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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응급실 병상 빈자리 있으면서 내 아내는 왜 안돼?

중앙일보 2020.09.21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55)

"빈 침대가 없어요. 앉아서 진료받으셔야 할 거 같네요."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보호자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진 pikist]

"빈 침대가 없어요. 앉아서 진료받으셔야 할 거 같네요."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보호자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진 pikist]

링거를 놓으러 온 간호사에게 진료 절차를 물었다. 혈액검사와 엑스레이를 진행할 거라고 했다. 검사가 많은 걸 보니 아내 상태가 자못 심각한 모양이다. 작은 병원으로 옮기지 않길 잘했다. 직장 일에 치여 그동안 아내에게 너무 소홀했다. 평소에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이렇게 응급실까지 오는 일도 없었을 터. 아픈 걸 내색하지 않는 아내가 안쓰러웠다. 나는 간호사에게 환자를 침상에 눕혀달라고 부탁했다.
 
"지금 빈 침대가 하나도 없어요. 앉아서 진료받으셔야 할 거 같네요."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열이 끓어 몸도 못 가누는 환자를 의자에 앉혀두겠다니. 이게 응급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다. 간호사를 붙잡고 통사정을 해봤지만 요지부동. "없는 침대를 어쩌겠어요?" 딸뻘 되어 보이는 간호사였는데 아까 그 의사처럼 냉랭하기 그지없다. ‘큰 병원에서 일하는 게 무슨 벼슬인가?’
 
간호사 붙잡고 더 말해봐야 소득이 없을 거 같아 데스크로 나갔다. 나이 지긋한 의사가 눈에 띄었다. 여기저기 지시를 내리는 폼이 책임자쯤 되어 보였다. 나는 아내의 상태를 설명하고 정중하게 침대를 부탁했다. 그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습니다." 간절한 나의 청이 단칼에 썰려 나갔다.
 
'이 큰 병원에 침대가 없다니. 그깟 침대가 몇 푼이나 한다고. 말도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나 비상식적인 대답이라 의심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나. 저 안쪽에 비어있는 침대가 눈에 띄었다.
 
"저기 빈 침대가 있지 않습니까?" 의사는 내어줄 수 없는 침대라고 했다. 심각한 환자를 위해 남겨둔 거라고 변명했다. 그럼 내 아내는 응급 환자가 아니란 말인가? 침대가 없으면 모르되 있으면서도 내어주지 않는다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내 행색이 남루해서인가? 들불처럼 분노가 끓어올랐다. 더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흥분한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경비원들이 나를 둘러쌌다. 정당한 이의제기를 하는 중인데, 그들은 마치 나를 범죄자처럼 취급했다. 아내가 아픈 몸을 이끌고 와서 나를 말렸다. 앉아 있어도 괜찮다며 자리로 돌아가자고 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무능한 남편을 만나 평생을 고생하더니, 이제는 아파서 찾은 응급실에서도 대접받지 못하는구나. 이 세상은 정말이지 단 한 발자국도 좋아지지 않았다.
 
우리병원 응급실 침상 수는 40개다. 그에 맞춰 장비와 기구도 40명 분량을 갖추고 있다. 왜 하필 40일까?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가 감당할 수 있는 환자 수가 최대 40명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도 극한까지 쥐어짜야 가능한 숫자다. 환자 수가 40에 가까워지면 한 명 한 명 자세히 들여다볼 여유가 사라진다. 그런데! 심지어! 현재 응급실에는 40의 두 배인 80명의 환자가 들어와 있다.
 
비행기에 좌석 수의 두 배나 많은 사람이 타면 어떻게 될까? 선박에 선적 용량보다 두 배나 많은 짐을 실으면 어떻게 될까? 필시 사고만 안 나도 감지덕지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유난히 응급실만큼은 침상 수보다 두 배나 많은 환자가 들어와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엔 분노한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켜도 이상할 게 없는데 말이다.
 
유난히 응급실만큼은 침상 수보다 두 배나 많은 환자가 들어와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엔 분노한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켜도 이상할게 없는데 말이다. [사진 pxhere]

유난히 응급실만큼은 침상 수보다 두 배나 많은 환자가 들어와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엔 분노한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켜도 이상할게 없는데 말이다. [사진 pxhere]

 
주위에 텅텅 빈 작은 병원 응급실이 네댓 개는 있는데, 온통 사람들은 큰 병원에 몰려와 침대를 달라 아우성친다. 태반이 작은 병원에서 치료 가능한 경증 질환인데 끈덕지게 큰 병원에 눌어붙으려 한다. 그 때문에 정작 급한 환자들이 치료 기회를 박탈당하기 일쑤. 조금 전에도 중증 환자의 이송 문의를 거절했었다. 누군가의 이기심이 다른 환자의 생명을 빼앗고 있건만, 누구도 그에 대한 죄책감이 없다.
 
동시다발적으로 응급실 곳곳이 터져나간다. 화면엔 빨간 숫자가 가득하고 핸드폰엔 쉬지 않고 경고 알람이 울린다. 단 하나도 놓쳐선 안 된다. 필사적으로 버텨낸다. 이를 악물고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막아낸다. 그 와중에 웬 사내가 침대를 내달라고 조른다. 저쪽 감기 환자의 보호자라고 한다. 없는 침대를 어떻게 달라는 건지, 내가 연금술사도 아니고. 그는 심폐소생술 전용 침대를 가리켰다. ‘저걸 내달라고? 그럼 심장이 멎은 환자가 들이닥치면 땅바닥에서 소생술을 하란 건가?’ 가슴 끝까지 울분이 끓어올랐다. 흥분해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안전요원들이 말리러 왔다.
 
보호자가 자리로 돌아갔지만, 좀체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괜한 책상에 주먹질하며 화풀이를 해본다. 눈치 없는 경고 알람은 그사이에도 삐삐거리며 울려댄다. 정말이지 못 해 먹을 짓이다.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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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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