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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왕실 전용 경회루 몰래 구경했다 4계단 승진한 신하

중앙일보 2020.09.13 13:00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25)

이제 드디어 경회루 누마루에 올라보자. 누정은 멀리서 보는 맛도 좋겠지만 올라서 즐기는 것이 으뜸이다. 그 옛날 유득공 선생은 경회루에 올라가 즐기지 못했지만 우리는 경복궁의 경회루 특별 관람제도 덕분에 경회루에 올라 그 큰 감동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좁은 계단을 통해 2층 경회루 누각에 오르면 낙양각 사이로 바라보이는 동쪽 지붕선의 아름다움이 잠시 눈길을 멈추게 한다.
 
낙양각은 경회루의 백미로 꼽힌다. 바깥을 내다보는 열린 구조인 경회루 건물의 양쪽 기둥과 창방 사이에 독특한 문양을 새겨 바깥 풍경이 액자에 들어 온 것처럼 보이게 했다. 건축 기능으로 볼 때 낙양각의 역할은 수직의 기둥과 가로 부재인 창방의 결구가 삐걱거리거나 헐거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덧대는 건축 부재다. 창은 바깥을 보기위한 뚫린 구조인데 옛사람들은 집의 창을 단순히 건축적 요소로만 보지 않았다.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담는 액자를 치장한 것이 바로 낙양각이다. 이처럼 밖의 풍경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차경(借景)이라고 한다. 차경은 말 그대로 경치를 빌린다는 뜻이다. 소유하지 않고 잠시 빌려서 즐길 뿐이다.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그리고 보는 사람의 마음 색깔에 따라 수 만 가지의 감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차경이다.
 
낙양각은 경회루의 백미로 꼽힌다. 낙양각의 네 방향 모두 절경을 품고 있다. 특히 동쪽의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이 바라보이는 가운데 지점에 서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사진 pxhere]

낙양각은 경회루의 백미로 꼽힌다. 낙양각의 네 방향 모두 절경을 품고 있다. 특히 동쪽의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이 바라보이는 가운데 지점에 서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사진 pxhere]

 
경회루의 낙양각은 네 방향 모두 절경을 품고 있다. 특히 동쪽의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이 바라보이는 가운데 지점에 서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곳 동쪽 창으로 내다보는 풍경은 궁궐 건축의 지붕선이 만들어내는 우아함으로 나는 늘 감탄한다.
 
서편으로 보이는 인왕의 부드러우면서도 늠름한 바위산의 자태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를 옮겨다 놓은 듯 하고 뒤편의 당당한 백악이 빼어나다. 세종로 통의 높은 건물이 없던 그 시절의 남산은 어떤 모습으로 경회루 낙양각에 들어왔을까. 우리 전통 건축에서 기둥과 창방을 치장하는 낙양각은 그 용도를 모르고도 참 예쁘다. 마치 사진이나 그림의 액자 장식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낙양각이다. 
 
이곳 2층 경회루에 앉으면 절로 한가락 퉁소 소리에 빠져들 듯 하다. 가운데 어칸 마루에 앉아 수제천(壽齊天, 궁중의 중요한 연회 및 무용에 연주하던 관악)을 듣는다. 오랜 나무집과 우리가락이 함께 어울려 소소한 바람을 불러오고 듣는 이의 마음도 버드나무에 드는 바람결에 실리운다.
 

경회루의 선경을 훔치고 출세한 구종직 

경회루는 왕실 전용 연회공간으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연못 사방에 담장이 둘러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동·서·남·북의 담장이 철거됐던 것을 2005년 북쪽과 동쪽 담장을 복원하였다. [사진 pixabay]

경회루는 왕실 전용 연회공간으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연못 사방에 담장이 둘러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동·서·남·북의 담장이 철거됐던 것을 2005년 북쪽과 동쪽 담장을 복원하였다. [사진 pixabay]

 
원래 경회루의 연못 주변으로 담이 둘러져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허물었다. 경회루는 왕실 전용 연회공간으로 아무나 들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구종직(丘從直)은 세종 때 집현전 교서관 정자 벼슬을 하던 사람이다. 경회루의 경관이 아름답다는 말을 들어오다가 입직을 하게 된 어느 날 몰래 경회루에 숨어들어가 이리저리 경관을 즐기던 중 마침 내시 몇 사람을 거느리고 그곳에 거둥한 세종과 마주치게 되었다.
 
구종직은 황급히 왕 앞에 엎드렸다. 임금은 먼저 그에게 왜 이곳에 들어 왔는지 물었다. 구종직은 대답하기를 "소신이 전부터 경회루의 옥으로 만든 기둥과 요지와 같은 연못이 있어서 신선 세계와 같다는 말씀을 듣자옵고 오늘 마침 교서관(校書館)에 입직하였다가 경회루가 멀지 않으므로 초야에 있던 몸으로 법을 범한 줄 모르고 구경하려 했던 것 이옵니다"고 말했다.
 
