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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한국군, 北 상대 안돼…더 싫은건 미군의 훈련 동참"

중앙일보 2020.09.14 02:26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로 두고 악수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타임스 1면에 난 사진을 보내며 "대성공(big time)"이라고 한 지 한 달 뒤 한미 지휘소연습 발표를 놓고 "누구를 공격하는 연합훈련이냐. 매우 기분이 상했다"고 항의하는 서한을 보냈다.[연합뉴스]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로 두고 악수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타임스 1면에 난 사진을 보내며 "대성공(big time)"이라고 한 지 한 달 뒤 한미 지휘소연습 발표를 놓고 "누구를 공격하는 연합훈련이냐. 매우 기분이 상했다"고 항의하는 서한을 보냈다.[연합뉴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내 지시로 첫 번째 비핵화 중대 조치를 합의하러 가니 협력해달라. (2018년 7월 3일)"

"각하처럼 탁월한 정치가와 좋은 관계를 맺은 건 기쁘지만 기대했던 종전선언이 없어 유감이다. (같은 해 7월 30일)"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장이 15일 출간하는 『격노(Rage)』에 공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주고받은 친서 27통 중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주고받은 편지 내용이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친서에서 두 사람은 서로 아첨에 가까운 미사여구를 쓰기도 했지만, 실제론 비핵화와 상응조치를 놓고선 서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친서로 본 트럼프, 김정은에 한 발짝도 양보 안 해
싱가포르 직후 '종전선언'기대 金에 '핵 신고' 요구
2차 평양 개최 제안엔 "하노이와 방콕은 수용 가능"
트럼프 6·30 DMZ 회동 뒤 "대박" NYT 1면 사진 보내,
金 한 달 뒤 "누구를 공격하려고 연합훈련하나" 분통

 
지난 6월 발간된 존 볼턴 회고록과 달리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 회담 후속 조치로 "종전선언을 기대했다"고 밝힌 건 처음 공개되는 내용이다. 이에 싱가포르에서 북한 핵·장거리미사일 실험 중단-한·미연합훈련 중단 외에 종전선언에 대한 구두 합의도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 "종전선언 없어 유감" 표시…구두 비공개 합의 관측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년 간 주고받은 편지 27통 전문을 공개한 밥 우드워드 기자의 신간 '격노'(Rage). 15일 공식 출간된다.[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년 간 주고받은 편지 27통 전문을 공개한 밥 우드워드 기자의 신간 '격노'(Rage). 15일 공식 출간된다.[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7월 6~7일 싱가포르 공동성명 합의 이행을 위한 후속 협상을 위해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평양에 파견하면서 7월 3일 자 친서를 함께 보냈다.
 
이 친서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세 가지 목표의 진전을 위해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며 "첫째, 한국전 미군 포로 유해 송환 둘째, 김 위원장이 폐쇄를 합의한 서해 미사일시험장으로의 미국 기술진 파견 가장 중요한 셋째로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첫 번째 중대 조치에 관해 당신과 합의점을 찾으라는 내 지시를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당시 양일에 걸쳐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세 차례 만났지만,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지 못했다. 북한이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을 떠난 뒤 "비핵화에 관해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요구를 했다"고 맹비난했던 최악의 방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첫 번째 비핵화 중대 조치가 핵무기 및 미사일 시설에 관한 기본 신고였기 때문이었다. 
 
김 위원장은 같은 해 7월 30일 한국전 종전선언부터 이행할 것을 에둘러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8월 2일 자 답장에서 "지금은 완전한 비핵화를 포함해 우리가 한 약속들에 대해 진전을 이뤄야 할 때"라며 거듭 비핵화 조치부터 할 것을 촉구했다. 북한이 송환한 55구 미군 유해가 하와이에 도착한 다음 날 보낸 편지였다.
 

美 핵 신고 요구에 金 "핵무기연구소·서해발사장·영변 낱개씩 폐기" 

2018년 5월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가 산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는 모습.[뉴스1]

2018년 5월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가 산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는 모습.[뉴스1]

그러자 김 위원장도 같은 해 9월 6일 "미국은 역사적으로 비핵화에 상응하는 조건을 노골적으로 거부해왔다"고 지적하면서 "우리는 한 번에 하나씩 단계적 방식으로 의미 있는 추가 조치를 할 용의가 있다"며 단계적 비핵화 방안으로 맞섰다. 그러면서 핵무기연구소와 (서해) 인공위성 발사장의 완전한 폐쇄와 핵물질 생산시설의 불가역적인 폐쇄를 할 의향이 있다고 예로 들었다. 핵 시설별 폐쇄를 위해선 각각의 상응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 셈이다. '핵무기연구소'는 북 5·6차 핵실험과 2018년 5월 풍계리 핵실험장 완전 폐기를 발표한 기관이다.  
 
