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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코로나19, 자영업자의 무덤 됐다

중앙일보 2020.09.16 00:38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창규 경제디렉터

김창규 경제디렉터

# 2020년 9월 맑은 오후 서울 청계천. 20대 초반의 대학생 4명이 과자와 맥주를 사이에 두고 둘러앉아서 휴대전화를 뚫어지라 보고 있다. 몇 분 정도 지나자 “내가 이겼다”며 한 여학생이 손을 치켜든다. 다른 학생은 아쉬움을 표시하면서도 깔깔대며 맥주를 들이켠다.
 

한국은 식당 등 대면 중심 많아
비대면 강요하는 코로나 직격탄
실업 완충역할 자영업 보호해야

# 2020년 9월 다른 날 저녁. 한 회사 직원 8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회식하기 위해서다. 장소는? 각자의 집이다. 컴퓨터 앞에는 음료와 안주가 놓여있다. 재택 근무하는 이들은 업무가 끝난 뒤 화상회의 시스템에 접속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른바 ‘랜선(온라인) 회식’이다.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1년 전이라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도 청계천에서 즐겁게 게임하는 대학생은 학교 주변 PC방이나 맥줏집에서 온라인·오프라인 놀이를 즐겼을 거다. 회사원은 회사 근처 식당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즐기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사람이 만나는 곳을 한 단계 건너뛰게 했다. 바로 PC방, 노래연습장, 맥줏집, 카페, 식당이다. 한국에서 이곳은 대부분이 자영업자의 영역이다. 상당수 자영업자는 대면의 공간을 제공한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모든 사람에게 다양한 형태의 ‘비대면’을 강요한다. 코로나19의 세력이 커질수록 대면의 공간에서 영업하는 자영업은 위축되거나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는 한국 자영업자의 무덤이 돼 가고 있다. 자영업자는 ‘타격’ 정도가 아니라 ‘초토화’됐다고 절규한다. 속은 이미 타들어가다 못해 숯덩이가 됐다고 말한다. 타격은 상황이 어느 정도 호전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초토화는 다르다. 상당수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란 뜻이다.
 
서소문 포럼 9/16

서소문 포럼 9/16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휴게음식업, 외식업, 숙박업 등 22개 골목상권을 대표하는 협회를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 실적과 하반기 전망을 조사해 보니 상반기 매출액과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27%와 33% 감소했다. 하반기는 더욱 암울하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유지되면 매출액과 순이익은 각각 36%, 42% 줄어들고, 3단계가 되면 절반가량(매출 -46%, 순이익 -53%)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외국 관광객으로 가득 찼던 서울 명동은 두 집 건너 한 집꼴로 휴·폐업 안내문이 붙어있다. 주변으로 갈수록 사정은 더 심각하다. PC방, 노래연습장뿐만 아니라 휴게음식업은 매출이 80% 이상 줄어 사실상 업종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빠졌다. 올해 7월 자영업자는 554만8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2만7000명 줄었다. 감소 폭이 1년 전의 5배에 달한다.
 
한국의 자영업은 고용에 있어서 홍수 때 물을 머금은 숲 역할을 했다. 국내 숲이 머금고 있는 물의 양은 소양강댐의 10배에 달한다. 경기 침체 등으로 실업자가 쏟아지면 이들은 자영업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살거나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자영업 자체가 무너지며 고용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다. 자영업이라는 숲이 사라지니 실업대란이라는 대홍수를 맞닥뜨리게 됐다.
 
한국은 자영업자가 취업자 4명 중 1명꼴로 선진국보다 과도하게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의 비중(2018년 기준)은 25.1%에 달한다. 이 비중은 미국의 약 4배에 달하고, 독일과 일본의 약 2.4~2.5배 정도다. 독일과 일본 수준으로만 자영업자 비중이 줄어도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문제는 코로나19의 여파가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에도 지속할 것이라는 데 있다. 주요 세계 석학은 “코로나19 이후 인류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비대면, 자동화 확산 등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한국의 자영업은 어떤 형태로든 위축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부는 대면 중심의 자영업을 비대면 부문으로 영역을 대폭 확장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과도기에서 나오는 실업자의 보호, 업종 전환을 위한 교육 등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계획도 마련돼야 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는 책 『코로나 사피엔스』에서 “자영업은 한두 번 잘못되면 극빈층으로 전락하기도 한다”며 “시장주의 원조라는 영국에서조차 자영업자도 임금생활자처럼 80%까지 정부에서 소득을 보전해주겠다는 정책을 내놓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영업이라는 숲을 잘 살려야 실업대란이라는 홍수를 막을 수 있다. 한국이 코로나19 이후 자영업자의 무덤이 되지 않으려면….
 
김창규 경제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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