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호 논설위원
20여 년 걸린 수리 보고서
현대과학이 만난 백제인
돌조각 2300개 정밀 복원
‘빨리 빨리’가 한국인일까
김씨의 속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원광대 건축과 재학 중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그도 몰랐을 것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20년 수리를 마치고 지난해 3월 말 일반 공개됐지만 그는 그간의 작업을 정리한 보고서를 준비하느라 1년여를 더 바쳐야 했다. 한마디로 시원섭섭하지 않았을까.
![한국 석탑의 맏형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 가장 오래되고 큰 석탑이다. 지난 6월 말부터 야간 경관 조명을 하고 있다. 왼쪽은 1993년에 재현한 동탑. [사진 서헌강]](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9/24/99f629d7-f9df-43b2-a2d6-146654f15f9a.jpg)
한국 석탑의 맏형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 가장 오래되고 큰 석탑이다. 지난 6월 말부터 야간 경관 조명을 하고 있다. 왼쪽은 1993년에 재현한 동탑. [사진 서헌강]
공을 들인 보고서는 알차다. 학술조사, 자문·점검회의, 해체 및 발굴 조사, 보존 처리, 보강 설계, 가공 및 조립 시공 등 석탑을 되살려낸 모든 과정을 깨알같이 담았다. 숱한 땀을 흘려온 각계 전문가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전통과 현대기술의 만남이 한눈에 들어온다. 미륵사지 석탑을 통해 본 한국 석조문화재 보존·수리 발전사쯤 된다.
눈에 띄는 건 돌조각(부재)마다 일일이 작성한 조사·보존카드다. 말하자면 주민등록증, 혹은 가족관계증명서를 만들어준 셈이다. 그 분량만 1000쪽 가깝다. 혹시라도 불의의 사고가 생길 경우(물론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석탑의 제 모습을 되찾는 1차 자료가 될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김현용 학예사.
미륵사지 석탑을 둘러싼 볼멘소리도 있었다. 탑 하나 수리하는 데 20년이 걸린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수 차례 감사도 받았다. 반면에 이번 보고서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빨리 빨리’가 결코 한국인의 본심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벽하게’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이른바 디테일의 힘이다. 1300년 전 석공들도 그런 마음으로 탑을 쌓아 올리지 않았을까.
백제 유적지를 순례한 소장 역사학자 황윤의 신간 『일상이 고고학-나 혼자 백제 여행』이 있다. 미륵사지 석탑 해체 이후 현장을 세 번 찾았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석탑의 조상 중 조상이다. 미륵사지 석탑 이후 돌로 탑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문화가 됐다. 그 옛날 백제인의 손길이 전해지는 듯 살아 있다. 당대 백제인들의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이 어느 정도 높았는지가 절로 느껴진다.”
필자도 현장을 두 번 방문한 적이 있다. 옛 절터에 우뚝 솟아 있는 석탑은 위풍당당했다. 뭔가 성스러운 장소에 들어선 것 같았다. 원래 형태(9층 추정)에 대한 기록이 없어 수리를 시작할 당시의 6층탑으로 복원했지만 그렇다고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너진 과거도 넉넉하게 껴앉는 마음, 우리도 이제 그 정도 여유를 되찾을 때가 아닌가 싶다. 곧 떠오를 추석 둥근달처럼 말이다. 나라의 안녕을 빌며 한층 한층 석탑을 쌓은 백제인의 마음이 그랬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