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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첩보 통해 월북 확인” 주변 “평범한 40대, 그럴 이유 없다”

중앙일보 2020.09.25 00:02 종합 5면 지면보기
국방부는 24일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에 의해 사살된 뒤 불태워졌다고 밝혔다. 이날 실종 공무원이 관측됐던 황해남도 등산곶 해안 인근에 북한 경비정이 떠 있다. [연평도=뉴시스]

국방부는 24일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에 의해 사살된 뒤 불태워졌다고 밝혔다. 이날 실종 공무원이 관측됐던 황해남도 등산곶 해안 인근에 북한 경비정이 떠 있다. [연평도=뉴시스]

지난 22일 북한군에게 사살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모(47)씨를 놓고 군 당국은 24일 브리핑에서 자진 월북 가능성을 거듭 시사했지만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평소 평범한 삶을 살았던 47세 공무원이 실종 해상에서 수십㎞를 나 홀로 이동해 북한으로 넘어가겠다는 생각을 품는 게 상식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③ 월북 시도했나, 실족사고였나
군, 신발 벗고 배에서 이탈 등 근거
일각 “군, 비난 피하려 월북 부각”
전문가 “원인이 뭐든 사살은 죄악”

이씨가 사라진 소연평도 해상에서 그가 발견된 등산곶 해상까지는 약 38㎞ 떨어져 있다. 일각에선 군과 당국이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회피하기 위해 월북이라는 동기를 부각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나오고 있다.
 
군 당국은 24일 이씨의 자진 월북 근거로 4가지를 들었다. ▶구명조끼를 착용한 점 ▶신발을 벗고 배에서 이탈한 점 ▶소형 부유물을 이용한 점 ▶북한 선박에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점이다. 정황상 실족으로 보기 어려운 데다 다양한 첩보 수단을 통해 이씨의 직접적인 월북 의사도 파악했다는 주장이다. 군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 군의 정보 능력이 노출될 수 있어 이 같은 정황 증거의 출처를 상세히 설명할 수 없다”면서도 “실종자가 표류한 뒤 생존을 위해 월북 의사를 밝혔을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로선 자진 월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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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월북을 단정하는 듯한 군 당국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구명조끼 월북’이 가능한 시나리오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우선 이씨의 월북 경로가 지나치게 무모하다. 이씨의 실종 지점에서 북한 해안까지의 최단 거리는 약 21.5㎞로, 헤엄을 쳐서 이동하기는 불가능하다. 특히 이 지역은 조류가 강하고 물때도 자주 바뀐다고 한다. 월북을 생각했다면 차라리 작은 배라도 구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가는 게 손쉬운 방법이다. 이 해역은 워낙 민감한 곳이라 군경이 선박의 NLL 접근을 사전에 차단하지만, 구명조끼 월북보다는 어선 월북이 더 현실적이다.
 
이씨가 월북을 감행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는 주변 사람들의 주장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씨 동료들은 2명의 자녀를 둔 평범한 40대 가장 이씨에게 월북할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이씨의 한 가족은 페이스북에 “월북이라는 단어와 근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왜 (월북을) 콕 집어 특정하는지 의문”이라고 반발했다. 이씨가 동료들에게 수천만원을 빌리는 등 경제적으로 부담을 겪었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이게 생사를 걸 만한 월북 동기로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또 이젠 당사자가 고인이 된 만큼 본인의 의사를 직접 확인할 방법도 없으니 월북 가능성을 거론하는 자체가 가족들에게 상처와 부담을 준다. 이 때문에 이씨 피살 사건에서 월북 동기 여부를 따지는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씨가 무슨 이유로 서해 NLL 북쪽의 해상에서 발견됐건 그가 총에 맞을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류제승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이씨가 월북했건, 단순 표류했건 북한이 비인도적 행위로 무고한 우리 국민을 살해한 죄악은 변함이 없고, 우리 당국 역시 자국민의 희생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군 이상의 정부 차원에서 북한에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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