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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프리즘] 빌딩풍 그대로 두면 흉기된다

중앙일보 2020.09.17 00:11 종합 28면 지면보기
위성욱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잇따라 부산을 강타할 때 해운대구의 고층아파트에 사는 입주민들은 큰 공포에 떨었다. 해운대구의 고층아파트 36층에 거주하는 박모(39)씨는 “마이삭이 왔던 3일 새벽 지진이 난 것처럼 집이 크게 흔들려 밤새 시달렸다”며 “아침에 보니 화단에 나무가 죄다 뽑혀 난장판이었고, 1~10층 저층부에는 유리창 곳곳이 깨져 있었다”고 말했다.
 
단순히 태풍의 영향만이 아니었다. 강한 바람이 도시 고층 건물 사이를 지나면서 서로 부딪쳐 기존 속도의 두 배에 이를 정도의 강한 돌풍으로 변하는 ‘빌딩풍’이 또다시 위력을 나타낸 것이다. 특히 하강하는 빌딩풍은 중력이 더해져 압력이 가중된다. 아파트 고층보다 저층부에서 빌딩풍 피해가 더 큰 이유다.
 
실제 지난 3일 정부 주관으로 빌딩풍 연구 중인 부산대학교 학술용역팀이 이런 현상을 확인했다. 국내 최고층 아파트인 101층짜리 엘시티 건물 뒤편에는 앞쪽과 비교해 50% 더 강한 바람이 불었다. 건물 일대 평균 풍속이 초속 40m일 때 엘시티 주변 특정 지점의 풍속은 초속 60m에 달했다.
 
하이선 북상으로 해운대 한 건물 유리창이 강풍에 깨졌다. [뉴스1]

하이선 북상으로 해운대 한 건물 유리창이 강풍에 깨졌다. [뉴스1]

하이선이 덮친 지난 7일에는 빌딩풍을 측정하다 포기했다. 학술용역팀 단장인 권순철 부산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는 “7일 오전 8시 해운대구 마린시티에서 초속 50m가 넘는 강풍을 측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엘시티 주변은 초속 60m를 넘어서는 바람에 더는 측정이 불가능했다”며 “같은 시각 해상 측정값이 초속 23m였던 것과 비교하면 빌딩풍 때문에 바람이 2배 이상 강해진다는 게 확인된 것이다”고 말했다.
 
피해도 컸다. 마이삭 때는 엘시티와 시그니엘 부산 호텔 일부 외벽 타일과 시설 구조물이 뜯겨 나갔다. 광안리 해수욕장 앞에 있는 수영강변 아파트에서도 외부 유리가 파손됐다. 하이선 때는 엘시티 앞 신호등의 강철 기둥이 끊어지면서 횡단보도 위로 떨어졌다. 고층건물에서 깨진 유리 파편이 빌딩풍을 타고 날아다니면서 보행로로 떨어지는 아찔한 순간이 반복됐다. 보행자가 있었다면 큰 사상자가 생겼을 수 있다는 의미다.
 
50층 이상의 고층 건물을 지을 때 고강도 지진에 대해 대비는 하면서도 빌딩풍에 대해 대비는 하지 않은 채 우후죽순 고층건물이 들어선 탓이다. 고층건물 외벽 타일과 유리창 파손에 따른 낙하 방지시설 설치를 위한 강제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다.
 
빌딩풍은 해운대만의 일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해안가에 초고층 건물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어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빌딩풍을 재난으로 인식해 도시 계획 수립과 고층건물 설계 및 허가 과정에 빌딩풍에 대한 대책을 의무화하고 빌딩풍에 대한 상시 감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빌딩풍이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흉기로 돌변하기 전에 말이다.
 
위성욱 부산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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