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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2020년에 기억되는 베토벤과 강석희

중앙일보 2020.09.25 00:20 종합 28면 지면보기
오희숙 서울대 작곡과 교수

오희숙 서울대 작곡과 교수

2020년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을까?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를 젖혀둔다면, 음악인들과 클래식 애호가들은 아마 베토벤(1770-1827)을 떠올릴 것이다. 올해로 탄생 250주년을 맞은 베토벤은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많은 이들에게 심금을 울리는 작곡가로 기억되고 있다.
 
내게도 베토벤은 각별하다. 피아노 전공 시절 32개의 피아노 소나타는 음악적 아름다움의 실체로 다가왔고, 음악학을 전공하면서 그의 교향곡과 실내악곡들은 학문적 도전의 중심 대상이 되었다. 기념일을 챙기는 것이 조금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동료들과 베토벤의 전 작품을 새롭게 조명하는 책을 번역하고, 미학적 의미와 사회학적 영향을 재점검하는 저술을 기획했다. 그가 보여준 예술적 정체성의 문제를 천재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며 영감보다는 주체성이 강조된 베토벤 영웅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조명해보는 일은 흥미로웠다.
 
강석희

강석희

책들이 발간될 무렵이던 8월 16일, 작곡가 강석희(1934년생·사진)의 별세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국의 현대 음악계에서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강석희의 죽음은 2020년의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넘치는 에너지와 카리스마를 가진 작곡가였다. 얼마 전 자신의 작품이 공연될 때, 집중해서 들으며 지인들과 미소를 나누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음악은 보이지 않는 건축’이라며 음악적 논리성을 강조하면서 서양의 모더니즘적 현대음악을 작품에 구현했고, 또 한편으로 한국적 정체성 추구에 그 누구보다도 큰 관심을 보였던 그였다.
 
‘농’(Nong, 1970)은 강석희가 독일 유학 시절 처음으로 작곡한 것이자 내게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다.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이 곡은 ‘라’(A)음을 반복적으로 강타하며 날카롭게 시작되며 아방가르드적 특징을 보이지만, 한국의 범종 등 악기 연주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떨림과 가야금 주법에 나타나는 여음 등 ‘농현’을 표현하는 다양한 장식음 기법이 섬세하게 나타난 곡이다.
 
베토벤과 강석희가 만나는 지점은 비단 2020년에 기리는 탄생과 죽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음악사 속에서 베토벤만큼 위대한 작곡가는 없다고 생각해요.” 강석희는 한 인터뷰에서 베토벤의 모든 작품이 “타인의 음악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것을 모방한 게 하나도 없다”며 존경의 마음을 표했다. “예술가는 오로지 자신의 세계를 완성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강석희에게도, 자신이 속한 고전시대의 어법과 미학을 넘어선 베토벤에게도 ‘독창성’은 음악의 생명이었던 것이다. 강석희의 독창적인 음악이 베토벤처럼 많이 연주되고 연구되고, 또 오래 기억되면 좋겠다.
 
오희숙 서울대 작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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