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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 상관없이 해상 표류 민간인 조준 사살, 국제법 위반"

중앙일보 2020.09.24 16:21
국방부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어업지도 업무를 하다 돌연 실종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이 북한 측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고 24일 밝혔다. 사진은 북방한계선(NLL) 인근 소연평도 남방 1.2마일 해상에서 업무중 실종된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공무원 이모씨가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뉴스1]

국방부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어업지도 업무를 하다 돌연 실종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이 북한 측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고 24일 밝혔다. 사진은 북방한계선(NLL) 인근 소연평도 남방 1.2마일 해상에서 업무중 실종된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공무원 이모씨가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뉴스1]

 

서해상에 어업 지도를 나갔던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모(47)씨는 21일 오전 11시 30분 배 위에서 사라졌다. 이때부터 해상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씨는 22일 오후 3시 30분쯤 북한 해역에서 북측 수상사업소 선박을 접촉했다. 그러나 이씨는 구조되지 못 한채 그대로 떠 있었다. 이씨는 그 뒤로 6시간을 해상에 방치되다가 북측으로부터 밤 9시 40분께 피격됐다. 북측은 이씨의 시신에 기름을 부어 불태웠다. 시신은 수습하지 않고 바다에 유기했다.  

 

제네바협약 및 유엔해양법 등 명백한 위반
TJWG "전쟁범죄로 책임자 처벌 가능"
"유엔에 공식 문제제기, 조사위원회 설치해야"

북측 해역에서 사망한 우리 국민의 사망 경위를 국방부의 24일 브리핑에 따라 재구성하면 이랬다.
 
22일 서해 상에서 표류하던 우리 국민을 조준 사살하고 불태운 북한의 행태는 국제적으로도 비난 가능성이 높은 행위다. 이씨가 월북 목적이 있었든 아니었든, 해상에서 표류하고 있는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을 구조하기는 커녕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하기까지 한 것이어서다.
 
국제법에선 북한의 만행을 비인도적 행위로 금지하고 있다. 유엔해양법 협약(제98조)은 모든 국가는 자국 선박에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는 한 “바다에서 조난 위험에 빠진 어떤 인명에도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는 가능한 즉각적인 구조를 진행해야 한다”고도 돼 있다.
 
이 규정은 국제사회에서 해상을 표류하는 민간인을 구조하는 근간이 되는 것은 물론, 불법성 논란이 있는 이른바 ‘보트 피플(고무보트를 타고 입국을 시도하는 난민들)’의 구호 논리로 쓰일 때도 있다. 일단 인명은 구한 뒤 인근 국가에서 입국을 허용할지 말지를 정하라는 취지다.
 
북한은 1982년 유엔해양법 협약에 서명만 하고 현재까지 정식 비준하진 않았다. 하지만 필요할 때는 유엔 관련 회의에 참석해 적극적으로 발언을 해왔다.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박사는 “북한의 행태는 선박의 구조 의무를 넘어 인권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해 상이 아니라 북측 영해에 들어갔더라도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을 사살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어떤 경우든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네바협약(1949년)에는 "무기를 버렸거나 적대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민간인에 대해서는 가능한 모든 인도적 대우를 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이씨의 시신을 해상에서 불태우고 유기했는데, 이는 “민간인에 대한 생명ㆍ신체에 대한 살인, 개인의 존엄에 대한 모욕적 취급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에 위배된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는 굳이 관련 국제법 규정을 찾아보지 않아도 될 만큼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 중의 상식”이라고 말했다.
 
남ㆍ북이 통상적인 국제법을 적용할 수 없는 특수 관계임을 백번 고려하더라도, 북측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이번 북한의 만행은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이 합의한 4ㆍ27 판문점 선언과 9ㆍ19 남북군사합의 등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남북은 “육·해·공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북측에 대한 독자 제재나 유엔 등 국제사회를 동원한 압박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통일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우리 국민에게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운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라며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지만, 북측을 향한 제재는 별도로 발표하지 않았다.
 
외교부도 정례 브리핑을 통해 “유관 부처 간의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만을 밝혔다. 북한의 비인도적 행위를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 주변국을 통해 압박하거나 유엔 차원의 문제 제기를 할지에 대해서도 “주요국하고는 긴밀한 소통이 항상 이루어지고 있다”고만 했다.
 
앞서 정부는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대한 대응 조치로 독자 제재인 5.24 조치를 단행했다. 여기엔 ▶북한 선박의 남측 해역 운항 전면 불허 ▶남북 교역 중단 ▶대북 지원사업 원칙 보류 등의 내용이 담겼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사건 때는 금강산 관광이 전면 중단됐다.
 
이에 대해 국내인권기록단체인 '전환기정의 워킹그룹(TJWG)'은 "이번 사건은 향후 책임자를 전쟁범죄로 처벌하는 것도 가능한 중대한 국제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한국 정부가 북한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등을 요구하고,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제네바협약 및 의정서 규정에 따른 '국제사실조사위원회'를 설치해 법적으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정ㆍ김다영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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