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비 넘긴 두산 “올해 숙제는 다 끝냈다”

중앙일보 2020.09.25 00:04 경제 3면 지면보기
박정원

박정원

재무 위기를 겪고 있는 두산그룹이 ‘빚 갚기’에서 ‘경영 정상화’로 옮겨가고 있다. 지난 4월까지만 해도 “돈 되는 건 다 팔아 빚을 갚는다”는 입장이었지만 최근엔 “올해 숙제는 다 끝냈다”며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빚 갚기 넘어 경영 정상화로
두산중 1조3000억 유상증자 발표
증자 마무리 땐 빚 절반 갚는 셈
탈원전·풍력발전 앞날 정부 손에

방향 전환의 계기는 이달 초 발표한 두산중공업의 자본확충 계획이다. 두산중공업은 오는 12월 1조3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한다고 코스피 시장에 공시했다. 1억2150주를 새로 발행해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을 예정이다. 기존 발행주식의 절반에 가까운 물량이다. 그룹의 지주회사인 ㈜두산은 두산모트롤과 두산솔루스 지분 등을 판 돈으로 유상증자에 참여할 계획이다. 만약 투자자들이 사지 않고 남는 주식이 있으면 주관 증권사(한국·NH투자증권) 등 7개 증권사가 나눠서 인수하기로 했다. 두산 관계자는 “유상증자를 마무리하면 빚의 절반을 갚는 셈”이라며 “사실상의 채권단 관리 체제를 조기에 졸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정원(58·사진) 두산그룹 회장 등 대주주 일가도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자금을 내놓기로 했다. 두산퓨얼셀 지분 5740억원어치를 무상으로 두산중공업에 넘기는 방식이다. 새로운 현금이 투입되는 건 아니지만 회계장부에 자본이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자산 매각도 꾸준히 하고 있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골프장 클럽모우CC는 1850억원에 팔았다. 두산솔루스는 약 7000억원에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진대제펀드)에 매각했다. 두산모트롤(4500억원)도 팔기로 했다. 오는 28일에는 서울 동대문의 두산타워를 8000억원에 팔 예정이다. 동대문 두산타워는 그간 그룹의 자존심으로 여겼던 건물이다.
 
두산은 자산매각과 유상증자로 재무구조가 좋아지면 시중은행과 거래도 원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민간 금융권에서 조달한 자금으로 국책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만큼 경영의 자율성도 커질 수 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좋아지면서 알짜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의 매각을 서두르지 말자는 분위기도 그룹 내부에서 감지된다. 현재 두산중공업은 인프라코어 지분(36%)의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이다. 매각 가격은 최대 1조원대로 보고 있다. 그룹 내부에선 “충분히 비싼 값을 받지 못하면 안 팔아도 그만”이라는 말이 나온다. 두산은 “인프라코어가 건설현장 종합관리 솔루션으로 국토교통부 장관상을 받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며 ‘몸값 올리기’를 시도하고 있다.
 
정부의 전력 정책은 여전히 두산그룹의 앞날을 좌우할 수 있는 변수다. 두산그룹 자체 노력만으로 현재의 위기를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동안 두산중공업은 매출의 13~15%를 원자력발전소 설비의 제작·유지·보수 등으로 올렸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으로 신규 원전의 건설 사업이 막히면서 경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두산중공업에선 1000명이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떠났다. 두산의 풍력발전기를 발전 공기업들이 얼마나 사줄지도 관건이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두산중공업은) 아직 이자비용의 부담이 크다”며 “계획한 사업이 실제 이익에 기여하는 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