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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힘이 되는 코로나 시대 문장들

중앙선데이 2020.09.11 14:47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시인·소설가 12명 산문집
『사진을 많이 찍고 이름을 많이 불러줘』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 코로나 시대를 사는 행동 강령이다. 전염병 예방을 위해 물리적 거리를 두더라도 마음만은 서로에 대한 온정과 호의를 잃지 말자는 말이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불안한 우리는 (서로를 믿어야 한다는)당위와 (그러나 좀처럼 믿지 못하겠는)현실 사이에서 수시로 흔들린다. 당장 '몸은 멀어도 마음은 가까이'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진다는 유행가 가사에 담긴 통속적인 진실에 위배된다. 이런 난감함은 시인이라고 달리 느끼는 게 아니다. 김안 시인은 '몸은 멀어도 마음은 가까이'를 "불가능한 사랑"이라고 규정짓는다. 병에 걸린다는 것은 몸의 균형상태가 깨진 불균형 상태일 텐데,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는 그런 불균형 상태를 유지하라는 말처럼 느껴진다는 거다. 코로나 시대에 위안이 되는 글을 모은 산문집 『사진을 많이 찍고 이름을 많이 불러줘』(B공장)에 실린 글 '코로나 시대의 하루 일기'에서다. 
시인 김안

시인 김안

 
 산문집에는 시인·소설가 열두 명의 글이 담겨 있다. 대부분 1970~80년대생, 지난해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94년생 소설가 최미래부터 얼마 전 뭉클한 첫 장편 『눈물 속에 핀 꽃』을 국내 출간한 65년생 재미 작가 장은아씨까지 글을 보탰다.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넘어야 하나. 이 한 가지 공통점으로 묶였지만 문인들의 글은 글감도 색깔도 형식도 제각각이다. 마음에 맞는 글부터 내키는 대로 읽으면 될 것 같다. 남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엿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위안을 얻는다. 
소설가 김혜나

소설가 김혜나

 
 실은 기자가 읽은 산문집의 글 가운데 김안 시인의 글에 가장 눈길이 갔다. 딸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다준 아침부터(이 등원 길에서 '몸은 멀리…'를 목격한다) 딸이 유치원에서 돌아와 같이 놀다 잠든 이후 홀로 남아 책을 뒤적이고 음악을 듣기까지 하루의 일과를 정직하게 보여주는 글이지만 여운이 오래 남는다. 산문에서 소개한 철학적인 인용글들이 그런 인상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소설가 손보미

소설가 손보미

 가령 카프카의 단편 '가장의 근심'에 나오는 괴생명체 오드라덱(Odradek) 이야기를 꺼낸 후 우리 처지가 오드라덱과 다를 게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실 감는 실패 같은 외양의 오드라덱은 유약하지만 죽지 않는 성질을 갖고 있다.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것처럼 지내야 하는 코로나 시대 인간의 모습이 바로 오드라덱이라는 얘기다. 
 
소설가 최미래

소설가 최미래

 산문집 제목은 감각적인 소설가 손보미의 산문 제목을 갖다 쓴 것이다. 그러니까 손보미 산문 '사진을 많이 찍고, 이름을 많이 불러줘'는 표제작이다. 산문 안에서 사진을 많이 찍어줘야 하는 대상은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칸트. 칸트와 손보미는 죽고 못 사는 사이가 아니다. 그런데 칸트가 아프다. 미국의 친구가 충고한다. 사진 많이 찍고 이름을 자주 불러주라고. 이는 실은 우리 인간에게 절실한 충고다. 열심히 기록을 남기고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자. 
 
소설가 장은아

소설가 장은아

 소설가 김혜나는 이국땅 헝가리에서 마주쳤던 이중의 소외 경험(이방인+코로나)을 전하고('0의 발견'), 최미래는 골프장 캐디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남성들의 일상적인 문란함을 무겁지 않게 오히려 경쾌한 느낌이 들게 들려준다. 
 장은아는 묘한 스토리텔러다.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인데, 따라 읽다 보면 시큰해진다. 이번 글 '코로나 속에서 발견한 작은 행복'도 그렇다. 산문집 전체의 주제를 압축한다면 이 글의 제목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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