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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날씨 정보 한눈 팔게 하는 한국 기상캐스터 복장

중앙일보 2020.09.17 08:00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48) 

옛날에는 하늘의 분위기를 살펴 날씨를 점치곤 했는데, 요즘은 보통 뉴스나 스마트폰 일기예보를 본다. [사진 pixabay]

옛날에는 하늘의 분위기를 살펴 날씨를 점치곤 했는데, 요즘은 보통 뉴스나 스마트폰 일기예보를 본다. [사진 pixabay]

 
‘비가 오려나’.
옛날에는 하늘의 분위기를 살펴 날씨를 점쳤다. 예상이 빗나가면 날씨를 보는 눈이 약했음을 인정했다. 요즘은 뉴스나 스마트폰 일기예보를 본다. 예보가 틀리면 일기예보 전달자를 비난한다. 제대로 좀 맞추라고.
 
일본의 아침 정보 방송에서 한국 기상청이 비난을 받는다는 소식을 전했다. 태풍 피해 소식을 전하는 일은 있었으나 기상청이 욕먹는 소리를 전하는 건 처음이지 싶다. 올해 태풍 피해가 크다 보니 비난하는 글이 많은 모양이라고 짐작만 해 본다. 한 출연자가 말한다. 일본의 기상청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욕을 많이 먹었었다고. 예상보다 피해가 컸을 때 비난은 더 커진다. 기상청 담당자가 진땀을 흘리며 사죄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하지만 요 몇 년 사이에 일기예보를 보는 눈이 너그러워졌다. 이전보다 예보가 잘 맞아서이기도 하지만, 자연 현상을 예상하는 것이니 빗나가도 어쩔 수 없다는 이해도 깊어진 느낌이다.
 
일본은 최근 수년 동안 태풍 피해가 컸다. 매해 되풀이되는 태풍 피해를 경험하며 미리미리 준비하고 대피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몸에 배기 시작했다. 기상청은 ‘목숨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행동해 달라’는 당부를 꼬박꼬박 잊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 자체로 다행이고, 만에 하나 재해가 일어나면 잘 대비한 덕에 피해가 줄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일본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점이라는 것은 맞기도하고 틀리기도 하는 것(当たるも八卦当たらぬも八卦)'. 이 말은 일기예보를 말할 때도 종종 쓰인다. 어차피 일기예보는 점치는 것과 같다고. 어디까지나 예측이니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시대. 등록만 해 놓으면 내가 사는 동네의 일기예보까지 알려준다. 비가 온다는 예보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파란 하늘에 속아 빨래를 널어놓았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다. 요새는 일기예보를 믿고 봐야 하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일본의 기상예보사는 기상청의 정보를 바탕으로 본인이 판단을 내리고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일본 방송의 일기 예보 담당자는 대부분 기상 전문가인 셈이다. [사진 pxhere]

일본의 기상예보사는 기상청의 정보를 바탕으로 본인이 판단을 내리고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일본 방송의 일기 예보 담당자는 대부분 기상 전문가인 셈이다. [사진 pxhere]

 
일본 뉴스에서 기상 정보를 전하는 사람은 대부분 ‘기상예보사’다. 한국의 ‘기상기사’에 해당한다. 이들은 기상청의 정보를 바탕으로 본인이 판단을 내리고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한국의 최초 기상 통보관으로 유명한 김동완 씨의 말에 따르면 기상 캐스터는 단순한 전달자이고, 기상 통보관은 기상 전문가로 보면 된다고 한다. 일본 방송의 일기예보 담당자는 대부분이 기상 전문가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일기예보 코너는 그저 정보만 읽어주고 지나가는 식이 아니라 그야말로 ‘해설’하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기상 통보관의 복장은 남녀 모두 수수하다. 의상이나 사람보다는 정보에 관심이 간다. 그에 익숙해 있는 나는 한국에 갈 때마다 놀라는 게 있다. 여자 기상 캐스터가 딱 붙는 옷을 입고 있다는 점이다. 일기예보를 보게 하기 위한 방송국의 전략이겠거니 짐작해 본다. 어떤 나라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일기예보를 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일기예보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기를 바라는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복장이 걸렸다. 날씨 정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평상 시에는 상관이 없다. 맑을 거라고 했다가 비가 와도 가볍게 불평하고 지나가면 되니까. 그런데 큰 태풍이 올 때면 괜히 걱정된다. 올해 태풍이 한반도 쪽으로 간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내 뇌리를 스친 것은 ‘또 늘씬한 여자가 딱 붙는 옷을 입고 전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어디까지나 한국의 일기예보에 익숙하지 않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 그래도 노파심이 발동한다.
 
이상기후로 인한 날씨 변동이 심한 만큼 기상 정보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시대여서 다른 나라에서 발표하는 정보까지 손에 들어온다. 인공위성을 팡팡 쏘아 올려 비구름의 흐름을 완벽하게 파악하게 되면 일기예보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당황하여 처마 밑으로 대피하는 풍경도 사라지겠지. 그리되면 일상이 재미있을까?
 
 
남이 전하는 정보에 휘둘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습관을 잃어가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본다. 내 감각과 판단이 아닌 외부의 정보에 의존하며 책임까지 전가한다. 날씨 하나만 해도 창문을 열어 하늘을 살피기보다는 일기예보를 본다. 요즘 일본의 일기예보에서는 빨래 너는 정보는 기본이고, 어떻게 옷을 입고 나가야 할지까지 알려주기도 한다. 아주 편리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하늘은 파란지 회색인지. 구름이 떴다면 구름 색은 어떤지. 비구름인지 그냥 이쁜 구름인지.
 
일기예보는 어디까지나 예측. 맞으면 다행이고, 맞지 않으면 아쉬운 정도로 생각하면 그만이다. 단, 기상청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한 예보를 주저하지 말았으면 한다. 경고해 놓고 아니면 욕을 먹자. 그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싶다.
 
한일출판번역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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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심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필진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 일본인과 결혼해 도쿄에 살림을 꾸린지 약 25년. 일본으로의 이주는 성공적이라고 자부한다. 한일자막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다. ‘한일 양국의 풀뿌리 외교관’이라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보다도 더 비빌 언덕이 없는 일본에서 그 사회에 젖어 들고, 내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과 같은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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