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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자주 찾는 원산…북쪽 7번 국도에도, 남쪽 77번 국도에도 명사십리

중앙선데이 2020.09.26 00:21 705호 24면 지면보기
77번 국도가 남서해안을 굽이친다면, 7번 국도는 동해안을 끼고 달린다. 한반도의 등골을 타는 도로다. 77번 국도와 마찬가지로 부산시 중구에서 시작한다. 함경북도 온성까지 1192㎞다. 남측 구간 끝인 강원 고성까지는 484㎞다. 러시아·중국·카자흐스탄을 거쳐 벨라루스까지 가는, 아시안 하이웨이 6호선(AH6)의 일부가 7번 국도에 있다.

경북 포항 호미곶의 등대. 안성식 기자

경북 포항 호미곶의 등대. 안성식 기자

7번 국도 시작점인 부산만 해도 반도가 여러 곳이다. 부산시 홈페이지에 따르면 두송·송도 등의 반도가 있다. 미니 반도다. 도로는 이후 경북 포항을 스쳐 간다. 929도로로 갈아타고 호미반도에 들어선다. 고산자 김정호는 이곳을 7번 찾아 한반도의 동쪽 끝이라고 확인했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섬을 제외한 한반도의 ‘땅끝 마을’을 밝혔다. 서쪽으로는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남쪽으로는 전남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다. 동쪽은 바로 호미반도에 있는 구룡포읍 석병 2리다.
 
김금순 포항시 문화관광해설사는 “호미반도의 원래 이름은 장기반도였는데, 2001년 1월에 이름을 바꿨다”며 "장기는 말의 갈기를 뜻한다. 일제가 1918년에 장기갑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말했다. 말을 버리고 호랑이(호미·虎尾)를 택한 것이다. 이곳에 일본 강점기에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고 한다. 일제의 ‘쇠말뚝설’은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유행처럼 번졌다. 쇠말뚝 색출과 제거가 치적이 되기도 했다. 구룡포에는 적산가옥 거리가 조성돼 있다. 1930년대에 일본인들은 이곳에서 220여 가구, 1100명이나 살았다. 쇠말뚝의 '용도'가 맞는다면, 본인들이 살던 곳의 정기를 끊어 버린 셈이다. 전국에 있다는 일제 쇠말뚝의 실체가 아리송하다.
 
77번 국도.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77번 국도.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다음 반도는 400㎞ 넘게 달려야 한다. 강원도 원산의 갈마반도와 호도반도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곳에 해안관광지구를 만들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원산 사랑은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대북전문가는 “김정은의 출생지는 불확실하지만 원산 설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친모 고용희(1952~2004)는 ‘원산댁’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9월 초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 때 공사 중인 해안관광지구가 큰 피해를 보았다고 전해진다. 
지난 5월 전남 완도군 해양치유센터가 마련한 ‘봄, 그리고 힐링’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신지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명상에 잠겨 있다. 김경빈 기자

지난 5월 전남 완도군 해양치유센터가 마련한 ‘봄, 그리고 힐링’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신지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명상에 잠겨 있다. 김경빈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출생지는 원산설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진은 2019년 4월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현장.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출생지는 원산설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진은 2019년 4월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현장. [연합뉴스]

 
이곳의 명사십리가 유명하다. 한반도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77번 국도가 지나는 해남반도 전남 완도에도 명사십리가 있다. 정식 명칭은 신지명사십리다. 은빛 모래에 부서지는 파도의 울림소리가 10리(4㎞)까지 들린다고 해서 명사십리(鳴沙十里)다. 밟을 때 우는 소리가 날 정도로 모래가 곱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갈마반도의 명사십리는 해남반도의 명사십리와 한자가 다르다. 원래 '명사(鳴砂)'를 사용하다가 ‘명사(明沙)’로 바뀌었다고 한다. ‘모래 사(沙·砂)’의 차이에 대해 권상호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각각 해안 모래와 육지 모래라는 미묘한 구별이 있지만 같은 뜻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남과 북의 명사십리는 본래 의미가 같았다는 것이다.
 
갈마·호도반도를 가려면 금강산을 거쳐야 한다. 서산대사(1520~1604)는 이 길을 지나며 읊었다. ‘금강산의 구름이/명사십리에 비 되어 내리고/해당화마저 지고 나니/길 위에는 우리 서너 명뿐.’
7번 국도의 남측 끝인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그저 바라볼 뿐.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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