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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 군, 특이 동향 놓치고 피살 후에도 엉뚱한 곳 수색

중앙선데이 2020.09.26 00:32 705호 5면 지면보기

공무원 북 피격 사망 - 구멍 뚫린 ‘서해전선’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사살된 북한 황해남도 등산곶 해안과 가까운 인천 옹진군 연평도 부근 에서 25일 해군 고속정이 기동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사살된 북한 황해남도 등산곶 해안과 가까운 인천 옹진군 연평도 부근 에서 25일 해군 고속정이 기동하고 있다. [뉴시스]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모(47)씨가 북한군에 피격된 이후 합동참모본부가 연평도 주둔 부대를 검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군 내부에선 ‘경계 태세 실패’를 추궁하고 나선 것이라는 의견과 ‘책임 떠넘기기’ 성격이라는 해석이 갈리고 있다.
 

합참 “일찍 알았다면 군 작전 고려”
야전선 명령 안 내린 지휘부에 불만

전문가 “대북 눈치보기로 안보 실패”
국방부 “군사위기 고조 안되게 관리”

25일 군 당국에 따르면 합참 전비태세검열단은 연평도 주둔 해군과 해병대 부대에 대한 검열을 23~25일 실시했다. 전비태세검열단은 전투 준비 태세와 경계 태세의 잘잘못을 점검하는 곳이다.
 
익명의 군 소식통은 “지난 22일 북한 등산곶 앞 해상, 즉 서해 북방한계선(NLL) 3~4㎞ 북쪽 지점에서 북한 수산사업소 소속 어업지도선과 북한군 단속정이 이씨를 검문하려고 모였다”며 “그런데도 해군과 해병대는 이 같은 특이 동향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수산사업소는 북한군 소속으로 어업지도선에는 무장한 병력이 탑승한다. 단속정은 북한군 해군 소속 초계정으로 북한군 전선서부지구사령부가 작전 지휘를 맡는다. 단속정은 14.5㎜ 중기관총으로 무장돼 있다. 이 소식통은 “등산곶 일대는 북한군의 상륙 작전이나 NLL 침범을 대비해 군 당국이 24시간 감시하는 곳”이라며 “북한이 해안포를 집중 배치한 요충지”라고 설명했다.
 
합참은 연평도 주둔 부대가 경계를 소홀히 한 탓에 이씨 피살 사건에 군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정보·감시 자산을 통해 이씨가 북한군에 억류된 뒤 총격에 숨지고 시신까지 불태운 정황을 입수했지만 또 다른 경로로 이를 확인하지 못해 빠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는 게 합참의 시각이다.
 
해군과 해병대가 북한군 소속 선박 두 척이 집결한 동향을 보고했더라면 이씨를 구하기 위해 군사작전까지 고려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해군 전투함을 NLL 이북으로 보내 이씨를 꺼내오지는 못하더라도 전투함이 NLL에 바짝 붙어 돌아다니는 등 무력시위를 벌이며 북한을 압박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합참의 이 같은 시각에 대해 야전 부대의 불만 또한 크다. 상황을 재빨리 판단한 뒤 적절한 명령을 내리지 못한 군 지휘부가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특히 이씨의 소재와 상황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군 당국이 지난 22일 이씨가 이미 사망한 정황을 야전에 알려주지 않았다”며 “이 때문에 해군과 해경은 하루가 지난 23일에도 계속해서 이씨를 찾는 수색작전을 펴야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해군과 해경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이씨의 소재를 수색하는 작업을 벌였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군 자료에 따르면 지난 22일 해군 초계기와 해경 헬기, 해군 고속정과 해경 함정 등은 이씨가 숨진 현장에서 20여㎞ 떨어진 곳에서 수색에 나섰다. 등산곶 해상은 연평도에서 서쪽으로 35㎞ 떨어져 있다. 당시 해상 수색이 연평도 서쪽 11㎞ 부근까지만 이뤄진 셈이다.
 
이와 관련, 군 당국은 첩보의 사실 여부를 가리는 데 시간이 걸렸고, 정보 수집 자산을 감추기 위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기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정보 독점주의와 이기주의, 대북 눈치 보기 등이 복합으로 빗어낸 총체적 정보 실패”라며 “정보를 융합하고 판단하는 컨트롤타워인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가운데 국방부는 지난 24일부터 군사 대비 태세 강화에 들어갔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군 동향을 24시간 면밀 감시하고, 모든 상황에 대해 신속 대응이 가능한 확고한 군사 대비 태세를 유지하며, 군사적 위기가 고조되지 않도록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의 시신을 찾기 위한 수색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총격 당시 위치가 NLL 바로 위쪽인 만큼 이미 시신이 남쪽으로 떠내려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우리 군의 판단이다. 군 관계자는 “수중에 잠긴 상태로 조류를 타고 내려온 뒤 떠오르는 사체가 종종 발견된다”며 “이씨 사체도 일부라도 남아 있다면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군 당국도 NLL 인근 병력에 이씨 시신의 발견 가능성을 염두에 두라는 지시를 내렸다.
 
지난 23일엔 서해5도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표류 중인 사체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날 오전 7시쯤 인근 해역을 지나던 해군 고속정이 사체를 발견해 건진 뒤 해경에 넘겼고, 해경은 사체를 인천항으로 옮겨와 정밀 감식을 벌였다. 사체는 발견 당시 부패 정도가 심해 신원을 확인하기 힘든 상태였다고 한다.
 
이후 군 당국과 해경은 이씨의 시신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확인 작업에 나섰지만 결국 아닌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소식통은 “발견한 사체는 군복 바지를 입고 있어서 이씨가 실종 당시 착용했던 옷과 달랐다”며 “사체에서 총상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시신의 행방을 묻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현재 확인할 수 없다”면서도 “그 해역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서 장관은 ‘시신이 훼손돼 일부가 바다에 떠다닐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그럴 개연성이 있다”고 답했다.
 
이철재·박용한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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