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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4개항 개악, 도정제 이전 무질서로 회귀할 것”

중앙선데이 2020.09.26 00:02 705호 16면 지면보기

도서정가제 쟁점 뭔가

도서정가제(이하 도정제) 개선안을 둘러싼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정부와 출판계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서다. 오히려 악화되는 모양새다. 지난 24일 출판인들은 청와대를 찾았다.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등 36개 관련 단체가 결성한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 명의다.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상이 풀리지 않자 이제는 대통령이 개입해야 한다며 정치적 압박에 나선 것이다. 하루 전인 23일에는 국회 도종환 문광위원장을 만났다. 정부 개선안에 끝내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지 못할 경우 국회 통과 과정에서라도 바로잡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포석이다.
 

책값 깎아주면 소비자 이득인데
구간 대폭 할인 땐 인세 안 나와
다양한 양질의 책 저술 힘들어져

전자책 할인율 확대 왜 안 되나
이전부터 제작·물류비 절감 반영
더 깎으면 원래 가격 높게 매길 것

책값 할인을 정가의 15% 이내로 제한한 2014년 도정제법은 3년마다 재검토하게 돼 있다. 새로운 3년이 시작되는 11월을 앞두고 큰 문제 없이 개선안이 마련되는 듯했다. 하지만 문체부가 출판계와 사실상 합의했던 도정제 개선안을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7월 초 갑작스럽게 밝히면서 일이 꼬였다. 결정적으로 지난 18일 문체부 오영우 차관이 공대위 측을 만나 제시한 도정제 개선안 추가 검토 4개 항목이 불을 질렀다. 4개 항은 ▶구간(舊刊, 발행 후 36개월이 경과하고 서점의 마지막 책 주문 이후 12개월이 경과한 책)에 대해 도정제 적용 제외(15%를 넘는 책값 할인 허용)▶문체부가 주최하거나 예산 지원하는 도서전에 한해 도정제 적용 제외▶전자책 할인율 15%→20%로 확대▶연재 중인 디지털 콘텐트(웹툰·웹소설)는 완결 전까지 도정제 적용 유예, 이렇게다.
  
문체부, 개선안 재검토로 일 꼬여
 
도서정가제 개선을 둘러싼 갈등을 푸는 해법은 뭘까. 충분한 논의를 거쳐 세심한 개선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도서정가제 사수 공동대책위원회 김학원 위원장(왼쪽)과 책과사회연구소 백원근 소장.

도서정가제 개선을 둘러싼 갈등을 푸는 해법은 뭘까. 충분한 논의를 거쳐 세심한 개선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도서정가제 사수 공동대책위원회 김학원 위원장(왼쪽)과 책과사회연구소 백원근 소장.

출판계 공대위 측은 “도정제가 무너지면 문화국가가 무너진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의 추가 검토 4개항이 사실상 도정제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거라는 주장이다. 어떻게 그렇게 된다는 걸까.
 
공대위원장을 맡은 휴머니스트 출판사 김학원 대표와 책과사회연구소 백원근 소장을 만나 정부 제시안의 쟁점과 의미, 해법을 물었다.
 
항목별로 따져보자. 구간 할인은 어째서 문제가 되나. 책값을 깎아주면 소비자에게 이득 아닌가.
▶김학원(이하 김)=“커피 같은 상품과 달리 책은 정가로 사고판다. 그런데 정가의 통상 10%를 저자에게 인세로 지급한다. 오래된 구간이라고 대폭 할인을 허용해 가령 이 서점에서 30%, 다른 서점에서는 반값, 이런 식으로 책값을 깎아줬다가는 AI(인공지능)를 동원해도 저자 인세 계산이 불가능해진다. 저자와 출판사 간 신뢰유지가 어려워져 저술기반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그만큼 좋은 책이 나올 가능성이 작아진다는 얘기다.
 
백원근 소장은 “도정제를 달리 표현하면 다양성”이라고 했다. 변화를 좇아가고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독자가 바라는 게 바로 도서 다양성이라는 입장이다. 관련 근거를 제시했다. 도정제 이후 출판사 수(2014년 4만7226곳→2019년 7만135곳), 발행 종수(2014년 4만7589종→2018년 6만3476종) 모두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구한 대폭 할인을 허용하면 그게 도정제를 무너뜨리는 일인가.
▶백원근(이하 백)=“2014년 도정제 이전을 떠올려 보라. 할인율 제한이 없다 보니 80~90%까지 깎아주는 책이 나왔다. 인터넷 서점을 중심으로 ‘1+1’ 행사가 성행했다. 신간을 사면 구간을 얹어 주는 방식이다.  구간 할인을 전면 허용하면 남은 재고를 소진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 출판사가 나올 수 있다. 추가로 더 찍어 싸게 팔 수 있다.”

