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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논설위원이 간다] 한쪽 눈 잃어가며 만든 종소리, 일본을 긴장시킨 한지

중앙일보 2020.09.24 00:30 종합 22면 지면보기
 
 

범종 제조 무형문화재 원광식 대표
대만 사찰에 33t 초대형 범종 수출
전통 한지 수입해 간 일본 업체는
"한지 때문에 일본 종이 덜 팔린다"

수십 년간 한 우물을 팠다. 전통을 이어가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더 잘할까’를 궁리했다. 직원이라야 1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기업이지만 나름대로 연구와 개발에 몰두했다. 연이 닿아 수출까지 하게 됐다. 범종(梵鐘) 제작 업체 성종사(충북 진천군)와 전통 한지(韓紙) 업체 성일한지(전북 전주시) 얘기다. 지난 15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숙련 기술과 성장 가능성을 함께 갖췄다’고 골라낸 ‘백년 소공인’ 111개사 가운데 두 곳이다. 범종과 한지를 산 외국인은 종소리에 반하고, 고운 종잇결에 사로잡혔다. 그들이 수출한 건 범종과 한지가 아니라 한국, 그 자체였다.
 
 
 

범종 소리에 자부심을 불어넣다  

무형문화재인 원광식 성종사 대표. 60년 넘게 종을 만들었다. 프리랜서 김성태

무형문화재인 원광식 성종사 대표. 60년 넘게 종을 만들었다. 프리랜서 김성태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딱 한 번 종을 쳤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울림은 2~3분 동안 이어졌다. 단순히 길게 끄는 여운이 아니었다.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맥놀이’를 거듭했다. 60년 넘게 종을 만든 장인의 자부심이 밴 소리였다.
 
성종사의 원광식(78) 대표는 세칭 ‘인간문화재’다. 정확히 표현하면 ‘중요무형문화재 112호 주철장’이다. 쇳물을 녹여 부어 범종을 만드는 장인이다. 2016년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ㆍ국보 제29호)을 복원해 “소리가 원본과 99.9% 같다”는 과학적 분석 평가를 받았던 게 바로 그다.
 
원 대표가 종을 만들기 시작한 건 열일곱살 때였다. “먹고 살려고” 팔촌 형이 하던 종 제작업체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너무 힘들어 도망치듯 군대에 갔으나, 돌아와서는 오직 종만 만들었다. 쇳물이 튀어 한쪽 눈을 실명하고도 종에 매달렸다.
 
원광식 대표가 에밀레종을 본떠 만든 범종. 프리랜서 김성태

원광식 대표가 에밀레종을 본떠 만든 범종. 프리랜서 김성태

70년대 초반 팔촌 형이 작고한 뒤 업체를 이어받았다. 운이 트였음인지 주문이 밀려들었다. “그때만 해도 사찰에 범종이 별로 없었어. 태평양전쟁 때 일본이 무기 만든다고 쇠란 쇠는 싹 쓸어 갔잖어. 나중에 해방(광복)이 됐지만 돈이 있어야 종을 만들지. 그런데 70년대 돼서 사정이 좀 나아지니까는 절들이 종을 만들기 시작한 거여.”
 
마침 성종사는 충남 예산 수덕사에 4t짜리 종을 납품해 신문과 방송이 앞다퉈 보도한 참이었다. 자연히 주목을 받았다. 수덕사에서도 다른 사찰을 소개해 줬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수출을 시작했다. 포교하러 외국에 사찰을 세운 한국 스님들이 제작을 부탁했다. 한 번 만들면 그만인 범종의 특성상, 국내에서는 슬슬 주문이 감소하던 때였다. 시장을 개척하려 국제 불교전시회에도 나갔다.
 
범종제작 업체 성종사의 원광식 대표(오른쪽)와 아들 원천수 성종사 기업부설연구소장. 프리랜서 김성태

범종제작 업체 성종사의 원광식 대표(오른쪽)와 아들 원천수 성종사 기업부설연구소장. 프리랜서 김성태

원 대표는 78년 ‘한국범종학회’를 만들었다. “일 배울 때 만든 게 주로 교회 종이었어. 범종은 주먹구구로 모양 흉내 내는 정도였지. 제대로 해야겠다 싶어서 역사학자ㆍ금속학자ㆍ음향학자ㆍ디자인학자를 모아 학회를 만든 거야.”
 
아들 원천수(51ㆍ성종사 기업부설연구소장)씨도 일본 긴키(近畿)대에서 금속재료를 공부하고 돌아와 전통의 복원과 개량에 힘을 보탰다. 지금 성종사는 밀랍으로 원형을 뜨는 전통을 고수하되, 쇳물을 붓는 틀에는 점토 대신 세라믹을 사용한다. 그래야 표면이 매끄러워 더 좋은 소리가 난다는 설명이다. “일본은 개량을 안 하고 최대한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들어요. 그건 우리가 못 따라가. 그런데 걔네는 개량을 안 하니까 소리는 우리가 훨씬 좋지.”
 
