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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성 간암, 약제 병합치료로 환자 생존율 높인다

중앙선데이 2020.09.26 00:21 705호 28면 지면보기

라이프 클리닉

간암은 우리나라 전체 암 중에서 사망률 2위에 해당하는 난치성 질환이다. 간암의 5년 생존율은 1990년대 약 10%에서 최근 35% 정도로 크게 향상됐다. 그러나 아직도 간 이식을 제외하면 간암은 근본적으로 완치가 어렵다. 특히 진행성 간암은 종양 자체가 큰 데다 흔히 간 기능 저하라는 또 다른 복병을 함께 대처해야 해 효과적인 치료 반응을 보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패러다임 바꾼 간암 치료법
표적·면역치료제 등 다른 약제
처음부터 함께 사용하면 효과적

매달 수백만원 치료 비용 비싸
합리적 가이드라인 마련도 과제

진행된 암에 사용되는 전신 치료라고 하면 항암제를 정맥주사로 투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간세포암(이하 간암)은 그렇지 않다. 그동안 많은 임상적 시도에서 일반 항암제 투여는 간암 환자의 생존율 향상을 가져오지 못했다.  
  
10년간의 진행성 간암 치료제 임상 침체기
 
2000년대 중반 넥사바(성분명 소라페닙)가 등장하기 전까지 임상에서 무려 20~30년간이나 시행해 온 정맥용 항암제 투여 요법은 사실상 의학적 근거가 없었다. 2000년대에 이르러 종양에 대한 분자의학적 정보가 축적되면서 대량의 유전체 데이터를 기반으로 종양 관련 경로 차단을 목적으로 하는 표적치료제가 개발됐고, 넥사바가 처음으로 진행성 간암의 생존율을 의미 있게 높일 수 있는 약제로 승인돼 간암 치료의 새 장을 열었다. 사실 이 약제의 객관적인 반응률은 5% 정도, 생존 증가 효과도 고작 3개월이었지만 과학적인 프로세스 아래 처음으로 객관적으로 승인·검증됐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넥사바 이후 진행성 간암 치료제 임상은 약 10년간의 침체기를 겪는다. 약제 자체의 효능 부족도 문제였지만 새로운 표적치료제 임상 시험 설계에 대한 안목과 인식 부족 때문이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여러 번의 시행착오로부터 어떻게 신약 임상연구를 디자인하면 성공할지 알게 됐고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2017년부터는 여러 임상시험에서 낭보가 전해지고 있다.
 
2019년까지 1차 치료제는 넥사바·렌비마(성분명 렌바티닙), 2차 치료제로 스티바가(성분명 레고라페닙)·카보메틱스(성분명 카보잔티닙) 등의 표적치료제와 신생혈관억제제 기능을 가진 단클론항체인 사이람자(성분명 라무시루맙)가 2차 치료제로 승인받아 진행성 간암 치료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 이런 치료제들은 간암 성장의 핵심 경로를 차단하는 약제로 개발됐지만, 이들 경로가 생리학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므로 치료 시 수많은 부작용(손발 피부 반응, 설사, 단백뇨, 고혈압, 두통, 복통 등)이 나타난다. 따라서 전신상태가 양호하고 간 기능이 우수한 환자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
 
한편 인체 면역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암 환자에게 흔히 저하된 면역세포의 기능 강화를 통해 종양세포를 살상하는 전략이 개발됐다. 대표적으로 PD-1, PD-L-1, CTLA-4에 대한 길항제가 그것이다. 이들을 통칭해 면역관문 억제제(면역치료제)라고 하는데 간암에서는 옵디보(성분명 니볼루맙)가 처음으로 간암의 2차 치료제로 승인됐다. 이 치료법은 비교적 부작용이 심하지 않고 객관적 치료 반응률도 15~20%로 개선됐으며 표적치료제와는 달리 한번 종양이 줄어들면 그 반응이 수개월~수년간 지속하는 장점이 있다.
 
진행성 간암의 치료는 2020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바로 ‘병합치료’다. 최근 면역관문 억제제인 아테졸리무맙과 신생혈관억제제인 베바시주맙(상품명 아비스틴)의 병합치료가 진행성 간암 환자 대상 기존 표준치료인 넥사바보다 환자 생존율을 더 개선했다. 간 기능과 전신상태가 양호한 환자의 전체 생존 기간은 17개월 이상이었다. 이는 진행성 간암 치료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을 유도하는 결과를 낳았다. 소수의 종양 경로만 타깃으로 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기전이 다른 약제들을 병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교훈을 줬다. 이 결과에 힘입어 현재는 단지 진행성 간암뿐 아니라 중기 간암과 수술 후 재발 등 다양한 임상적 상황에서 다양한 기전의 병합치료가 연구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병합치료를 1차 치료로 선택했을 때 반응이 없다면 그 이후 어떤 치료법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
 
간암 치료법은 이전 30년에 비해 근래 수년간 기하급수적 변화를 이뤘다. 이는 무엇보다 종양 생물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많은 임상 연구 경험으로 인해 현재는 실제로 진행성 간암 환자의 생존이 적게는 수개월, 많게는 1~2년 이상 개선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갈 길은 멀다. 첫째, 치료제 선택 폭이 넓어졌지만 어떤 환자에게 어떤 약(단독 또는 병합요법)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아직 모른다. 이를 위해 연구를 통해 약제 선택을 효과적으로 가이드 할 수 있는 생체표지자가 발굴돼야 한다. 둘째, 병합치료로 종양 반응은 개선됐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다양한 부작용을 대면하게 됐다. 이 역시 후속 임상 경험을 통해 치료 전 약제 부작용을 예측해 조기에 대응하고 그에 따라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우수한 약제들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셋째, 고가의 치료비용이다. 국내에서는 넥사바·스티바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고가다. 최근 승인된 병합치료법은 매달 수백만 원의 치료 비용이 든다.
  
병합치료 성과 이후 남겨진 과제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행성 간암 1·2차 치료법 선택의 기존 가이드라인은 면역치료-신생혈관 억제 병합치료법이 등장한 지금 대폭 수정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다음 2·3차 선택에 대한 의학적 근거가 없어 이 판을 다시 짜는 데도 수년이 소요될 전망이다.
 
그동안 간암의 치료 임상은 괄목한 만한 성장을 이뤘다. 다른 기전을 가진 약제들의 병합치료라는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에 우리는 또 한 번의 도약으로 새롭게 직면한 여러 난제를 극복해야 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간암 환자들의 밝은 미래를 위한 우리의 슬기로운 생활이다.
 

장정원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1997년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4~2015년 미국 메이요클리닉에서 바이러스 종양학 분야를 주제로 연수했다. 간암 및 간염, 간경변, 간이식 등이 전문분야다. 대한간학회 부총무, 대한간암학회 학술이사·기획이사·재무이사 등을 역임했다. 대한간암학회 학술상 및 국내외학회에서 우수 연제상을 받았고, 현재 간 관련 여러 학회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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