임금은 그 벌로 노래를 해보라고 했다. 구종직이 노래를 잘 했는지 임금은 노래를 한 곡 더 부르게 하고 이어서 『춘추』를 외워보라 하였다. 구종직은 『춘추』 한 권을 막힘없이 줄줄 암송해 세종은 크게 감탄했다. 평소에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은 신하를 기특하게 여긴 세종은 다음날 그의 벼슬을 정 9품 교서관 정자에서 종 5품 교서관 부교리로 삼았다는 이야기다.
 
법을 어기고도 벌은 커녕 하루아침에 파격적인 승진을 하였으니 당시의 대간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관리가 한 품계를 승진하려면 일정기간(450일 이상)을 탈 없이 지나야할 뿐 아니라 근무성적이 뛰어나야 했다. 구종직의 경우 참하관에서 참상관으로 승진을 한 경우인데 오늘날의 고등고시에 해당하는 대과 급제도 없이 4등급을 올려 제수 받은 파격적인 승진이었던 것이다.
 
왕은 부당함을 간하는 관료들 앞에 구종직을 불러 다시 춘추를 외우게 해 간언을 물리쳤다고 한다. 학문을 좋아했던 왕이니 공부 열심히 하는 신하를 아끼고 그 본을 세우려한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풍류를 아는 세종과 구종직의 교감이 우리의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문장이 뛰어나고 역학과 경학에 밝았던 구종직은 성종 때 벼슬이 좌찬성에 이르렀다.
 
경회루 연못 주변에는 사방에 담장이 둘러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동·서·남·북의 담장이 철거됐던 것을 2005년 북쪽과 동쪽 담장을 복원하였다. 만약 원래의 모습대로 담장을 복원해 경회루를 바깥에서 볼 수 없게 된다면 요새 사람들도 구종직처럼 경회루 안쪽이 더욱 궁금하고 들어가 보고 싶어질까? 그런데 그러기보다는 너무도 오랫동안 익숙해진 경회루의 개방성에 길들여져 당장 뭔가 갑갑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복원의 딜레마이다.
 

하향정(荷香亭)

경회루 연못 북쪽에 있는 육모정자 하향정은 조선의 마지막 대목장 배희한이 지었다. 그 앉음새가 반듯하여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지닌 문화재가 되었다. [뉴시스]

경회루 연못 북쪽에 있는 육모정자 하향정은 조선의 마지막 대목장 배희한이 지었다. 그 앉음새가 반듯하여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지닌 문화재가 되었다. [뉴시스]

 
하향정은 경회루 연못 북쪽에 있는 육모정자다. 실은 경회루를 지을 당시 사상적인 배경이나 고종 대의 복원과는 상관없는 현대 건축물이 경복궁에 있는 것이다. 하향정은 1950년대 이승만 대통령 당시에 조선의 마지막 대목장 배희한이 지었다. 하향(荷香)은 연꽃 향을 뜻한다. 연지 북쪽에 2개의 장초석을 물에 담그고 있는 정자로 아주 조촐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사람 중에 혹 하향정이 본래의 경회루 풍광에 없던 정자이니 못마땅하게 생각할 수 도 있겠으나 그 앉음새가 너무도 반듯해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지닌 문화유산 아닌 문화재가 되었다.
 
국가의 공식 연회장인 경회루의 600년 세월을 어찌 감당할까마는 그래도 하향정은 60여년을 넘게 그곳에 있는 정자가 아닌가. 문화재청의 경복궁 복원 프로젝트는 고종대의 중건 모습을 원형으로 하고 있다. 2014년 일부 국회의원과 시민단체에서 하향정을 철거하자고 주장했지만, 반대로 보존하자는 의견의 목소리도 많았다. 문화재청과 자문단 회의에서는 하향정의 건축적 요소가 경회루 풍광에 조화를 이루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라 현재 위치에 존치하기로 결정했다. 누가 뭐라 해도 내게는 경회루 뒤편에 조용히 앉은 하향정이 크게 불편하지 않다. 내가 역사인식이 엄격하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다.
 
조각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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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우 이향우 조각가 필진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 교사로 명예퇴직 후 조각가로 작품을 제작하면서 우리 역사와 전통문화를 배우고 알리는 궁궐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궁궐에서의 오랜 활동을 바탕으로 조각가의 심미안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궁궐의 아름다움을 직접 그리고 글을 썼다. 우리 궁궐의 정다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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