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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거주라 하고 세입자 내보내라" 정부 콜센터가 불법 귀띔

중앙일보 2020.09.15 18:18
부동산 관련 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1일 서울 여의도에서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임대차 3법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부동산 관련 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1일 서울 여의도에서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임대차 3법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졸속으로 시행된 전‧월세 상한제(5%)와 계약갱신청구권(2년+2년)의 후폭풍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규제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린 데다 규제 끼리 충돌하는 통에 정부 스스로 ‘법을 어기라’며 범법을 권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매매 계약을 맺었으나 등기를 못 한 새 집주인(매수인)이 기존 세입자를 내보낼 수 없는 규정을 두고서다. 
 
지난 14일 정부가 임대차제도 관련 상담을 위해 운영하는 콜센터에 상담 요청을 했다. ‘내 집에 내가 못 들어간다’는 제보가 쏟아져 어떤 해결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상담 내용은 다음과 같다.
 
“11월 세입자의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지난달 실거주를 원하는 매수인과 매매계약을 맺었다. 미리 세입자에게 사정 설명을 했고 세입자도 ‘알았다. 11월에 나가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세입자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집주인 바뀌어도 나가지 않아도 된다더라. 계약갱신청구권을 써서 2년 더 살겠다’고 통보했다. 실거주할 수 없게 된 매수인은 계약 파기와 함께 계약금만큼 위약금(8000만원)을 요구한다. 지난달 세입자와 통화는 녹음하지 못했다.”
 

정부 스스로 “임대차법 어겨라”

돌아온 답변은 뜻밖이었다. 불법·편법을 동원하거나 금전 피해를 감수하라는 내용이었다. 상담원은 상황을 크게 3가지로 정리했다. 먼저 매수인이 실거주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계약이 깨진다면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세입자의 책임은 없어 매도인과 매수인만 피해를 본다. 
 
두 번째는 세입자에게 이사비 명목으로 금전을 제공하고 11월 퇴거를 유도하라는 것이다. 돈을 주고 합의하라는 의미다. 이 경우 매도인은 과거 같았으면 생기지 않았을 손해를 본다. 
 
세 번째는 직접 거주하겠다고 해 계약 갱신을 거절하고 세입자가 퇴거한 후 집을 팔라는 것이다. 이 경우 집주인(매도인)이 2년간 실거주하지 않으면 세입자에게 손해 배상해야 하지만, 현재 임대차법에 이 같은 경우에 대한 구체적인 손해배상액이 명시되지 않았다.
  
상담원은 임차인의 권리를 침해한 일반 불법 행위로 간주하고 손해배상액이 정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때 손해배상액은 실제로 생긴 손해에 대한 보상인데 이사비나 새 전셋집을 구하는데 든 중개수수료, 도배비 등이다. 상담원은 “집주인 실거주 위반으로 손해배상을 해주더라도 계약파기에 따른 위약금(8000만원)보다 훨씬 적으니 고민해보라”고 조언했다.  
 
상담센터는 범법을 귀띔하고, 법을 지키면 누군가 손해를 보는 상황이 빚어진 것은 충분한 검토 없이 관련법을 국회에 상정한 지 3일 만에 시행(7월 31일)한 여파다. 더구나 이런 상황에 대한 유권해석은 법 시행 40여 일이 지난 최근에야 나왔다. 그러나 관련 규정이 바뀔 것 같지도 않다. 11일 국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제는 임차인이 살 수 있는 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났다는 것을 전제로 매매 거래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 낀 아파트 거래 위해 ‘복등기’까지 등장

정부가 팔짱을 낀 채 방관하자 시장은 혼탁해지고 있다. 전세 낀 아파트 거래를 위해 대표적인 투기 수단으로 여겨졌던 ‘복등기’ 형태의 거래까지 등장했다. 정부가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집주인을 ‘등기상 소유주’로 한정해서다. 이 때문에 계약 후 잔금을 치르기 전 매수인이 등기를 먼저 하는 거래가 나타나고 있다. 대개 공증 이면계약을 통해 ‘실제 소유권은 잔금을 받고 넘긴다’는 문구 등을 넣는 식인데 법적 효력이 없어 위험하다. 
 
매도인 입장에선 매수인이 잔금을 치르지 않고 소유권을 주장할 우려가 있고, 매수인 입장에선 해당 주택 관련 세금이 등기일을 기준으로 부과되기 때문에 실제 보유하지 않은 기간에 대한 과세가 이뤄질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 낀 집은 아예 사지 말거나 4년간 갭 투자할 사람만 사라는 것”이라며 “전매 제한 있는 분양권 투기 거래 때나 봤던 복등기를 일반 아파트 거래에 동원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강창덕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정책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예측 가능성이 중요한데 어느 날 갑자기 규제가 뚝딱 떨어지는 식”이라며 “대책을 세울 때 전체적인 요소를 놓고 여러 방향에서 논의와 검증을 거치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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