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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 曰] ‘부캐-본캐’의 조화와 불화

중앙선데이 2020.09.26 00:28 705호 30면 지면보기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미스터 손샤인’은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손흥민 선수의 애칭이다. 햇빛을 뜻하는 영어 ‘선샤인(sunshine)’과 손흥민의 ‘손’을 잘 조화시켰다. 지난 일요일 한 경기에서 무려 4골을 몰아넣자 ‘선데이’를 ‘손데이’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축구 솜씨가 태양처럼 빛난다는 의미가 절묘하게 잘 어울리는데, 경기 후 인터뷰에서 모든 공로를 동료에게 돌리는 말솜씨도 ‘손샤인답다’고 할 수 있겠다.
 

방송가 연예 프로 ‘또 다른 나’ 열풍
민주·정의·공정·사랑도 일종의 ‘부캐’

애칭이나 별명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요즘은 ‘부캐’라는 표현이 많이 쓰인다. ‘부캐릭터’의 준말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 라는 의미로 쓰이는 용어다. 일상생활로 확대되면서 ‘평소의 나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이나 캐릭터로 행동할 때’를 가리키는 말로 활용되고 있다. 요즘 방송 연예계에서 크게 유행하며 ‘부캐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유재석의 오래된 별명은 메뚜기였는데, 요즘 인기 끄는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그는 여러 부캐로 역할 변신을 하고 있다. 메뚜기 같은 즉물적 작명보다 역할에 따른 상징적인 의미를 담는 경향을 보인다.
 
올여름 가요계를 후끈 달군 혼성그룹 ‘싹쓰리’도 일종의 혼합 부캐다. 유두래곤(유재석)과 린다G(이효리), 비룡(가수 비)이 함께 결성해 ‘지난 여름 바닷가’라는 노래를 유행시켰다. 유두래곤의 후속 작품에서 그는 연예 제작자 역할을 하고 있는데 ‘지미 유’라는 부캐로 활약한다. 한자 ‘알 지(知)+아름다울 미(美)’라고 하는데, 지와 미 사이의 간격을 끌며 발음을 길게 하면 자칫 욕처럼 들리기도 한다.
 
부캐와 짝을 이루는 표현이 ‘본캐’다. 본캐는 ‘본래의 캐릭터’를 가리킨다. 유두래곤이나 지미 유가 부캐라면, 유재석이 본캐인 것이다. 부캐와 본캐는 역할을 달리하는 ‘이중 생활’ 혹은 ‘이중 인격’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작품에 몰입하다 보면 부캐가 본캐 같기도 하고 본캐가 부캐 같기도 하다. 가상 세계에서 창조된 부캐가 또 하나의 실재 세계처럼 보이는 것이다.
 
세상은 부캐와 본캐의 이중주로 연주되는 음악 같기도 하다. 예술은 상상의 세계를 새롭게 그려내며 가상과 실재의 경계를 넘나든다. 옛사람들이 즐겨 쓰던 아호, 종교인들의 세례명이나 법명도 부캐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온라인에 들어가면 누구나 몇 개씩 가지고 있는 아이디도 부캐다. 가상 세계와 실제 현실은 끝없이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민주·정의·공정·사랑 같은 철학적 용어들도 일종의 부캐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이는 민주라는 부캐로, 어떤 이는 정의라는 부캐로, 어떤 이는 공정이라는 부캐로, 어떤 이는 사랑이라는 부캐로 자신을 포장하고 연기를 하며 살아간다.
 
세상은 부캐의 눈으로 볼 수도 있고 본캐의 눈으로 볼 수도 있다. 본캐의 눈만 진짜라고 고집하기엔 세상에 부캐가 너무 많다. 부캐 없이 우리는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다. 일일이 작명을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여러 개의 부캐를 가지고 살아간다. 가족 안에서만 봐도 한 사람이 부모·부부·형제·자녀의 역할을 다 하며 살지 않는가. 부모에게 하는 역할과 자식에게 하는 역할을 혼동하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정치권에 발을 디딘 이라면 열성 지지자에게 하는 역할과 국민 전체에게 하는 역할을 혼동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모두가 손샤인 같이 잘나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부캐와 본캐의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충돌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다행히 부조화를 줄이는 능력을 타고나는 듯하다. 상식을 공감하는 능력이다. 세계의 공감을 얻어가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은 이런 능력을 ‘선한 영향력’이라고 불렀다.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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