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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층 ‘헬리콥터 부모’, 청년 가슴에 좌절 폭탄 투하

중앙선데이 2020.09.19 00:21 704호 28면 지면보기

러브에이징

산업화 시대의 훈풍을 타고 지식·정보화 시대에 안착한 대한민국호가 권력층 ‘헬리콥터 부모’들의 빗나간 자식 사랑으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해야 할 청년들을 분노와 좌절로 내몰고 있다.
 

전·현직 법무부 장관 자녀 논란
공정성 믿는 2030 마음 상처 커

고질병 ‘부모 찬스’ 근절 못하면
피터팬 신드롬 ‘어른 아이’ 양산

2020년을 살아가는 한국 청년들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공정성이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건 기회는 평등해야 하며 과정은 공정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좋은 일이건 궂은 일이건 투명하고 합리적인 몫이 배당돼야 한다는 인식은 공적인 사안은 물론 동료나 친구, 심지어 연인과의 사적인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식사 모임에서 일반화된 더치페이(Dutch pay) 문화는 대표적인 예다. 부모 세대에서 통용되던 남녀 간 역할 분담도 생리적 차이점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받아들인다. 용맹이나 단호함을 상징하던 남성미나 부드러운 감성을 의미하던 여성미는 개성미로 대치된 지 오래다. 가난한 시대를 헤쳐 나가면서 상명하복 문화가 초래하는 불평등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던 노년층, 경제 발전이라는 대의 앞에 개인의 희생을 묵묵히 감수했던 중장년층의 정서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평등과 함께 시작한 대한민국 역사
 
사실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배달민족의 갈망은 대한민국 탄생과 맥을 같이 한다. 해방 후 제정된 ‘구(舊) 황실재산처리법(1945.9.23)’과 ‘구(舊) 왕궁재산처분법(1950.4.8.)’은 518년간 27명의 국왕을 배출한 조선 왕실의 재산을 국유화 함으로써, 신분사회 이씨조선과의 단절을 선언했다. 비록 입헌군주제이기는 하나 천황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켜 수십만 국민을 핵폭탄으로 사망하게 한 이웃 나라 일본이 전후에도 왕실을 존치해 온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민주주의의 상징인 선거권도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성별·재산·교육 등과 무관하게 ‘모든’ 성인에게 주어졌다. 18세기 말 대혁명을 통해 절대 군주를 단두대로 보낸 평등의 나라 프랑스도 여성은 1945년이 돼서야 선거권을 확보했고, 자유민주국가의 상징인 미국에서 흑인이 실질적인 투표권을 갖게 된 건 1966년이다. 또 일본은 지금도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자에게는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처럼 발 빠른 역사적 결단을 통해 평등과 공정을 추구해온 부모 세대, 조부모 세대의 노력과 바람이 현실로 나타난 집단이 지금의 20·30세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명한 한국 청년들이 매사에 무조건적인 ‘절대 평등’을 주장하는 건 아니다. 어느 사회나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잘 안다. 뛰어난 외모·지능·재능·가문 등을 타고나 한평생 대우받고 사는 상팔자를 부러워하고, 평생 궂은일만 하고 사는 고달픈 인생을 딱하게 여기기도 한다.
 
사실 인간의 삶은 유전적·환경적·운명적 요인과 개인의 노력이 혼재된 결과물이라 절대적인 평등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사회가 지속해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에게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공정한 경쟁 시스템, 즉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그래야 저마다 타고난 역량을 최대한 개발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의욕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헌법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며,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이나 특수계급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유난히도 차별을 싫어하는 국민성을 조롱하며 자녀에게 온갖 부당한 특권을 선사하려는 권력층의 탐욕과 궤변이 수많은 시민을 수시로 분노하게 하면서 좌절감에 빠뜨린다는 사실이다. 특히 법과 원칙을 수호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전·현직 법무부 장관이 자녀 문제로 검찰 수사와 법정 다툼을 연출하는 상황은 20·30세대와 그 부모들에게 스트레스 폭탄을 투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만큼 국민이 체감하는 정신적 상처는 막심하다.
 
더욱이 자녀를 위한 특혜성 청탁을 미담으로 승화시키는 정치권의 망발과 부당한 부모 찬스를 자연스레 활용하는 자녀들의 모습은 이미 사회적 문제로 부각한 ‘어른 아이’를 양산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의 탁월한 모방 능력은 욕하면서 배우는 일에 익숙한 데다, 옳고 그름을 떠나 유명 인사 따라 하기는 본능적 속성이기 때문이다. 실제 조국 교수와 추미애 장관도 과거에는 지금의 자신들과 유사한 행태를 보였던 권력자 부모들을 맹비난한 바 있다.
  
부당한 특권의 대물림 이제는 끊어야
 
만일 지금의 상황이 앞으로도 반복돼 ‘어른 아이’ 인구가 증가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매사를 부모에 의존해 살고픈 피터 팬 신드롬에 걸린 그들은 책임은 회피하고 보호받기만을 원하기 때문이다. 좋은 조건을 구비해 사회에 진출해도 부적응자가 되기 쉽고 부모 사후에는 사회적 부담이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대한민국 사회의 고질적 병리 현상인 부모 찬스를 단호하게, 지속적으로 뿌리 뽑아야 하는 이유다.
 
자식 사랑도 지나치면 병적인 상황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본인의 정신건강과 자녀의 성숙한 미래를 위해, 나아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옛 성현이 강조했던 중용(中庸)의 가치를 마음속 깊이 심어주는 범국민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것 같다.
 
황세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예방센터장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등 칼럼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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