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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집단소송제 강화…기업 아우성은 들리지 않는가

중앙일보 2020.09.25 00:13 종합 34면 지면보기
법무부가 그제 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를 급작스럽게 입법예고했다. 손해배상 재판에서 이기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도 똑같이 배상을 받고(집단소송),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피해액의 5배까지 물어내도록 하는(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다.
 
도입 명분은 소비자 권리 보호다. 정부는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 사건 등을 사례로 든다. 집단소송제 등을 도입한 선진국 소비자는 제대로 배상받았으나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지만, 소송 남발 같은 부작용 우려 또한 크다. 미국에서는 집단소송으로 인한 비용이 한 해 2400억 달러(약 250조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업 부담이 늘면 일자리도 덩달아 사라진다. 선진 각국이 집단소송제와 손해배상제를 시행하면서도 부작용을 막을 제도를 함께 시행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도 2005년 증권 거래와 관련한 집단소송제를 적용하면서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해 까다로운 절차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거꾸로다. 절차는 간소화하고, 형사사건에만 한정했던 국민참여재판을 집단소송에도 적용하겠다고 함으로써 여론재판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기업 스스로의 입증 책임은 더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법무부는 법 제·개정 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할 수 있도록 해 위헌 논란까지 낳고 있다.
 
경제와 일자리 창출의 중추인 기업들은 아우성이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에 이어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초고강도 규제가 잇따라 등장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숨통이 막히는 판에 목까지 졸린다”는 한탄이 들린다.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읍소로 치부하기엔 현실이 엄중하다. 지금 상당수 기업은 생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도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기업들을 돕겠다고 나랏빚을 늘려가며 수십조원의 자금을 마련하지 않았나.
 
그제 외국 증권사가 “한국 정부의 규제가 기업의 경기 침체 대처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법무부가 집단소송제 등을 발표하기 전에 나온 보고서다. 한국의 기업 규제는 밖에서 봐도 힘겨울 정도다. 갈수록 기업하기 힘든 나라가 돼 간다. 그로 인해 돌아올 일자리 문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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