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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왜 굳이 지금…타이밍부터 문제다

중앙선데이 2020.09.26 00:26 705호 31면 지면보기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중용(中庸)에 ‘시중(時中)’이라는 말이 나온다. 거칠게 풀자면 ‘때에 맞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을 가리킨다. 요즘 말로는 ‘타이밍(Timing)’의 의미와 가깝다. 국어사전에서는 타이밍을 ▶동작의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순간 ▶주변의 상황을 보아 좋은 시기를 결정함 또는 그 시기라고 풀이한다.
 

코로나19 와중에 의료개혁안 갈등
경기 침체 속 기업 규제 강화 논란

그런데 아무리 좋은 말이나 행동도 타이밍이 어긋나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거나 불필요한 갈등만 조장할 수 있다. 법률이나 정책도 마찬가지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혼선만 빚거나 부작용만 남기기도 한다.
 
이른바 ‘공정경제 3법’ 또는 ‘기업규제 3법’으로 명칭이 극명하게 갈린 공정거래법 개정안, 상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집단소송제 확대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도 뜨거운 감자다). 불공정 거래를 바로잡고,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이들 법안의 취지는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다. 재계에서는 기업을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만들고, 재무적 부담을 키울 독소조항이 가득하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고 공정경제와 경제민주화 실현에 지렛대가 될 수 있는 내용도 있다.
 
다만 걱정은 ‘왜 지금인가’이다. 정부와 여당이 ‘신중한 논의와 보완 장치 마련’에 적극 나서겠다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평상시였어도 감당하기 벅찰 법안들이다. 더구나 미증유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급격히 쪼그라든 마당 아닌가. 물론 ‘경제나 기업의 형편이 나아졌을 때’라는 시점이 언제일지는 모호하다. 아무리 호황이어도 반대를 위한 반대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여당이 독주 체제를 갖춘 타이밍에 맞춰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관련 입법을 몰아치기 식으로 추진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등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며 의사들이 벌인 진료 거부(파업) 사태에도 같은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왜 굳이 지금(이었나)….’ 파국은 가까스로 막았지만 결과적으로 의사집단과 국민 사이에 괴리감과 불신의 골만 깊어졌다. 대다수 국민은 코로나19 위기에도 ‘정책 철회 후 원점 재논의’ 명문화를 고집하며 진료를 거부한 의사들을 밥그룻 지키기에 집착하는 집단으로 치부했다. 이렇게 여론의 역풍이 불 보듯 뻔했지만 의사들도 나름의 논리를 내세우며 물러서지 않았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의 영웅 대접을 받다 뒤통수를 맞은 배신감도 적지 않았을 듯싶다. 결국 대립과 반목을 임시로 봉합했을 뿐 파국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럴 거였으면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나와 일상이 정상궤도에 오른 후 새로운 의료정책을 추진해도 되지 않았을까. 명분이 뚜렷하니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얄팍한 계산이 앞섰던 걸까. 정부는 도대체 어떤 타이밍으로 봤던 걸까. 조급함이 일을 그르치게 마련이다.
 
※사족 : 전국 의과대학 본과 4학년 학생 2726명에 대한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 응시 기회 부여 여부도 논란이다. 응시 의사를 밝히지 않았던 이들이 24일 입장을 바꿨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해 “다른 국가시험과의 형평성·공정성과 이에 따른 국민적 수용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정부는 앞서 시험을 일주일 연기한 데 이어 접수 기한을 두 번 연장했지만 응시 대상 3172명 가운데 14%인 446명만 신청했다. 시험은 이미 8일부터 진행되고 있다. 선배 의사들을 돕느라 국시 응시 타이밍을 놓친 학생들은 이번 진료 거부 사태의 최대 희생양일지 모른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국가시험의 원칙을 허무는 것은 곤란하다.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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