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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작업' 둘러싼 택배기사 파업…일단 접었지만 불씨 여전

중앙일보 2020.09.22 16:30
22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한 택배업체 직원이 배달할 물건을 옮기고 있다. 뉴스1

22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한 택배업체 직원이 배달할 물건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최근 택배노조가 '분류 작업'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예고했던 파업은 택배 업계가 지원 인력을 투입하기로 하면서 일단 봉합됐다. 하지만 분류 작업을 둘러싼 택배 기사와 회사간 견해차가 해소되지 않아 추석을 앞두고 택배 대란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2일 택배노조에 따르면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와 민주노총 전국택배연대노조는 21일로 예정됐던 추석 택배 분류작업 거부 계획을 철회했다. 정부와 택배업계가 추석 기간 지원인력을 투입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자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따라 택배업계는 추석 기간 분류ㆍ배송 지원인력 등 하루 평균 약 1만명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택배 기사, "대가 없는 분류는 우리 일 아냐"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물량 폭증으로 인해 상택배노동자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택배노동자 분류작업 전면거부 돌입,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물량 폭증으로 인해 상택배노동자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택배노동자 분류작업 전면거부 돌입,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분류 작업은 배송 전 물류터미널에서 택배 물품을 기사가 배송할 구역별로 나누는 작업이다. 택배노조는 이 작업이 택배 기사의 업무가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택배 기사는 개인 사업자고, 월급이 아닌 건당 수수료를 받는 만큼, 보상을 못 받는 분류 작업은 기사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택배노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물량 폭증으로 상반기에만 7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했다"고 주장한다. 노조는 주된 원인으로 분류 작업을 지목하며 택배 기사들은 이 작업에 하루 평균 업무시간의 40% 정도를 할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익산 CJ대한통운과 배송 계약을 맺고 있는 택배 기사들은 최근 배포한 '배송지연 사과문'에서 "냉방시설 없이 40도에 육박하는 작업현장에서 5~6시간 동안 서서 끝없이 밀려드는 택배물을 분류하는 현실"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택배회사, "분류는 업무 아닌 '상품 인수'"

택배 업계는 노조의 주장에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물품 분류도 택배 기사들의 업무라고 보고 있다. 노조가 '분류 작업'이라고 칭하는 업무는, 기사들이 배송할 물건을 가져가는 '상품 인수' 개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택배 업계 관계자는 "택배 기사들이 누군가를 위해 분류를 해주거나 회사를 위해 별도의 노무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본인 물품을 인수해가는 업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택배기사의 주장은 분류 작업을 다른 인력이 해줄 경우 시간을 아껴 배송을 더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수익을 올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로 업무가 과중하다면 스스로 배송 물량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실제 지난 2010년 대법원에서는 분류작업이 '택배' 근로에 포함됐다고 봤다. 2017년에도 비슷한 사건에 대해 광주지방법원은 '원고(택배 기사)들이 자신들의 책임배송지역 내에 배송하여야 할 물건들을 분류하였다 하더라도 피고(택배 회사)가 노무비 상당의 이득을 법률상 원인 없이 취득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물품 자동 분류가 대안 될까

CJ대한통운 SUB터미널에는 화물 자동분류기가 설치돼 있다. [사진 CJ대한통운]

CJ대한통운 SUB터미널에는 화물 자동분류기가 설치돼 있다. [사진 CJ대한통운]

 
분류 작업에 대한 택배 기사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자구책을 마련한 업체도 있다. CJ대한통운은 지난해 1200억원을 들여 화물 자동 분류기(wheel sorter)를 도입했다. 대한통운 관계자는 "휠 소터로 인해 상품 인수 작업 과정에 필요하던 노력과 시간이 대폭 줄었다"면서 "올해는 1600억원을 들여 소형·대형 물품을 분류하는 라인을 전체적으로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J대한통운 택배 기사 금종명씨는 휠 소터 도입 이후 노동 강도가 3분의 1로 줄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전엔 기사가 각자 주소를 일일이 보고, 다닥다닥 붙어 직접 분류를 해야했다"면서 "배송에 필요한 체력을 비축할 수 있어 업무 강도가 확실히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 택배 물량의 50%를 차지하는 대한통운의 경우 이 같은 투자가 가능하지만 새로운 투자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업체들은 휠 소터 도입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실정이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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