김 위원장은 같은 달 21일에도 "각하에 대한 나의 신뢰와 존경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많은 사람이 현재 상황과 향후 비핵화 문제를 해결을 위한 우리 구상과 양국관계 전망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나는 각하와 함께 반드시 그것들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석 달 뒤 양국 간 2차 정상회담 준비에 들어간 201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내년에는 우리의 다음 정상회담과 더불어 비핵화의 진정한 진전과 당신 지도력 아래 북한 주민을 위한 밝은 미래를 이루기를 고대한다"고 적었다.
 
다음날 김 위원장은 답장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와 관련 양측이 각자 입장을 완강히 고집하면서 긍정적으로 비치지 않을 수 있다"며 "2차 북한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도록 위대한 결단력과 탁월한 지도력을 보여달라"고 평양 정상회담 개최를 부탁했다.
 
하지만 사흘 뒤 트럼프 대통령은 답장에서 "2차 정상회담은 큰 성과를 내고, 우리 두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다음 정상회담 장소로는 (베트남) 하노이와 (태국) 방콕을 수용할 수 있다"라고 평양 개최 제안을 거절했다.
 
지난해 2월 말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로 끝난 뒤 6월 10일 김 위원장은 나흘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 축하편지에서 "우리 독특하고 특별한 우정이 북·미관계의 진전을 이끄는 마법의 힘이 될 것"이라며 "우리가 마주 앉아 위대한 업적을 만들고 상호 신뢰에 또 한 번 기회를 주는 날이 다시 와야 한다"라고 3차 정상회담을 제안한다.
 

트럼프 싱가포르 1주년 "당신은 비핵화, 난 안전보장 약속"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틀 뒤 싱가포르 회담 1주년에 맞춰 "역사적인 첫 회담 이후 꼬박 한 해가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당신은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고 나는 (체제) 안전보장을 약속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듭 "오직 당신과 나만이 함께 두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고 70년 적대를 종식하고, 한반도 번영의 시대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29일 트위터로 판문점 회동을 먼저 제안한 뒤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 편에 "내일 오후 3시30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만나자"라고 친서를 보냈다. 판문점 회동 직후 6월 30일 "위원장님 멋진 사진입니다. 대박(big time)"이라는 글과 함께 뉴욕타임스 1면 사진을 첨부해 보내기도 했다. 이어 7월 2일에도 "나는 당신이 핵(무기) 부담을 떨쳐 버리고 당신과 주민의 어마어마한 번영을 이끌 '빅딜'을 타결할 것이라는 데 엄청난 자신감을 갖고 있다"며 DMZ 회동 사진 22장을 동봉해 보냈다.
 
하지만 한 달 뒤 8월 5일 김 위원장은 답장에서 한·미 연합훈련(지휘소연습) 발표를 맹비난했다. "나는 우리가 중요한 사안을 논의를 계속할 실무협상에 앞서 도발적인 연합군사훈련은 취소되거나 연기될 줄 믿었다. 한반도 남쪽에서 연합 군사훈련은 누구를 대항해 실시하는 것이며, 누구를 저지하고 격퇴하고 공격하려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개념적으로 또 가정적으로 전쟁 준비 연습의 주요 표적은 우리 군대며 이는 우리의 오해가 아니다"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정경두 국방장관이 7월 31일 연설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도발한다면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당연히 '적' 개념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한 데 대해서도 "며칠 전 남한 국방장관이 우리의 재래식 무기 현대화를 '도발''위협'으로 간주하고, 이를 지속할 경우 내 정부를 '적'으로 분류하겠다고 했다"라고도 적었다.
 
이어 "현재든 미래든 남한 군대는 나의 적이 될 수 없다"라며 "당신이 언젠가 언급했듯 우리는 특별한 수단 없이도 강한 군대를 갖고 있으며 사실 한국군은 내 군대와 상대가 되지 않는다"라고 거듭 분노를 터뜨렸다.
연합훈련을 참가하는 주한미군을 상대로도 "내가 더 싫은 것은 미군이 한국 국민의 이런 편집증적이고 과민한 반응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나는 분명히 기분이 상했으며 당신에게 이런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
 
밥 우드워드가 이 편지를 놓고 "김정은과 트럼프의 관계가 영원히 식어버린 것 같았다"고 평했을 정도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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