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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필름번호판 안찍힌다"는 유튜버들, 국토부가 수사의뢰한 까닭

중앙일보 2020.09.15 00:25 종합 26면 지면보기
자동차 관련 소식을 주로 전하는 유튜버 2명이 이달 초 검찰에 수사 의뢰됐다. 의뢰자는 국토교통부다. 중앙부처에서 유튜버 개인을 상대로 수사를 요청한 건 이례적이다.
 

유튜버 “필름번호판, 단속 안 걸려”
도로에서 실험한 제보영상도 소개
국토부 “불법실험 정황 확인됐다”
경찰 “문제없이 다 잘 찍힌다” 확인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로 다른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들이 공통으로 다룬 주제는 자동차에 부착하는 ‘필름번호판’이었다. ‘반사번호판’으로도 부른다. 페인트로 칠한 일반 번호판과 달리 빛을 반사하는 필름을 붙여서 만든다. 필름에 다양한 문양을 넣을 수 있는 장점도 있어 미국과 유럽에서 널리 쓰인다.
 
과속단속 카메라. [중앙포토]

과속단속 카메라. [중앙포토]

국내에선 2000년대 초반부터 도입 논의가 있었지만 미뤄지다 지난 7월 본격 도입됐다. 하얀 바탕에 검은 글자, 그리고 왼쪽 끝부분에 태극문양이 있다. 8월 말 현재 12만장이 보급됐으며 국내 업체가 개발했다.
 
유튜버들은 필름번호판의 반사 성능을 문제 삼았다. 야간에 빛을 정상적으로 반사하면 경찰의 무인과속단속카메라에 찍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제보자가 줬다는 실험 영상도 소개했다. “7월 초 모 방송국 취재팀이 실험한 영상”이라는 설명이 담겼다. 제한속도가 시속 30㎞인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오후 9시경 페인트번호판과 필름번호판을 바꿔가며 단속카메라에 찍히는지 확인했다는 영상이다. 단속카메라에 노트북을 연결해 촬영 여부를 바로 알아봤다고 한다. 결과는 속도위반인데도 필름번호판은 안 찍혔다는 것이다.
 
7월부터 보급 중인 필름번호판(사진)이 밤에 단속카메라에 찍히지 않는다는 주장이 유튜브 등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국토부와 경찰은 ’단속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사진 한국교통안전공단]

7월부터 보급 중인 필름번호판(사진)이 밤에 단속카메라에 찍히지 않는다는 주장이 유튜브 등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국토부와 경찰은 ’단속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사진 한국교통안전공단]

번호판 제작 담당자라는 인물과의 인터뷰도 있다. 정부가 필름번호판의 하자를 알고도 밀어붙이고 있다는 내용이다. 유튜버들이 이 과정에서 똑같이 언급한 회사가 하나 있다. 필름 분야의 유명 외국기업이다. 이 기업은 2017년 도입된 전기차 번호판(필름번호판)을 독점 납품 중이다. 왜 이 회사의 우수한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국산 제품을 쓰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뉘앙스다.
 
앞서 비슷한 주장을 담은 블로그 글도 포털에 여럿 올라왔다. 이런 주장처럼 오랜 진통 끝에 도입된 필름번호판이 수준 이하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야간에 필름번호판을 단 차량은 과속하거나 신호를 어겨도 단속되지 않는다면 무법천지가 될 게 뻔하다. 더욱이 정부가 그런 사실을 알고도 숨겼다면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반사성능 실험 결과, 필름번호판(맨 위)과 그 아래 전기차 번호판의 글자가 뚜렷하다. [사진 한국교통안전공단]

반사성능 실험 결과, 필름번호판(맨 위)과 그 아래 전기차 번호판의 글자가 뚜렷하다. [사진 한국교통안전공단]

국토부 입장은 강경하다. 윤진환 국토부 자동차관리관은 “필름번호판 성능에는 전혀 이상이 없고, 단속도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윤 국장은 “필름번호판을 도입하기 전에 국내·외 업체 모두 참여한 가운데 각기 개발한 번호판의 성능을 여러 차례 검증한 뒤 가장 우수한 제품을 선정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 “전기차 번호판과 현재 사용 중인 필름번호판은 반사 성능이 동일하다”며 “국내에 설치된 각종 단속카메라에서 모두 인식이 가능한 최적의 반사 성능 값을 찾아내 적용했다”고 덧붙였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의 맹길호 연구원도 “전기차 번호판과 필름번호판의 반사 성능은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수사 의뢰는 좀 과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유튜브 영상과 멘트에서 불법 정황이 확인됐기 때문”이라는 게 국토부 답변이다. 우선 단속카메라에 접속해 촬영 여부를 확인하는 건 경찰과 도로교통공단의 권한이다. 이들의 허가 없이 단속카메라에 접속하는 건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도로교통공단 공인검사처의 오상훈 과장은 “유튜브에 나온 영상 속 실험이 이뤄졌다는 날짜에는 카메라 관련 실험을 진행한 적이 없다”고 확인해줬다. 게다가 유튜브 속 설명과 달리 방송사가 도로교통공단과 공동으로 실험을 한 건 7월 하순으로 날짜도 다르다. 누군가 불법으로 단속카메라에 접속해 실험을 진행했다는 의심을 살 만한 정황이다.
 
허가 없이 번호판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건 자동차관리법 위반이다. 윤 국장은 “유튜버에게 제보한 측에서 불법으로 실험하고, 영상도 조작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있다”며 “제보자를 밝히고, 영상의 진위도 확인해달라는 게 수사 의뢰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직접 단속을 담당하는 경찰은 어떤 반응일까. 김용태 경찰청 첨단교통계장은 “100% 문제없이 단속 잘 되고 있다”며 “방송사들에서 유사한 제보를 받고 왔길래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차량으로 함께 실험했는데 문제없이 다 찍혔다”고 말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해당 유튜브에는 “나도 과속했는데 단속이 안 됐다”는 댓글이 여럿 달렸기 때문이다. 김 계장은 “세부사항을 밝힐 수는 없지만, 단속 카메라의 기계적 허용오차가 있는 데다 급가속과 급감속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서 제한속도에 일부 허용오차를 두고 단속 중”이라며 “전국이 동일하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현행 규정상 단속카메라는 80% 이상 인식 가능하면 합격이다. 10대 중 2대는 인식 못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제한속도가 100㎞인 도로에서 이를 살짝 넘었다고 단속되는 게 아니라 일정한 오차 범위를 넘지 않으면 단속되지 않는다.
 
여러 관련 기관을 확인한 결과, 현재로선 필름번호판 성능에 결정적인 하자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문제 제기가 이어지는 만큼 번호판 성능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과 개량 작업은 필요하다. 또 향후 업계 내에 상호 비방보다는 번호판 성능을 놓고 정정당당하고 치열한 경쟁이 자리 잡길 기대한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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