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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친이, 친박 그리고 친문

중앙선데이 2020.09.19 00:30 704호 31면 지면보기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모든 게 ‘친이’에서 비롯됐다.
 

이명박 잡은 건 친이였고
박근혜 해친 건 친박이다
친문도 역시 같은 길 걸어
지키고 싶다면 쓴소리해야

이명박을 지지한다는 한 줌의 무리였다. 이전에 ‘상도동계’ ‘동교동계’ 그리고 ‘친노’라 불리는 무리가 있었으나, 그들에게는 그나마 넘지 않는 선이 있었다. 하지만 ‘친이’는 달랐다.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제 세상을 만난 듯 찧고 까불었다. 존재감 없던 대선 경쟁 후보보다 당내 경선자가 더 미웠다. 총선이라는 기회가 오자, 박근혜를 지지하던 한 줌의 무리를 대놓고 내쳤다. 이른바 ‘친박 공천 학살’이었다.
 
친박들은 악에 받쳤다. ‘친박연대’라는 기상천외한 당을 만들었다. 사람에 충성한다는 말을 대놓고 하면서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어쨌거나 살아 돌아왔다. 공천 학살의 파문이 너무도 컸던 덕분이었다.
 
여세를 몰아 대권까지 잡았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자, 복수의 칼을 뽑아 들었다. 역시 존재감 없던 대선 경쟁자 아닌 당내 정적들로 칼끝이 향했다. 이번에도 대학살이 벌어졌다. 규모는 더 컸다. 친이는 물론, 배신자 소탕 작전이 벌어졌다. ‘친박’을 넘어 ‘진박’이 나왔고, 너도나도 숟갈을 드니 ‘진박 감별사’까지 나왔다. 온갖 진상 짓을 하면서도 창피함을 몰랐다. 결국 국민의 철퇴를 맞았다. 대통령은 탄핵됐고, 정권이 바뀌었다.
 
아뿔싸! 새로 정권을 잡은 무리는 오히려 더했다. 문재인을 지지하는 ‘친문’들 눈에는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대통령만이 안중에 있었고, 그를 위한 ‘홍위병’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 사전에 ‘수치’나 ‘창피’ 따위는 아예 들어있지 않았다. 대통령을 지키는 게 ‘정의’였고, 그렇지 않은 건 모두 ‘적폐’였다. ‘친일’이라는 동의어도 있었다. 그래서 검찰을 손에 넣는 게 검찰 개혁이었고, 법원을 거머쥐는 게 사법 개혁이었다.
 
선데이칼럼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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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를 막아낼 두 사람이 법무장관이 됐다. 하나를 지켜내려다 실패하고, 또 하나를 지키고 있는 친문의 몸짓은 이성으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다. 그토록 민망한 발언을 하고 집에 돌아가 자식들 얼굴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놀랍기만 하다.
 
‘단군 이래 최고의 위선자’라는 조국을 하루아침에 조광조로 만들더니, ‘철부지 탈영병’ 추미애 아들은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을 실천한 안중근급 위인 반열에 올렸다. 이에 비하면 정경심이 PC를 빼돌린 걸 두고 “증거 보존을 위한 것”이라 외쳤던 유시민은 상상력이 부족한 거였다.
 
이 정도니 거칠 게 없다. 대통령 편에 서면 자녀에게 주식을 불법 증여하면서 고용보험료도 내지 않는 악덕 기업주도 OK였고, 위안부 할머니를 팔아 치부해온 전문 사기꾼도 OK였다. 국민한테는 그렇게 팔라던 아파트를 수집하듯 사 모았어도 금배지를 달아주는데 ‘노 프로블렘’이었다.
 
반면 다른 편에 서면 집중포화를 받는다.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자세를 끝까지 유지해 달라”며 검찰총장 임명장을 줬던 윤석열을 당장 사퇴해야 할 ‘항명자’로 만들었다. 감사원장 인사청문회 때 “미담 제조기”라고 칭송받던 최재형도 “존경받는 법관으로서 생활해온 게 맞는지 의구심 드는” ‘정치꾼’으로 전락했다. 장군 출신 의원이 일개 당직 사병만도 못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군을 농락하는 형편이니, 보충역 출신 원내대표가 “카톡으로 휴가 연장 가능” 운운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모두 다 똑같다. 친이, 친박, 친문 말이다. 조지 버나드 쇼가 한마디로 요약한다.
 
“어리석은 인간은 부끄러운 짓을 할 때마다 그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목청 높인다.”
 
부끄러울수록 목소리가 커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의무가 자기가 지키려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의무인 까닭이다.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이 모두 사법 심판을 받고 있지만, 친이나 친박 누구 하나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지 않았나 말이다.
 
오히려 이명박을 잡은 건 친이요, 박근혜를 해친 건 친박이었다. 자신이 지키겠다는 사람이 어긋난 길을 걸을 때마다 앞에 나서 바로잡았다면, 비극은 없었을 터다. 그렇지 않고 옆에 달라붙어 단물만 빤 결과가 오늘의 모습이다.
 
친문의 길 또한 다르지 않다. 그렇게 지키고 싶은 사람이라면 옆에서 듣기좋은 말을 늘어놓는 대신, 소태만큼이나 쓴소리를 해줘야 한다. 길을 어긋날 때마다 브레이크를 걸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나마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처럼 몇 안 되는 의원들이 바른 소리를 할 때마다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는 권리당원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단 말이다. 지금처럼 한다면 결과는 뻔한데, 그런 결과로 점점 다가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유권자들도 책임이 있다. 비타민C의 효능을 밝혀내 노벨 생리의학상을 탄 알베르트 센트죄르지가 한 말이 그것이다.
 
“정치가가 다음 세대를 생각할 때 정상배들은 다음 선거를 생각한다. 사람들은 최고의 정상배를 뽑아놓고 그가 최악의 정치가라는 사실을 알고는 기절할 듯 놀란다.”
 
나중에 후회하고 분노하지만 말고 잘 기억해뒀다가 정상배들에게 표를 주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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