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살해됐는데도 책임 있는 친여권 인사들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사실상 찬양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북한군이 바다에서 실종된 우리 국민을 구조하기는커녕 총으로 사살한 뒤 불태운 반인륜적 행위다. 피살된 이씨는 해양수산부 공무원으로 바다에 빠진 뒤 부유물에 의존해 30여㎞를 표류했다. 북한군에 발견됐을 땐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을 것이다. 북한은 국제 규범에 따라 조난자를 구조했어야 했다. 더구나 그는 비무장 상태였다. 김 위원장은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사흘이 지나서야 사과성 전통문을 보냈다. 사람을 죽인 뒤 기껏 ‘미안하다’는 식이었다.
 

유시민, 김정은에 “계몽군주 같다”
정세현, 불태운 만행에 ‘방역 소각’

그런데도 일부 인사들은 요설(妖說)에 가까운 황당한 표현으로 북한의 잔혹한 행위에 참담해진 국민 정서에 불을 질렀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김 위원장을 ‘계몽군주’에 빚댔다. 유 이사장은 지난 25일 유튜브를 생중계하던 중 김 위원장의 통지문이 알려지자 “(신속한 사과는) 우리가 바라던 희소식”이라며 “(김 위원장이) 계몽군주 같다”고 말했다. 함께 출연한 정세현 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김 위원장이) 통 큰 측면이 있다”고 치켜세웠다. 북한이 이씨의 시신을 해상에서 불태운 만행에 대해서도 “남은 잔여물에 대해 방역 규정에 따라 소각 조치했다면 이해할 수 있다”고 두둔했다. 북한의 반인륜적 행위에 면죄부를 줬다. 대한민국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는 그의 경력이 의심스럽다. 심지어 이날 유튜브 참석자들은 북한의 통지문에 기뻐한 듯 키득거리기도 했다. 국민이 희생됐는데 어찌 웃음이 나올까.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같은 날 국회에서 “(북한 최고지도자가) 한 전문에 ‘미안’을 두 번 사용한 것은 처음”이라고 김 위원장을 비호했다.
 
온 국민은 북한의 비인간적인 만행에 치를 떨고 있다. 이번 사건에 김 위원장의 허가나 지시가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에게 총체적인 책임은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에게 만행을 규탄하고 진상 규명 및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도 김 위원장을 ‘계몽군주’니 ‘통 큰 지도자’ 등으로 칭송하는 이들의 정신 상태에 분노를 넘어 슬프기까지 하다. 이러니 SNS에서 “참담하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짝사랑에 김정은이 한국인 총격 사살로 화답했다”는 비난이 거세다.
 
국민이 희생되는 동안 청와대와 정부, 군은 아무런 조치 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일부 정치권 인사는 북한 감싸기에 호들갑을 떨고 있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도록 무엇이 잘못됐는지 먼저 반성하고 북한에는 책임을 물어야 정상적인 국가이고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수 있다.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편드니 북한이 진정성 있게 공동 조사에 응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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