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선풍기와 아파트

중앙일보 2020.09.25 00:40 종합 35면 지면보기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여름이 지났다. 참으로 기이했던 계절이다. 전례 없는 비를 쏟았다. 그래서 전례 없는 더위를 예보했던 기상청이 전례 없이 뻘쭘해졌다. 그래서 뻘쭘해진 건 선풍기도 마찬가지였다. 날개 몇 바퀴 돌려보지도 못한 채 시름시름 어딘가에 처박혔겠다.
 

선풍기에 남은 좌식생활의 흔적
빠르게 변하는 한국인의 생활
입식 좌식 혼재의 한국 아파트
생활 따라 변할 아파트의 미래

그 선풍기를 들여다보면 의아한 것이 눈에 띈다. 왜 스위치들이 죄 바닥에 붙어있는 것이냐. 물론 리모콘 구동의 제품들도 있다. 하지만 거의 다. 그 위치를 이해하려면 우선 사용자의 자세부터 보아야 한다. 그는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있던 참이었겠다. 우리는 이를 좌식생활이라 부른다. 그 배경에 온돌이 있었다. 일본이라면 다다미겠다. 그들은 바닥에 붙어있던 엉덩이를 떼지 않고 끌고 가서 선풍기의 스위치를 누르고 돌렸던 것이다.
 
한국 주거의 방을 규정하는 것은 유서 깊은 온돌이다. 온 민족의 엉덩이나 등이 거기 밀착된 생활이었다. 아파트도 처음에는 연탄아궁이가 있는 온돌방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서양에서 들여온 이 고급스러운 주거가 연탄아궁이와 잘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곧 아파트의 조심스러운 실험이 시작되었으니 거실과 주방에는 스팀 라디에이터가 설치된 것이다. 방만 온돌이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거실에서도 여전히 따뜻한 바닥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게 곧 판명되었다. 라디에이터가 퇴출되고 거실에도 온돌이 들어왔다. 지금 대한민국의 주거 난방은 온수 파이프 깐 온돌이 평정했다.
 
‘보일러’로 작동하는 ‘라디에이터’가 들어오던 딱 그 시기에 부엌에는 ‘싱크’, 거실에는 ‘소파’가 들어왔다. 이들은 이전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던 물건임을 그 이름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방에 침대가 밀고 들어왔다. 공간과 가구의 부정교합이 발생하는 순간이다. 침대가 바닥에서 마땅히 올라올 복사열을 막기 때문이다. 이상한 조합이다. 그래서 침대와 온돌이 함께 그리운 이들을 위해 발명된 것이 돌침대니 이건 사실 논리모순의 기이한 물건이다.
 
기이한 현상은 거실에서도 발견된다. 진공관 시대의 라디오는 가구였고 주택의 가장 중요한 공간에 놓였다. 그 주위에 가족이 반원형으로 앉았다. TV가 등장하면서 가족의 배치가 바뀌었다. TV를 마주 보고 횡대로 앉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전 세계 공통 풍경이다. 우리에게도 아파트 거실에서 TV의 반대쪽에 소파가 놓이는 풍경이 수입되었다.
 
다음부터 기이하다. 소파는 분명 좌식 가구다. 그런데 이를 대하는 한국인의 자세는 좀 복잡하다. 그들의 태반은 소파를 등받이로 사용한다. 방바닥에 내려와 정형외과 의사들이 혐오하는 다양한 자세로 앉는 것이다. 그러다 불편해지면 다시 소파 위로 올라가며 자세 교체를 시도한다. 게다가 한국의 소파는 앉기보다 눕는 가구에 훨씬 가깝다. 입적을 앞둔 부처님 자세로 제자들 아닌 TV를 보고 누워 열반을 꿈꾼다.
 
아파트에서 태어난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침대에서 자고 식탁에서 먹던 세대들이 방바닥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온돌 난방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좌식생활을 거부하는 것이다. 게다가 밥상 위에 밥그릇을 실어나르던 세대들까지 점점 식탁에서 밥을 먹더니 이제 좌식생활의 관절염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변화는 아파트 밖에서 확연하다. 세계의 문화사가 증명하되 가장 변화저항이 강한 것이 장례문화다. 그런데 한국은 매장이 화장으로 바뀌는데 한 세대도 필요치 않았다. 게다가 장례식장 접객식당도 순식간에 입식으로 변해나갔다. 민감하고 민첩한 변화가 생존의 길인지라 바닥에 앉아 먹던 시장 식당들도 모두 식탁과 의자를 들여놓았다.
 
선풍기 스위치를 보면 여전히 당황스럽다. 늘어선 그것들은 각각 정지, 속도, 회전을 규정하는 다른 용도를 갖지만 그냥 같은 모양들이다. 디자인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맹렬히 비판하는 사례들이다. 변화한 한국인들은 변치 않는 방바닥의 선풍기 스위치를 손가락 아니라 발가락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가락이 진화한 게 아니고 생활이 입식으로 변했을 따름이다. 날개 없는 선풍기와 에어컨이 바람을 뿜는 시대다. 지난 여름 아직도 바닥에 스위치를 놓고 버티던 선풍기들의 고집이 놀랍다. 아궁이에 연탄 갈던 시대의 가치로 도도히 버텨 보겠다는 듯 보여서다.
 
가을이다. 계절이 바뀌었으므로 우리는 옷을 바꿔입는다. 사용자가 변하므로 아파트도 달라지겠다. 지금도 대개 거실의 설계 도면은 TV와 소파의 대면 상태로 그려지지만 현실 풍경은 다양하게 다르다. 궁금해진다. 한번 침실에 들어간 침대가 다시 나오지는 않겠고 그 생활자들이 방바닥으로 다시 내려오지도 않겠다. 그렇다고 바닥난방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파트는 미분양의 폭발력이 큰 시장이라 실험이 어렵다. 아주 느린 진화만 가능한 건물형식이다. 그럼에도 부정교합의 대안을 찾아내지 못하는 공급자들은 결국 도태될 것이다. 스위치로 표현되는 선풍기 운명처럼 그 변화가 궁금할 따름이다.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