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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코로나 찬스, 민주주의가 위험하다

중앙일보 2020.09.14 00:45 종합 35면 지면보기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유난스런 여름이었다. 코로나에 지친 마음을 태풍이 연이어 강타했다. 강풍이 집을 흔들고 불어난 급류가 제방과 교량을 무너뜨렸다. 물에 잠긴 논밭, 침수된 집을 바라보는 이재민의 허탈한 심정은 도시로 감염됐다. 2분기에만 전국 점포 십만 개가 폐업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빚으로 버티고, 실직자와 휴직자는 사채를 쓰거나 극단적 선택에 몰렸다. 사회적 치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겹친 재난이 점화한 집단히스테리가 급기야 폭행과 범죄로 번지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술집, 커피숍, 노래방도 폐업 위기에 직면했으니 심리적 방역을 할 곳도 마땅치 않다.
 

추 장관이 어긴 건 법 이전에 규범
아들의 고발행위는 민주정신에
마취바늘을 꽂는 반민주 자유주의
국회는 상대 골문이 빈 닥공 축구장

정치권은 유별난 히스테리 진원지다. 이런 때 훈풍을 불러주면 얼마나 좋을까만, ‘엄마의 애간장’에서 ‘엄마 찬스’로 발달한 강력 태풍이 집단 짜증을 키우는 중이다. ‘소설쓰시네!’라 했던 낭만적 거짓은 소설적 진실로 점차 바뀌었다. 집권당 대표가 그것도 군대에 민원을 넣었으니 찬스는 위압이었고, 장부의 길 일러주신 ‘전선야곡’은 ‘졸병 비가(卑歌)’가 됐다. ‘카투사는 원래 그래’는 또 뭔가. 공당(公黨)이 주고받는 욕설은 34년간 키워온 장년(壯年)민주주의를 망치는 회오리바람이다. 게다가 검찰개혁 방해음모론까지 발설됐다. 검찰개혁이 왜 거기서 나오는가. 친문 성향 검사들로 방어벽을 두루 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위험한 담합이다.
 
이런 때 유용한 역전 카드가 ‘코로나 찬스’다. 안민(安民)정권임을 만천하에 확증할 수 있는 정치 금광이다. 4월 초에 베푼 1차 지원금은 ‘거여(巨與)’라는 천혜의 선물로 돌아왔음을 확실히 깨달은 터에 왜 이런 기회를 마다하랴. 유권자들도 헤아린다. 정권의 하사금이 그리 기껍진 않다는 사실, ‘엄마 찬스’는 결국 ‘코로나 찬스’로 덮일 것임을 말이다. 허튼 소리를 해댄 우상호, 윤영찬이든, 기금 용처가 아리송한 윤미향이든 2차 지원금 ‘코로나 찬스’가 정권의 정의 확증편향을 강화해 줄 것임을 안다. 위태로운 생계 때문에 받아야하는 현실이 갑갑하다.
 
쪼들린 심정에도 한 가지는 기억해야 한다. 무상(無償) 재난지원금은 포퓰리즘의 문을 연다는 사실을. 무상의 경험은 강렬하다. 정권도 수혜자도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터널로 들어선다. 이른바 ‘주고받는 정치’ 터널의 끝엔 매수의 정치, 우중정치가 펼쳐진다. 베네수엘라는 석유수출금의 무분별한 살포로 망가졌고, 칠레, 페루, 그리스 등 무상지원에 기운 나라들이 대체로 그러했다. 임의 지원금에 항상 따라붙는 선별, 보편 논란은 유권자의 정권의존성 심화로 귀결된다. 차제에 기본소득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훨씬 이롭다. 최저생계비 또는 중위소득 50% 소득을 보장하는 보편복지다. 우리의 경제실력을 우선 점검해야 하지만, 그나마 매수정치가 발붙일 여지를 줄인다.
 
그러나 매수정치는 우리가 한눈 파는 사이 정치영역에 이미 뿌리를 내렸다. 심판매수다. 정권의 감시기관들이 친문인사로 꽉 채워졌다. 검찰과 감사원엔 그득하고, 대법원, 헌법재판소, 방통위, 통계청, 국세청, 선관위, 공정거래위는 이제 독립지위를 반납하고 정권의 하명 집행기구가 됐다. 공수처 신설로 완결판이 된다. 최근 헝가리, 폴란드, 터키 등 민주주의를 폐기한 국가가 갔던 길이다. 미국대통령 트럼프가 앞장서고 유럽의 포퓰리스트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추(秋)법무장관이 어긴 것은 법 이전, 법의 본질인 규범이었다. 장관 아들의 예비역 대령 고발은 민주정신의 중추신경에 마취바늘을 꽂는 행위다. 반민주 자유주의 발상이다. 정권의 행보가 정녕 이런가. 경쟁상대를 비열한 정당, 음모꾼으로 치부하고, 언론방송사가 정권 홍보대사를 자처하며, 적을 지목해 증오캠페인을 부추기는 것이 포퓰리즘의 전형적 징표다.
 
거여 집권당은 지지율 고공의 덫에 걸렸다. 당론에 반기를 든 금태섭의원 징계로부터 국회상임위 독식까지 과연 국민의 뜻일까. 나랏돈을 잘 못 썼다는 자성은 아직 없다. 국회는 상대의 빈 골문에 일제히 쇄도하는 닥공 축구장이 됐다. 누가 차도 골인이다. 고공 지지율이 34년 구축한 민주적 가드레일을 부순 역설이 한국에서 일어났다.
 
사정이 이래도 수사(修辭)는 여전히 아름답다. 신임 이낙연대표가 ‘우분투’(ubuntu,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다)를 어렵사리 발음하며 ‘협치’를 강조했다. 기반도 의지도 없는 상태에서 그것은 차라리 ‘합치로 분장한 예치(隷治)’라 해야 맞다. 집권당 시선에 야당은 아직 형기가 끝나지 않은 수형자다. 대통령이 말했다. ‘당정관계가 환상적’이라고. 176명 의원이 조건 없이 꼬리치는 애완견이라는 푸근한 현실의 다른 말이다. 일사천리 내부자 합치다. 그 길의 끝은 뭘까, 20년 집권을 향한 길 닦기?
 
‘코로나찬스’는 길 닦기의 기공식이다. 무상지원금 혜택을 받더라도 민주시민이라면 절대 잊지 말 계명(誡命)이 있다. ‘코로나찬스’는 확증편향 정권의 자선 파티, 또는 전지구적 추세인 민주주의 붕괴 대열에 합류하는 시발점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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