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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올해 숙제 끝냈다”…빚 절반 갚았지만 재기는 정부 손에

중앙일보 2020.09.24 09:00
7월 두산의 풍력 연구소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7월 두산의 풍력 연구소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재무 위기를 겪고 있는 두산이 ‘빚 갚기→경영 정상화’로 주력 방침의 축을 옮기고 있다. 지난 4월 KDB산업은행 등으로부터 긴급 자금 3조6000억원을 빌린 뒤 “돈 되는 건 다 팔아서 갚는다”는 입장이던 것에서 최근엔 "올해 숙제는 다 끝냈다"며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계기는 이달 초 두산그룹이 두산중공업 대한 자본 확충 계획을 발표하면서다. 두산은 1조3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하기로 했다. 두산중공업 주식 1억2000만주를 새로 발급해 돈을 모은다는 계획이다. 이는 기존 발행주식의 48% 해당하는 양이다.
 
지주사인 ㈜두산은 두산모트롤과 두산솔루스 지분 등을 팔아 증자에 참여할 계획이다. 만약 팔리지 않는 주식은 주관 증권사가 인수하기로 했다.
 
박정원(58) 두산그룹 회장 등 대주주 일가도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자금을 내기로 했다. 5740억원 규모의 두산퓨얼셀 지분을 무상으로 두산중공업에 넘기는 방식이다. 현금이 투입되는 건 아니지만, 회계상 자본 증가 효과가 있어서, 재무상태에 대한 평가가 나아질 거란 게 두산의 기대다. 
 

두산중공업 창원 공장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두산중공업 창원 공장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자산 매각도 꾸준하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골프장 클럽모우CC를 1850억원에 판 게 그 시작이다. 이후 미래 성장 동력이었던 두산솔루스를 약 7000억원에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진대제 펀드)에 매각하고, 두산모트롤(4500억원)도 한 투자회사 연합에 팔게 됐다. 
 

또 28일 자로 서울 동대문의 두산타워를 8000억원에 팔면서 경영 위기의 한고비를 넘겼다는 게 두산 내부의 평가다. 동대문 두산타워는 그간 그룹의 자존심으로 여겨졌던 건물이다. 두산 관계자는 “유상증자가 마무리되면 빚의 절반은 갚게 되는 셈”이라며 “사실상의 채권단 관리 체제를 조기에 졸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두산은 재무구조가 나아지면, 시중 은행 등 1금융권과도 거래가 더 원활해질 것이란 기대다. 이 경우 나머지 국책 은행 대출금을 민간 금융권 자금으로 대체할 것이란 복안이다. 이를 통해 경영 자율성을 높일 수 있다. 또 풍력 사업 등에서 거둔 영업이익으로 부채ㆍ이자를 관리하겠다는 목표다. 또 다른 두산 관계자는 “상환 노력이 눈에 띄게 드러나면서 현재 채권단도 영업 비용 제한 등을 풀어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두산그룹 자체의 노력만으로 현재의 위기를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한 예로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두산이 겪는 위기의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두산중공업은 회사 매출의 13~15%를 원자력발전소 설비 제작ㆍ유지ㆍ보수 등으로 올렸는데,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이 막혀 그만큼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이다.
 
두산의 탐라해상풍력 발전단지. 사진 두산중공업

두산의 탐라해상풍력 발전단지. 사진 두산중공업

다만 회사 내부에선 “언젠가 터질 위기가 정부 정책과 맞물려 터진 것”이란 반응도 나온다. 원전 사업 이익으로 버티면서 조직 규모를 그대로 유지해왔는데, 이번 위기로 조직이 간소화됐다는 의미다. 두산중공업은 이번 위기로 1000명이 명예퇴직했다.
 
상황이 어느 정도 나아지면서, 알짜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의 매각을 서두르지 말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현재 두산중공업은 보유 중인 인프라코어 지분(36%)의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인데, “충분히 비싼 값을 받지 못하면 안 팔아도 그만”이라는 말도 나온다. 매각가격은 최대 1조원 대에서 협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와 동시에 두산 측은 "두산인프라코어의 건설현장 종합관리 솔루션이 국토교통부 장관상을 받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며 몸값 올리기도 시도하고 있다.
 
두산의 풍력발전기를 발전 공기업들이 얼마나 사줄지도 관건이다. 정부의 전력 정책에 따라 영업이익이 좌우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재기 과정도 정부 결정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두산 측도 부인하지 않는다. 한영수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자본확충만으로는 이 회사가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상태”라며 “아직 이자비용 부담이 크고, 계획한 사업이 실제 이익에 기여하는 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결국 갈 길은 멀었단 얘기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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