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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백신 '콜드체인'에 구멍, 왜? 다단계 하청에 감독은 부실

중앙일보 2020.09.23 17:47
22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본 독감 백신 앰플의 모습. 연합뉴스

22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본 독감 백신 앰플의 모습. 연합뉴스


제약사→의약품 유통 회사→의약품 물류 기업→지역 물류 대행사→지입차주→병·의원…
 
독감(인플루엔자) 백신이 유통 과정에서 상온에서 일부가 노출돼 못 쓰게 된 데는 최대 6단계를 거치는 복잡한 피라미드식 운송 구조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복잡한 운송 과정에 대한 관리 감독은 부실해 생산부터 최종 소비까지 섭씨 2~8℃를 유지해야 하는 의약품의 콜드체인(cold chain)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다. 
 
이번에 상온 노출 사태가 벌어진 독감 백신 조달 입찰에서 1259만 1190도즈를 납품하기로 낙찰 받은 곳은 신성약품이다. 신성약품은 백신 제조사가 아니다. 백신 제조는 녹십자·보령바이오파마·일양약품·SK케미칼·사노피-파스퇴르·한국백신·LG생명과학 등 7개 회사가 담당하고, 신성약품은 정부가 계약한 조달가격으로 백신을 7개사에서 구입한다.   
 

‘규모의 경제’ 이룬 중개기업에 맡겨

2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신성약품 본사. 김포 = 문희철 기자

2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신성약품 본사. 김포 = 문희철 기자

 
23일 신성약품은 "7개 제약사에서 구입한 독감 백신을 직접 배달하지 않고 의약품 유통 중개 전문 기업 S사에 맡겼다"고 밝혔다. S사는 다시 냉장탑차를 보유한 업체와 계약했다. 이는 의약품 유통 중개 전문 기업이 모든 백신을 직접 운송할 만큼 냉장탑차를 충분히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약품 유통 전문 기업은 또 다시 전문의약품 운송 면허를 보유한 물류기업과 계약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게 끝이 아니다. 전문의약품 운송 면허를 보유한 물류사는 표면적으로는 의약품을 배송한다. 하지만 이 물류회사도 자체 소유의 냉장탑차가 넉넉하지 않다. 일부 냉장탑차를 자체 보유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지입 차량을 동원한다. 지입 차량은 물류사가 직접 소유하지 않고, 개인·법인 차주가 소유한 차량 중 위탁·수탁 계약을 맺고 운행하는 차량이다.   
 
이번 백신 운송 과정에선 변수가 하나 더 끼어들었다. 신성약품이 물류 운송을 의뢰한 S사는 비수도권 일부 지역에 위치한 병·의원 물류 배송망을 확보하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S사는 하청받은 백신 운송을 다시 여러 개의 지역 물류 전문 기업에 재하청을 줬다.  
 
의약품 운송 과정이 이같은 피라미드식 생태계로 짜인 건 단가 때문이다. 의약품 운송 단가는 전문성과 냉장탑차가 필요해 일반 택배보다는 상대적으로 높다. 하지만 의약품 운송업체들은 "정부 낙찰가가 시장가보다 낮기 때문에 이익을 남기려면 운송 물량을 최대한 확보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한다"며 "그래야 전문의약품 운송 면허 업체에 하청을 맡겨도 조금이라도 남는 게 있다"고 말했다. 신성약품이 S사에 백신 운송을 의뢰한 배경이다.
  

일부 냉장탑차 지입 차주가 일탈 행위

 정부가 독감 백신 유통 과정 문제로 무료접종 사업을 일시 중단한 가운데 23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증진의원 서울동부지부를 찾은 시민이 유료 독감 예방접종을 받고 있다. 뉴스1

정부가 독감 백신 유통 과정 문제로 무료접종 사업을 일시 중단한 가운데 23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증진의원 서울동부지부를 찾은 시민이 유료 독감 예방접종을 받고 있다. 뉴스1

 
신성약품은 이번에 S사의 운송에 허점이 드러나자 23일 또 다른 의약품 유통 전문 기업인 J사와 백신 배송 계약을 체결했다. 신성약품에 따르면, J사는 S사보다 더 규모가 큰 글로벌 기업의 한국법인이다. 특히 S사와 달리 J사는 국내 모든 의약품 운송을 재하청을 주지 않고 직배송한다. 신성약품은 “안정성 측면에서 국내 최고 수준”이라며 "운송비는 S사보다 더 많이 줘야 한다"고 밝혔다. 
 
신성약품은 정부와 계약한 1260만 도즈의 백신 중 740만 도즈를 계약사에서 지난 21일까지 넘겨받았다. 이 중 520만 도즈는 이미 S사를 통해 전국 병·의원으로 배송을 마쳤고, 220만 도즈는 신성약품 물류센터에서 보관 중이다. 나머지 520만 도즈는 아직 제약사가 보관하고 있다. 신성약품은 아직 배송하지 않은 백신 전량을 J사에게 맡길 것으로 보인다.
 
의약품 운송 과정은 이렇게 복잡하지만 관리 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 상온에 노출된 백신은 S사가 재재하청을 준 일부 1t 냉장탑차 지입 차주가 백신을 운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예컨대 냉장탑차의 문을 일시적으로 열어 둔 상태에서 백신을 배송하거나, 상온에서 냉장탑차 문을 열고 운송할 백신 확인 작업을 한 경우다.  
 
백신은 제품 생산 단계부터 최종 소비 단계까지 전 과정에서 적정 온도인 섭씨 2~8℃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일탈 행위 과정에서 적정 온도가 유지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게 질병관리청의 설명이다. 적정 온도가 유지되지 않으면 백신의 단백질 함량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 있다.
 
이에 대해 신성약품 관계자는 “하청을 맡긴 의약품 전문 운송 기업이 재하청 기업을 대상으로 온도 유지의 중요성을 교육했다”며 “다만 일부 운송기사들이 보다 빠르게 운송을 마치기 위해서 일탈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복잡한 하청·재하청 구조가 백신이 적정 온도를 유지하지 못하는 의약품 콜드체인(cold chain)의 ‘구멍’을 낳은 것이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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