▶김=“구간 할인을 전면 허용하면 구간 목록이 많은 큰 출판사들이 대대적으로 구간 할인에 나서고 그럼 신간이 위축된다. 신간 발행 종수의 저하가 구간 할인의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지난 24일 청와대를 항의 방문한 출판인들. [연합뉴스]

지난 24일 청와대를 항의 방문한 출판인들. [연합뉴스]

출판인들 사이에 이런 문제의식에 이견은 없는 듯했다. 편집문화실험실 장은수 대표는 “2014년 이전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6, 7종이 구간이던 때도 있었다”고 했다. 바다출판사 김인호 대표도 “악화(구간)가 양화(신간)를 구축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외국은 어떨까. 프랑스·독일 등 도정제를 시행하는 유럽국의 경우 대개 발행 2년이 지나면 구간 전면 할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독일이 그렇게 한다고 우리도 따라 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도서 유통 방식과 관계있다. 우리는 위탁 판매 비중이 여전히 상당하다. 책을 빌려다 서점에 깔아놓고 팔리면 대금을 출판사에 지불하지만 안 팔린 책은 출판사에 반품한다. 그에 반해 독일은 모든 유통 단계에서 현금 거래가 원칙이기 때문에 서점의 책은 서점의 자산이다. 안 팔리면 헐값에라도 파는 게 낫기 때문에 그렇게 하도록 한다는 얘기다.
 
백 소장은 “출판 시장, 풍토, 이런 것들이 중요한데 유럽의 출판 선진국들은 도정제라는 프레임을 지키면서 그 안에서 최소한도의 할인을 하는데 비해 우리 출판 시장은 유난히 할인 경쟁이 만연해 있다. 구간 전면 할인을 허용하는 순간 2014년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무척 높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도서전 할인은?
▶김=“지역의 수많은 도서전, 책 축제에서 구간 할인을 하기 시작하면 다 망가진다. 도서전은 작가가 참가해야 빛나는데 어떤 작가가 자기 책을 할인 판매하는 도서전이 기분 좋겠나.”

▶백=“스페인은 도서전에서 구간 할인을 허용한다. 도서전 활성화 방편인데 무한정 할인은 아니고 일정한 비율을 정해 한다. 스페인이 이게 가능한 이유는 도정제를 철저히 지켜서다. 우리도 검토해볼 수 있는데 도정제 15% 할인 이외에 카드 사용 할인 등 추가로 15%씩 할인해주는 상황에서는 하기 어렵다고 본다.”
 
전자책 얘기를 해보자. 20%로 할인율을 확대하겠다는 게 정부 생각인데.
▶김=“전자책은 대개 종이책의 70% 가격을 받는데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제작비와 물류비가 덜 들어가는 비율에 맞춰 책정한 것이다. 그렇게 정착된 업계 관행을 살려 나가야지 정부가 자꾸 더 깎자고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백=“전자책만 할인율을 높이자는 건 관점이 잘못된 것 같다. 전자책 할인을 더 해줘야 한다면 출판사는 그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원래 가격을 높이려 할 거다.”
 
도서정가제 진통 과정.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도서정가제 진통 과정.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바다출판사 김인호 대표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제조업자, 즉 출판사가 가격결정권을 갖는 현행 도정제에서 할인 폭만 자꾸 늘리면 종전 마진을 확보하기 위해 출판사가 책 정가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역 도서전 무분별 할인할 수도”
 
마지막 항목인 ‘웹툰 등의 연재 기간 중에 도정제 적용 유예’는 어려운 수학 공식처럼 내용이 복잡하다. 웹툰이냐 웹소설이냐에 따라, 또 대형 플랫폼이냐 중소형 플랫폼이냐 아니면 생산자 단체냐에 따라 입장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거칠게 정리하면 웹툰·웹소설은 대개 인터넷에 연재 형식으로 작품이 발표된다. 그런데 전자책으로 묶기에 충분한 분량이 확보되기 전, 연재 단계에서 대부분의 수익이 발생한다. 종이책 출판계에는 전자책도 책인 만큼 기본적으로 도정제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 웹툰·웹소설 업체들은 연재 중 도정제 적용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가격을 책정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극단적인 할인이 가능하다. 문체부의 연재 중 도정제 유예는 후자, 그러니까 자유로운 가격 경쟁을 원하는 전자책 업자들의 편을 들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두 사람의 의견은 살짝 엇갈렸다. 김학원 위원장은 “웹툰·웹소설 업계 내부에 논의 테이블이 마련돼 60~70% 이상 합의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올 때까지 일단 현행대로 도정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백원근 소장은 “종이책과 달리 전자책은 업체들이 다양한 마케팅 툴을 운용한다. 정부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업계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연재 중 도정제 유예’ 움직임에 가장 강력한 반대 목소리는 한국웹소설협회 김환철 회장(문피아 대표) 같은 이가 내고 있다. 협회는 도정제 사수 공대위에 소속돼 있다. 김 회장은 “정부 생각대로 했다가는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거대 웹소설 플랫폼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웹툰산업협회는 입장이 정반대다. 협회 서범강 이사는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다. 웹소설산업협회 문상철 회장은 “연재 중 도정제 유예를 하려 할 게 아니라 웹툰·웹소설에 적용되는 새로운 규제 틀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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