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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파’ 이란 위협에 대응…이스라엘과 손잡는 ‘수니파’

중앙선데이 2020.09.19 00:02 704호 9면 지면보기

[최익재의 글로벌 이슈 되짚기] 급변하는 중동 정세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평화협정 서명식에서 압둘라티프 빈 라시드 알자야니 바레인 외무장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셰이크 압둘라 빈 자예드 알나흐얀 아랍에미리트 외무장관(왼쪽부터)이 협정문을 펼쳐 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평화협정 서명식에서 압둘라티프 빈 라시드 알자야니 바레인 외무장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셰이크 압둘라 빈 자예드 알나흐얀 아랍에미리트 외무장관(왼쪽부터)이 협정문을 펼쳐 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중동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이번엔 위기 고조가 아닌 해빙 무드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이스라엘이 걸프 지역 아랍국인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과 관계 정상화를 위한 평화협정을 전격 체결했다. 협정 이름도 ‘아브라함 협정’이다. 유대교·이슬람교·기독교의 공통 조상인 아브라함에서 따왔다고 한다. 1948년 건국 이래 이스라엘의 아랍 수교국은 이집트(1980년)와 요르단(94년)뿐이었다. 이제 4개국으로 늘게 됐다. 그만큼 적대국이 줄어든 셈이다. 특히 26년 만에 아랍권의 두 나라와 한꺼번에 수교하게 된 것은 중동 정치 지형에서 커다란 변혁의 조짐으로 받아들여진다.
 

UAE·바레인, 이스라엘과 수교
“사우디·오만도 평화협정 추진”
트럼프, 재선용으로 이란 견제

반이스라엘 전선 붕괴 가능성
수니·시아파 대립 격화할 듯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평화협정 서명식에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셰이크 압둘라 빈 자예드 알나흐얀 아랍에미리트 외무장관, 압둘라티프 빈 라시드 알자야니 바레인 외무장관 등이 참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중재자이자 증인 자격으로 함께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오늘은 역사상 중요한 날로 평화의 새벽을 예고하고 있다”며 “새로운 평화 모멘텀이 아랍과 이스라엘의 분쟁을 완전히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반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적어도 5개 또는 6개 국가와 이스라엘의 추가 평화협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처럼 이스라엘과 아랍국들 간의 데탕트는 여기서 그칠 것 같지 않다. 이미 오만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다음 수교국 물망에 오르고 있다. 특히 수니파의 좌장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수교할 경우 중동 이슬람권이 유지해 왔던 기존의 반이스라엘 전선도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중동 질서는 송두리째 뒤집히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의 역학 관계는 미국이 지원하는 이스라엘과 이슬람 국가들의 대결 속에서 균형점을 찾으며 유지돼 왔다. 그 과정에서 중동전쟁을 4차례나 치렀다. 이런 프레임 속에서 이슬람권에선 수니파와 시아파가 역내 패권 다툼을 벌이는 양상이었다. 즉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과 수니파의 좌장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갈등하는 구조였다. 따라서 이번 평화협정은 이스라엘과 수니파의 제휴를 통해 중동 이슬람 국가들의 반이스라엘 노선을 흔드는 것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
 
이 같은 정세 변화의 근본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서 찾을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수교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란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안전 보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이들 두 나라는 이번 협정 체결을 계기로 이를 주선한 미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이란을 견제할 수 있게 됐다.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은 걸프만(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이란을 마주 보고 있다. 지난해 5월 아랍에미리트 인근 해역에서 유조선이 공격을 받았을 때도 이란이 배후로 지목됐다.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예멘의 후티 반군도 공공연히 아랍에미리트를 공격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국민의 85%가 수니파인 아랍에미리트로서는 시아파 이란의 위협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바레인은 사정이 좀 다르다. 수니파와 시아파 비율이 4대 6이다.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권력은 수니파가 잡고 있다. 그런 만큼 바레인의 지배층은 자국 시아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란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바레인 내에서 종종 발생하는 시아파 주도의 반정부 시위 배후에는 이란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레인의 수니파 지배층은 인접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2011년 바레인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발생했을 때 사우디군이 들어와 이를 진압했을 정도다.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도 바레인 수니파 권력의 붕괴는 국익에 이롭지 않다. 자칫 시아파가 바레인을 장악할 경우 아라비아 반도로 세력을 넓히는 교두보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협정 체결에는 미국의 역할이 컸다. 트럼프 대통령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실무를 맡아 협상을 성사시켰다. 이스라엘과 수니파의 협력 강화는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한다. 중동에서 미군 감축을 추진 중인 미국으로서는 이란에 대응하는 군사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특히 미 해군 5함대 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는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수교함으로써 바레인을 더욱 확실한 군사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번 협정이 중동의 오랜 갈등과 반목을 일거에 해결하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팔레스타인 정부와 이란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대로 2024년까지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 불법 합병이 늦춰지긴 하겠지만 이·팔 분쟁이 해결되기까진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이란을 비롯해 이라크·예멘·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와 수니파 국가들 간의 대립도 더욱 격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평화협정 체결이 중동 질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것만은 확실하다. 향후 중동에서 이스라엘 관련 변수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이스라엘이 수니파와 반이란 공동 전선을 어떻게 형성할 것이냐와 이·팔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 나갈 것이냐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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