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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문 대통령이 역사를 의식한다면

중앙일보 2020.09.22 00:27 종합 29면 지면보기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

“문재인 대통령은 디지털 혁명을 일으킨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문 정부내 나랏빚 400조 늘어
빚으로 선심쓰는 포퓰리즘 막고
재정 건전성 지키는 것이 업적

말 많은 뉴딜펀드를 왜 하는지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가 문 대통령의 진정성을 강조하면서 한 얘기다. 그가 전한 문 대통령의 심경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역사의 무대에 어떤 업적과 정치적 유산을 남길지를 고심하는 것은 모든 대통령의 숙명이다. 대통령이라면 누구나 미래를 위한 초석 하나를 놓고 싶어한다. 이런 욕망은 남은 임기와 반비례해 정권 후반부로 갈수록 강렬해지기 마련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역사는 유구하게 이어진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한 것도 한국 경제가 장차 먹고 살 길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열성 지지자들이 원수처럼 등을 돌리는데도 밀고 나갔다. 그 결과 21세기 들어 중국의 무서운 부상에도 한국 경제가 버틸 수 있는 든든한 시장과 한국 산업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대통령 노무현은 눈앞의 지지층 일부를 잃었지만 나라의 앞길을 열었다.
 
문 대통령이 역사를 생각해서 정작 시급하게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재정에 기강을 세우는 일이다. 나랏빚은 고삐가 풀렸다. 660조원의 빚을 물려받은 문재인 정부는 5년간 400조원의 빚을 늘려 1070조원의 빚을 다음 정부에 넘겨준다. 집권 첫해 36%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년 만에 50%를 돌파한다(2022년 50.9%). 재정건전성엔 빨간 불이 들어왔다.
 
서소문 포럼 9/22

서소문 포럼 9/22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나랏빚이 느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국민들도 그쯤은 이해한다. 그러나 문제는 나랏빚이 불어나는 속도, 재정운용의 방만함이다. 역사상 이렇게 빨리 빚을 늘린 정부는 없었다.
 
대중에 영합하는 정치세력과 영혼 없는 공무원들에게 세금과 나랏빚이 주인 없는 돈이나 마찬가지가 되면 안 된다. 누군가는 챙겨야 하고, 그것이 선출된 권력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정부 지출은 국민 세금을 재원으로 하고, 그것이 모자라 발행한 국채는 결국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할 빚이기 때문이다. 재정관리가 부실해지면 나라 경제가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지금도 20여 년 전 외환위기를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외환위기를 이토록 순조롭게 극복한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그 핵심엔 재정 건전성이 있었다. 기업과 금융의 부실이 터지더라도 한국 정부가 메울 수 있다는 신뢰가 국제 금융계에서 통했다.
 
당시 이규성 재정경제부장관을 비롯한 김대중 정부의 경제팀이 역점을 둔 것은 정부 먼저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팀에게 빈축을 사면서까지 재정건전성을 필사적으로 지켰다. 위기상황에서 재정을 풀지 않은 것이 경제를 위축시킨 측면도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정부 부터 뼈를 깎는 각오를 보였기에 재벌과 금융의 구조조정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정부가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 그것이 바로 구조조정의 황금률이었다.
 
최근 문 대통령도 좋은 기회가 있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통신비 2만원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자고 들고 왔을 때 안 된다고 제동을 걸었어야 한다. 그 예산 9300억원은 한 달 실업급여(약 1조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2만원의 통신비는 전액을 빚내서 하는 추경 편성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어야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 대표와 뜻을 같이했다. 그리곤 “국민 모두를 위한 정부의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라고 했다. 빚으로 선심 쓰는 포퓰리즘의 싹을 자를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현 정권의 심각한 문제는 나랏빚 무서운 줄 모른다는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예산당국도 예전의 재정 파수꾼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훗날 역사의 법정에서 “대통령과 여당이 국가채무비율 40%라는 재정 마지노선을 허물었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지금 예산 관료에겐 정치권의 선심성 지출 요구를 막아내겠다는 결기도, 배짱도 없다.
 
문 대통령이 역사를 의식한다면 늦기 전에 나랏빚 제어에 나서야 한다. 무조건 긴축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불요불급한 지출을 없애고 효용 높은 곳에 돈을 써야 한다. 그래서 코로나19가 끝난 후에도 한국의 재정이 튼튼할 수 있다면, 미래세대의 나랏빚 부담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문 대통령의 업적이 되지 않을까.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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