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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이 거기서 왜 나와”…정치권이 유독 위인 집착하는 이유

중앙일보 2020.09.27 06:01
올해 뉴스에선 유난히 역사 속 위인들이 언급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픽댓]히스토리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조광조. 정조, 안중근 의사 등 내로라하는 한국의 위인들이 총출동했죠. 소환된 무대가 여야의 정쟁이라는 점은 다소 씁쓸했습니다. 올해 정치권의 싸움에 불려 나온 위인들은 누구였는지, 그리고 정치권은 왜 이렇게 위인에 집착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중근을 소환한 장관 아들의 군 복무

안중근(왼쪽) 의사가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과정에서 연해주 한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최재형 선생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중앙포토]

안중근(왼쪽) 의사가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과정에서 연해주 한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최재형 선생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중앙포토]

최근 가장 뜨거운 논란 중 하나는 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의 휴가 의혹이었습니다. 여야가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이 16일 논평 중 안중근 의사를 언급해 논란이 됐습니다. 추 장관의 아들 서모씨의 군 복무를 안중근 의사의 ‘위국헌신(爲國獻身)’에 비유했기 때문이죠. 
무릎 수술을 받은 서씨는 현역 카투사로 복무했는데, 휴가 특혜 여부를 놓고 여야의 공방이 치열합니다. 야당에선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추 장관이 부적절하게 아들의 군 복무 문제에 개입했다고 공격하지만, 여당에선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가 그 정도도 못하느냐’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자주독립의 열망을 알린 뒤 순국한 위인입니다. 또 옥중에서 ‘동양평화론’ 등을 저서로 남겨 정신적으로 많은 감화를 주기도 했습니다.
현장풀) 순흥안씨대종회(회장 안덕주) 및 안중근 의사 유족, 안중근아카데미총동문회(회장 최기홍), 안중근의사홍보대사 등 20여명이 21일 국회를 방문,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서모씨의 군 복무를 안중근 의사의 '위국헌신'에 비유한 더불어민주당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박성준 원내대변인의 의원직 사퇴, 당 대표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현장풀) 순흥안씨대종회(회장 안덕주) 및 안중근 의사 유족, 안중근아카데미총동문회(회장 최기홍), 안중근의사홍보대사 등 20여명이 21일 국회를 방문,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서모씨의 군 복무를 안중근 의사의 '위국헌신'에 비유한 더불어민주당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박성준 원내대변인의 의원직 사퇴, 당 대표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에 대해서 안중근 의사 가문인 순흥 안씨 종친회와 순흥 안씨 출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망언이라며 맹렬히 비난했고, 여당 안에서도 안중근 의사까지 끌어들인 건 지나쳤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결국 박성준 대변인이 사과하며 상황은 일단락됐죠.  
 

이순신이 관노와 잠자리를?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관계자들이 새봄을 맞아 이순신 장군 동상 물청소를 하고 있다. 2020.4.9/뉴스1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관계자들이 새봄을 맞아 이순신 장군 동상 물청소를 하고 있다. 2020.4.9/뉴스1

우리 역사에서 '성웅(聖雄)'이라고 평가받는 이순신 장군도 여러 차례 소환이 됐습니다. 
지난 6월, 안병용 의정부시장은 당시 친형 강제입원 관련 허위사실 공표혐의로 기소돼 대법원 판결을 앞뒀던 이재명 경기지사를 옹호하며 이순신 장군에 빗댔습니다. 안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선조에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임진왜란이고 이를 극복하는데 일등 공신은 이순신"이라며 "이재명을 대비해 떠올려본다"고 썼지요. 임진왜란 때 왜군을 수차례 물리쳤지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모함에 휘말려 백의종군한 이순신 장군과 각종 논란으로 재판까지 받게 된 이 지사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한 달 뒤 또 세상에 불려 나왔습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졌을 때입니다. 박 전 시장을 옹호하는 네티즌이 ‘이순신 장군도 관노(官奴)와 잠자리를 했는데, 그것도 문제가 되느냐’는 식의 문제를 제기했고, 이를 두고 논란이 확산했습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 등의 영향으로 이순신이 전쟁 중 관노와 동침했다고 널리 알려진 것도 사실입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중앙포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중앙포토]

하지만 전문가들은 『난중일기』에 이러한 내용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문제가 된 부분은 1597년 4월 21일 자 『난중일기』 내용 중 “저녁에 여산의 관노의 집에서 잤다(夕宿于礪山官奴家)”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노(奴)’는 남자 종을 뜻하고 ‘비(婢)’가 여자종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이 관에 속한 남자종의 집에서 숙박했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지적입니다. 
 
