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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여당이 야당이라면

중앙일보 2020.09.17 00:37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조국·윤미향·추미애…. 그들이 보수 진영 사람이었다면, 지금이 보수 정권 시절이었다면 어땠을까. 일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진작에 사달이 나도 났을 것이다. 벌써 세 사람은 감옥에 가 있거나, 자리에서 물러났거나, 대통령이 ‘눈물 흘리며’ 대국민 사과라도 했을 것이다. 여당 의원들이 일제히 ‘조국·윤미향·추미애 구하기’에 뛰어들어 사실을 뒤집고 거꾸로 상대를 적폐로 모는 일 따위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꿨을 것이다. 민주당이 야당이었다면 지금 국민의힘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타고난 싸움꾼답게 거칠고 독한 공격으로 청와대와 정부·여당을 몰아붙였을 것이다. 시민단체와 노조, 전교조라고 지금처럼 가만있었겠나.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그 막강한 화력을 사정없이 뿜어내며 백을 흑으로 만들어서라도 단죄의 칼을 휘둘렀을 것이다. 코로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화문 광장에 몰려나와 적폐 청산, “이게 나라냐”를 외쳤을 것이다. 보수 우파 언론도 청와대와 정부 공격에 가세했을 것이다. 지금의 좌파 어용 언론처럼 침묵하거나 홍위병 노릇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여당은 결국 며칠을 못 버티고 백기 투항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처럼 공정과 정의마저 정파적 이슈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국민 절반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서 좌표를 잃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지금 이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가 살던 그 대한민국이 맞는지.” 매일 고민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조국·윤미향·추미애 보수 진영이고
지금이 보수 정권 시절이었다면
진작에 사달이 나도 났을 것

상상은 또 다른 상상으로 이어진다. 아예 여야를 바꾸면 어떨까. 서로 잘하는 것에 집중하면 어떨까. 그게 대한민국에 더 좋은 것 아닐까. 경제학에 참조할 만한 이론이 있다. 익히 알려진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이다. 그는 영국과 포르투갈을 예로 들었다. 영국은 직물만, 포르투갈은 와인만 생산해 서로 무역을 하는 게 양쪽 모두에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그 후 200여 년, 세계가 무역을 통해 번영을 이뤄낸 데는 리카도의 공이 컸다. 물론 선진 공업국이 후발 주자보다 더 많은 부가가치를 가져간다는 문제는 있었지만, 그의 이론이 세계가 평평해지는 데 기여한 것만은 틀림없다.
 
한국 정파의 비교우위는 어떨까. 우파는 좌파보다 잘하는 게 나라 관리밖에 없다. 국민 허리띠를 졸라매며 재정 건전성을 지키고, 부동산 시장은 공급을 늘려 안정시키고, 동맹을 챙겨 안보·외교 불안을 줄이는 게 고작이다. 좌파 정부 3년 만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나랏빚과 편 가르고 퍼주기 포퓰리즘을 진정시키는 데는 우파 정부의 비교우위가 적격이다. 반면 좌파는 공정과 정의를 외치는 데 최고다. 특히 불공정과 특혜를 공격하고 특권층을 패가망신시키는 데 우파보다 월등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아들의 ‘운전병 특혜’를 물고 늘어져 국민적 공분을 불러냈고, 결국 우병우를 구속했다. 정유라의 ‘입시 특혜’는 또 어땠나. 현직 대통령까지 구속하는 완력을 보여주지 않았나. KBS에 협조 요청 전화를 한 이정현 전 홍보수석의 죄를 물은 건 덤이다. 이런 화력이면 조국·윤미향·추미애는 물론 “카카오 드루와”의 윤영찬까지 단숨에 손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금상첨화, 뭘 해도 받아주는 지지세력, 이른바 ‘문빠’까지 뒷배를 받쳐주고 있다. 그러니 우파가 국정을 맡고, 좌파가 감시하는 모델이 ‘21세기 한국형 민주주의’로 안성맞춤일 수 있다.
 
상상의 끝. 현실로 돌아와 ‘조국·윤미향·추미애 구하기’가 범여권의 뜻대로 성공하면 어떻게 될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야무야될까. 에드먼드 버크는 “악의 승리에 필요한 것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고 했는데 대한민국에서도 그럴까. 전임 대통령은 우병우와 최순실에게 발목 잡혀 본인까지 감옥에 갔는데, 궁금하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선 과연 달라질까.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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