단지 자부심이 아니다. 성종사의 범종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대만의 불광산사(佛光山寺)는 한국과 일본의 범종 제조업체들을 돌아보고 성종사에 25.5t짜리 거대한 종을 주문했다. 그 덕에 성종사는 2013년 정부가 주는 ‘100만불 수출탑’을 받았다. 2015년에는 더 큰 33t짜리를 대만 명선사(明善寺)에 납품했다. 베트남에서는 108t이나 나가는 세계 최대의 범종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하노이 현지에서 제작해야 한다는 조건에 거절했다고 한다. “힘들어서 현지 제작은 못 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수출 주문을 받기 힘든 요즘은 전에 중국에서 수주한 20t짜리 종을 만들고 있다. “어째 갈수록 종 만드는 게 더 조심스러워져. ‘더 좋은 소리를 만들어야지’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여. 아무래도 더 공부해야 쓰겄어.”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인증서

 
성일한지 최성일 대표가 한지 위에 인쇄한 연꽃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이 아니라 그림 같은 느낌이다. 전통 한지가 내는 효과다. 권혁주 기자

성일한지 최성일 대표가 한지 위에 인쇄한 연꽃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이 아니라 그림 같은 느낌이다. 전통 한지가 내는 효과다. 권혁주 기자

성일한지는 사실상 가내수공업체다. 공장이 있다고 하나, 직원은 최성일(53) 대표와 부인ㆍ아들ㆍ여동생ㆍ제수, 이렇게 다섯 명이다. 이곳이 지난달 국제 인증을 받았다. 이탈리아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 중앙연구소가 내어 준, ‘고문서나 벽화 같은 문화재 보존ㆍ복원용으로 적합한 종이’라는 인증이다. 얇으면서도 내구성이 좋아야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전주시에 따르면 현재 이탈리아 문화재 보존ㆍ복원용 종이 시장은 일본 전통 종이인 ‘ 와시(和紙)’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 성일전주 한지가 인증을 받은 것이다. 국내에서는 경남 의령군의 ‘신현세 전통한지 공방’에 이어 두 번째다. 슬슬 일본이 긴장할 만하다.
 
인증을 받은 한지는 최성일 대표가 직접 개발했다. 그는 전주의 한지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가업을 이었으나, 1990년대 들어 값싼 중국 전통 종이가 들어오면서 사업이 힘들어졌다. 뛰쳐나가 남동생과 장사를 하다 “말아 먹고”는 돌아왔다. 그 뒤로는 한눈을 팔지 않았다. 2017년에는 김천종(72) 천일한지 대표 등 다른 3명과 함께 전주시가 지정하는 1호 ‘한지장’이 됐다.
 
최대표가 직접 만든 전통 한지 가운데 한 종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권혁주 기자

최대표가 직접 만든 전통 한지 가운데 한 종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권혁주 기자

그는 “두께가 고른 한지를 만드는 게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컨디션 좋을 때 뜬 종이인지, 감기 걸려서 뜬 건지, 막걸리 한 잔 걸치고 뜬 건지 알 수 있다니까요.”
 
자신이 기계를 고안해 문제를 해결했다. “손으로 대충 도면을 그려서는 공업사를 찾아가 만든 기계”라고 했다. 2017년 특허를 신청해 지난해 등록됐다. “좋은 닥나무를 고르고, 쪄서 껍질을 벗기고, 껍질을 말렸다가 불에 불려 칼로 긁어내고, 다시 알칼리에 삶고, 섬유를 분리하고, 초지를 뜨고, 압축ㆍ탈수ㆍ건조하는 과정 중에 극히 일부를 자동화한 거지요.”
 
한지는 서울 인사동에서 주문받아 만들어 납품했다. 그러던 차에 거래처에서 소개가 들어왔다. “일본에서 좋은 한지를 찾기에 연락처를 알려줬다. 한번 상담해 보라”는 것이었다. 전주시 한지산업지원센터의 도움으로 e메일을 통해 상담했다. 소량이지만 수출이 이뤄졌다. 2018년의 일이었다. 두 차례 납품한 뒤 일본을 직접 찾아갔다. “종이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궁금해서 가 봤지요. 그쪽 매니저가 계속 우리 한지를 쓰다듬으면서 얘기하더군요. ‘한국 종이가 너무 좋아졌다. 한국 종이 때문에 일본 종이가 덜 팔린다’고. 뿌듯했습니다.” 이어 방문한 나고야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소량이지만 일본 수출은 조금씩 늘고 있다. 2018년 4500만원, 지난해 5800만이었고 올해는 지금까지 6000만원 정도다. 지난 7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수출 유망 중기’ 지정을 받았다. 어떻게 수출을 늘릴 것이냐고 물었더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주문 따라 생산량을 늘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숙련된 손을 구할 수가 없어요. 한지 제조를 배우려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러면서도 최 대표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생각은 있습니다. 도쿄에서 전통 종이 박람회가 열리는데, 코로나19가 걷히면 한번 참가해 우리 종이를 알려보고 싶습니다.”
 
 
 

수출 길 열어주기는 누구의 역할인가

 
올해 함께 ‘백년 소공인’으로 지정된 영주대장간은 ‘아마존 호미’로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애초 석노기(66) 대표는 아마존에서 호미가 팔리는지도 몰랐다. 중간상이 호미를 떼어다 아마존에 입점한 게 인기를 끌었다.  
 
영주대장간이나 성종사ㆍ성일한지처럼 우리에겐 세계에서 통할 가능성을 가진 장인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여간해서 세계에 상품을 내놓아 볼 꿈을 꾸지 못한다. 만드는 재주는 최고지만, 해외에 상품을 알리고 파는 재주는 없다. 어쩌다 한두 번 수출을 해도 그 이상 판로를 확장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쩔쩔매기 일쑤다. 이들이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수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과연 누가 해야 할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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