불명예스러운 사건과 연계됐지만 그나마 이번 기회를 통해 '이순신 관노 동침설'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을계기가 됐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할까요.  
 

정조=문재인인가 박정희인가

조선 22대왕 정조 [중앙포토]

조선 22대왕 정조 [중앙포토]

조선 시대의 이상적 군주로 평가받는 정조도 정치권의 호출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4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학술회의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정조를 잇는 지도자로 추켜세운 데 이어, 최근 인터뷰에서도 민주당의 장기 집권을 주장하며 비슷한 주장을 다시 내놨습니다. 
이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야무진 착각"이라며 "조선의 왕 중에서 굳이 문 대통령에 가까운 인물을 찾자면, 정조가 아니라 차라리 선조일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죠.
 
정조에 비유된 원조 대통령을 꼽자면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작가 이인화는 1990년대 정조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다룬 소설 『영원한 제국』을 통해 박정희 향수론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이후 이인화는 박정희를 모델로 쓴 소설 『인간의 길』을 통해 이러한 정서를 다시 한번환기했죠. 
박정희 전 대통령 [중앙포토]

박정희 전 대통령 [중앙포토]

 
정조가 이처럼 진영을 가리지 않고, 지도자의 모델로 소환되는 것은 붕당정치의 혼란 가운데서도 개혁을 강하게 추진했던 지도력을 높이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조의 리더십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추앙받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놓고 대한 이견도 있습니다. 정조는 강력한 1인 군주체제를 만들고자 했던 국왕이기 때문에 협치보다는 독주를 옹호하는 데 활용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죠. 
 

조국의 뿌리(?)를 찾아서

 
감찰 무마 의혹 사건 등으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20.9.11 연합뉴스

감찰 무마 의혹 사건 등으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20.9.11 연합뉴스

조상을 찾아주는 과정에서 논란이 생긴 일도 있습니다.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얼마 전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남명 조식 선생의 직계 후손이라고 주장했다가 창녕 조씨의 조식 선생 집안에서 “전혀 사실 아니다”라고 반박당했습니다. 같은 창녕 조씨이기는 하지만 직계 후손은 아니라는 것이죠. 전주이씨라고 해서 모두 세종대왕의 직계 후손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죠. 
 
남명 조식은 우리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조선의 붕당 중에서 북인에서 종주로 받드는 지도자였습니다. 글공부뿐만 아니라 무예도 강조하며 평소에도 칼을 차고 다니고, 병법에도 해박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제자 중에선 곽재우·정인홍 등 의병장이 다수 나왔고, 임진왜란 직후 북인은 여당으로 올라서는 배경이 됐습니다. 
 
남명 조식이 강학을 했던 김해 산해정 [중앙포토]

남명 조식이 강학을 했던 김해 산해정 [중앙포토]

한편 황 최고위원은 3월에도 조 전 장관을 조선 사림의 지도자 조광조에 비유해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이때도 조광조의 가문 한양 조씨 집안에서 거세게 항의해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겼죠. 
 

역사 속 위인 집착하는 이유

정치인들이 역사 속 위인을 자신에 빗대는 건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세종대왕은 조선을 건국한 전주이씨 집안을 고대 중국에서 이상적 왕실로 칭송받는 주나라 왕실에 비유하는 『용비어천가』를 남겼습니다. 이성계가 변방의 한미한 무장 가문 출신이기 때문에 이런 홍보와 선전이 필요했던 것이죠. 
또 주몽은 자신을 해모수의 아들이자 강의 신 하백의 외손자라고 했고, 고려를 건국한 왕건에 대해선 당나라 황제의 후손이라는 전설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즉, 정치인이 어떤 역사적 위인에 빗대거나 권위를 빌려오는 것은 전근대 사회에서 정치적 정통성이 부족할 때 흔히 썼던 방식입니다. 또는 지도자가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을 설득하는 도구로써 역사 속 위인을 끌어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다지 바람직하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자칫 논리와 설득보다는 권위에 호소하며, '내가 정의'라는 독선을 옹호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최근에 미국의 정치인들이 정쟁을 벌이면서 자신들을 링컨이나 루스벨트에 비유했다든지, 또는 영국에서 처칠을,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을 정쟁의 도구로 끌어왔다는 기사를 접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위인 소환은 우리 정치권이 딱히 내세울 업적이 없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과거 역사 속의 누군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당당한 정치인으로 국민에게 기억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유성운·김태호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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