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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의 한반도평화워치] 지금은 경제적·외교적 대북 압박에 치중할 때

중앙일보 2020.09.15 00:15 종합 25면 지면보기

현실에 맞는 대북 정책

지난 2년 반 북핵 교섭으로 우리 사회에 고조됐던 평화 환상은 북한의 공격적 대남 비난과 도발로 인해 거품이 빠지고 있다.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룩한 남북 관계 진전과 합의도 과거 남북 관계 패턴을 되풀이하고 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10월 스톡홀름 실무회담도 성과 없이 끝난 뒤 새로운 움직임 없이 북핵 시계는 자정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이번 교섭이 북한의 사실상 핵무장 국가화를 막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점에서 교착 상태는 뼈아픈 현실이다.
 

남북 관계는 북핵 해결 전망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개선돼
북한 핵·경제 병진으론 생존 불가능하다는 점 깨닫게 해야
일방적 대북 협력 치중해 비핵화 전략 목표 흩트리지 말고
북핵 폐기 위해 미·중 협조 얻는데 한국의 외교력 집중해야

무엇이 잘못됐나? 그간의 교섭 경과와 최근 발간된 존 볼턴 전 미 국가안보보좌관 회고록을 분석하면 여러 문제점이 발견된다. 가장 큰 문제는 비핵화 교섭에 임했던 북한이 실제로는 완전한 핵 폐기 의사가 없었다는 점이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에서 핵 능력의 일부에 불과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대가로 핵심 대북 제재 해제를 얻는 데 집착했다.
 
2016년 12월 2일 원자재로 보이는 화물을 싣고 북한을 출발한 기차가 중국 단둥역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2016년 12월 2일 원자재로 보이는 화물을 싣고 북한을 출발한 기차가 중국 단둥역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교섭 과정 내내 북한은 군사·경제 병진 노선의 연장선상에서 핵 능력 유지와 제재 해제를 일관성 있게 추구했다. 결국 비핵화 핵심 요소인 ▶비핵화 정의 ▶포괄적·실효적 로드맵 작성 ▶신고·검증 등에는 전혀 손도 못 댔다. 북한은 가장 두려워하는 미국의 군사력 사용과 중국의 식량·석유 지원 단절을 북·미 교섭과 북·중 관계 강화로 막은 만큼, 핵 군축 입장에서 체제 생존에 필수라 여기는 핵·미사일 능력은 온존시키면서 부분적 제재 해제를 모색하는 전략으로 임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비핵화 교섭 교착 예상
 
미국은 개발 중인 것보다 이미 개발한 것을 포기시키는 게 훨씬 어렵다는 점을 간과했다. 이로 인해 북한을 너무 얕잡아 봐 교섭 준비가 부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정치적 홍보에 치중했다. 북한이 2017년 도발 모드에서 2018년 교섭 모드로 전환한 것은 미국의 강한 군사 압박, 미·중 협력에 의한 체제 변경 위협,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를 돌파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초기의 유리한 상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북한에 끌려다녔다.
 
또 북한이 염원해온 북·미 정상회담을 지렛대로 정상회담에 앞선 실무회담으로 충분한 정지 작업을 했어야 했다. 우선순위가 뒤바뀐 추상적 합의로 끝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싱가포르 회담에서 하노이 회담의 실패는 예견됐다.
 
2018년 10월 28일 안보리 금수품을 실은 북한 육퉁호의 불법 해상 환적 모습. [연합뉴스]

2018년 10월 28일 안보리 금수품을 실은 북한 육퉁호의 불법 해상 환적 모습. [연합뉴스]

교섭 과정에서 미국은 교섭 목표가 9·19 공동성명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폐기(CVID)’에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로, 다시 ‘완전한 비핵화’로 약화됐다. 비핵화 시기도 볼턴의 ‘1년’에서 폼페이오의 ‘2년’으로 계속 후퇴했다. 결국 북한의 핵 프로그램 완성이 가까워 일정 시간 내 의도한 최대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교섭이 무의미해지는 ‘외교에서의 시간·기술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했다.
 
2018년 북·미 교섭의 물꼬를 튼 한국도 교섭의 중재자 역할에 치중하고, 남북 관계를 앞세운 나머지 비핵화 진전→남북 관계 개선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 한국은 당사자이지만 교섭에 직접 참여하지 못 하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대북 교섭의 구체적 전략과 세부 유의사항을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국제사회 대 북한’의 틀을 만들어 교섭 내내 북한에 압박이 가해지도록 했어야 했다. 북한에 대해 핵 폐기 없이 경제 발전은 없으며 북핵 폐기 의도를 행동으로 보여줄 로드맵 작성과 검증이 필수임을 설득해야 했다. 북한이 꿈꾼 스몰 딜은 다행히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우리가 앞장서서 그 가능성을 차단했어야 했다.
 
유엔 안보리의 북한 노동자 해외 송출 제한 조치로 지난해 12월 20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서 평양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북한 노동자들. [연합뉴스]

유엔 안보리의 북한 노동자 해외 송출 제한 조치로 지난해 12월 20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서 평양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북한 노동자들. [연합뉴스]

북핵 교섭은 코로나19와 미국 대선의 안개 속에 갈 길을 잃었다. 최근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UAE) 국교 정상화 합의와 같이, 현재 대선 전망이 불리한 트럼프 대통령이 종래 행보에 비추어 ‘10월 깜짝쇼’(October Surprise)를 시도할 수 있겠지만, 그 경우 ‘겉치레 비핵화’로 끝날 우려가 크다. 북한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미국도 코로나19 대응과 대선으로 여유가 없다는 점에서 내년 상반기까지 현상 지속(muddle through)의 가능성이 높다. 또 미국이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을 이용하고 대선 후 북·미 협상을 재개할 때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이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전체 국면을 철저히 분석해 현실적 대북 전략을 짜야 할 시점이다. 북한에 핵·미사일 능력은 체제 생존이자 정권 정당성의 보루인 만큼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대외 압력이 가해지지 않는 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군사적 압력이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유일한 수단은 제재와 국제사회의 외교적 압력밖에 없다.
  
외교는 희망적 관측에 의존해선 안 돼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행동으로 확인하기까지는 대북 제재가 실효적으로 작동하도록 국제사회의 단결을 꾀해야 한다. 제재 때문에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대북 경제 지원은 불가능하므로 남북 관계도 제약이 불가피하다. 메아리 없는 일방적 대북 협력에 치중해 비핵화라는 전략 목표를 흩트리지 말아야 한다.
 
외교는 희망적 관측이나 상대방 선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남북 관계는 북핵 문제의 해결 전망이 생기면 자연스레 개선될 것이므로 당분간 ‘대북 전략적 인내’가 필요하다. 지금은 북한이 핵·경제 병진 노선으론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이를 위해 제재의 실효적 작동에 의한 경제적 압박과 국제사회의 일치된 대응을 통한 외교적 압박에 치중하는 한편, 깊어가는 미·중 대결 속에 북핵 폐기를 위한 양국 협조를 끌어내는 데 외교력을 집중할 때다.
 
한·미 동맹 강화와 국제 공조 속 북한 태도 변화 기다려야
북한의 진로는 3가지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핵 문제 처리 방향이다. 미·영·러의 안전 보장 및 경제 지원과 핵무기 이전을 맞교환한 우크라이나 방식이 좋겠지만, 북한은 지금까지 행태로 보면 파키스탄형 핵 무장을 꾀하고 있다. ICBM·SLBM 실전 배치 및 충분한 핵탄두 확보를 통한 2차 공격 능력 구비로 핵 무장 완성에 치중하면서, 미국이 현실을 수용할 때까지 생존 수준에서 제재를 버티려 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에 더해 코로나19 방역상 자기 봉쇄와 홍수 피해가 시장과 외환에 의존하는 북한 경제를 직격해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정권 수립 75주년임에도 최근 국가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실패를 자인하고 내년 1월 8차 당 대회에서 새 5개년 계획을 만들기로 결정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동시에 적대시 정책 철회를 핵 교섭에 연계해서 한·미 동맹, 주한미군, 유엔사, 한·미 군사훈련 등을 약화하려 할 것이다.
 
둘째, 북한의 개혁·개방 여부와 정도다. 배급제가 무너지고 장마당, 외화 유통, 농업·공업 분야의 제한된 자율권 부여 등 변화가 있었지만, 본격적 개혁·개방과는 거리가 멀다. 북한은 경제 격차가 현저한 분단국이고 세습 전체주의 체제로 고도의 통제와 주체사상에 의존하기에 중국·베트남식 개혁·개방은 쉽지 않다. 경제 회생에 필수적인 외부 자본·기술 유입도 제재로 불가능하다. 어렵게 개혁·개방을 꾀하더라도 외부 유입에 대한 사회 통제가 가능한 모기장 형태의 낮은 수준에 머물 것이다.
 
셋째, 북한 정권의 지속성이다. 공산주의, 개인숭배, 통제에 의존하는 동원 체제인 북한 정권은 폐쇄사회로서 높은 지속성을 보여 왔다. 1960년대 말까지 도전 세력이 모두 제거된 후 특권층의 이익 공동체로 철저한 계급사회를 유지해 왔다. 향후 안정성은 시장과 정보가 북한 체제를 어느 정도 흔들고 변화시킬까에 좌우된다. 유일 영도체제의 정점에 있는 김정은의 건강 상태도 주요 변수다.
 
따라서 북핵 문제를 풀고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관건은 제재의 실효성을 유지하고, 북한의 변화를 가져올 복합적 노력을 기울이며, 북한의 핵 위협을 억지하는 것이다. 제재와 북한 거부로 대북 협력 정책은 작동이 어렵다. 차분히 한·미 동맹 강화와 국제 공조에 치중하면서 대북 관계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는 것이 순리다.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외교부 차관·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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