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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논설위원이 간다] ‘힘의 논리’ 중시하는 흙수저 마키아벨리스트

중앙일보 2020.09.11 00:34 종합 24면 지면보기

일본 차기 총리 확실시되는 스가 요시히데 인물 탐구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지난해 4월 1일 새 일왕 취임과 함께 사용할 연호 ‘레이와’를 발표하고 있다. 스가의 인기는 이를 계기로 올라갔다. 일본에서는 1989년 ‘헤이세이’ 연호를 발표한 오부치 게이조 당시 관방장관이 훗날 총리가 된 전례가 있다. [AP=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지난해 4월 1일 새 일왕 취임과 함께 사용할 연호 ‘레이와’를 발표하고 있다. 스가의 인기는 이를 계기로 올라갔다. 일본에서는 1989년 ‘헤이세이’ 연호를 발표한 오부치 게이조 당시 관방장관이 훗날 총리가 된 전례가 있다. [AP=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아베 신조( 安倍晋三) 총리 후임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지난 7년8개월 동안 아베 정권을 떠받쳐 온 2인자지만 국내에는 스가의 면모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국제무대에 나서지 않고 내정에 집중하는 관방장관의 특성 때문이다. 코로나 위기와 미·중 갈등, 한·일 관계 악화 등의 도전 과제 속에서 일본 총리 관저의 열쇠를 물려받을 스가는 과연 어떤 정치인인지 몇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들여다보았다.
  

독자 제재 주도한 대북 강경파
위안부 합의 폐기에 격노
강제징용 입장은 아베와 일치
한·일 관계 개선 험난할 듯

비즈니스맨이나 대기업 직장인을 주 독자층으로 하는 일본 시사잡지 『프레지던트』에 ‘전략적 인생상담’이란 연재물이 있다. 직장에서의 상하관계, 업무 성과를 인정받는 방법 등의 고민에 대해 지상 카운셀링을 두 페이지에 걸쳐 싣는다. 놀랍게도 카운셀러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다. 지난 5월 연재가 시작되자 “차기 총리직 도전을 염두에 두고 대중과의 접촉면 넓히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이런 류의 상담이 그렇듯, ‘고민 호소인’이 만족할 만한 뾰족한 답변이 나오긴 힘들지만 정치인 스가의 인생관이나 정치철학, 또는 은근히 자신의 정치 업적을 내세우는 ‘전략적’ 표현들이 나온다.
 
가령 젊은 직장인이 “옛날 스타일의 상사가 일을 너무 많이 시킨다”고 호소하자 스가는 “일본 국회의원들이 일을 어영부영하는 직원들을 혼내며 ‘스가 사무실로 보내버린다’고 할 정도로 나는 직원들에게 일 많이 시키고 엄격하다. 나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11년간 국회의원 비서 생활을 하면서 신발이 닳도록 지역구를 돌아다니자 어떤 주민이 새 구두를 선물로 보내준 적도 있다. 일이 힘들어도 젊은 세대의 비전과 미래상을 상사에게 얘기하면 틀림없이 실현되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답했다.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스가는 ‘24시간 풀가동 정치인’으로 소문난 일벌레다.
 
권력투쟁의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정치인 중에는 마키아벨리를 통독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 스가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는 “(지도자가) 사랑을 받는 게 좋은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좋은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사랑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라고 『군주론』을 인용한 뒤 관료 사회를 휘어잡은 비결로 ‘미움받는 역할’을 자처한 것을 들었다.
 
일본 관료들은 스가 앞에서 쩔쩔맨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를 신조로 삼는 그에게 안 되는 일이란 있을 수 없고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거기다 고위 관료들의 인사를 직접 챙기며 기존 관행을 파괴했다. 아베가 최장수 총리가 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로 스가의 힘을 빌려 관료를 장악한 것을 꼽는다.
 
내셔널리즘과 역사수정주의, 우익 성향이 확실한 아베에 비해 스가는 이념 성향이 뚜렷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힘의 논리를 우선하는 건 마키아벨리스트들의 공통점이다. 스가는 2012년 출판한 자서전 『정치가의 각오』에서 마키아벨리의 또 다른 저서 『정략론』 중 “약체인 국가는 항상 우유부단하다. 그리고 결단을 내리는 데 지체하는 것은 해악이다”는 구절을 인용하며 “지금의 일본을 가리키는 것 같은 이 말을 가슴에 새기겠다”고 끝을 맺었다. 결국은 아베와 마찬가지로 ‘강한 일본’을 목표로 할 말은 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런 성향은 앞으로 그가 본격적으로 외교무대에 등장할 때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그가 전면에 나설 한·일 관계도 만만치 않은 파고가 예상되는 이유다.
  
소장파 시절부터 대북 강경론자
 
스가 장관이 일본 잡지에 연재 중인 ‘전략적 인생상담’.

스가 장관이 일본 잡지에 연재 중인 ‘전략적 인생상담’.

과거사 문제가 한·일 갈등의 시작과 끝인 것으로 흔히 인식되고 있지만 그 밖에도 중요한 갈등의 요인들이 있다. 중국의 부상과 미·중 갈등에 대한 대응 방식, 북한 핵무장에 대한 해결방안과 당면의 정책 등 국제정세 변화에 대한 전략적 차이는 한·일 협력을 어렵게 하는 중요 원인이다. 스가는 외교 전면에서 한발 떨어져 있었지만 대북 정책만큼은 소장 의원 시절부터 분명한 소신을 보여 왔다.
 
자서전 『정치가의 각오』에서 스가가 의원입법으로 통과시킨 대표적 업적으로 내세우는 게 있다. 2004년 5월 통과된 ‘특정 선박의 입항 금지에 관한 특별조치법’이다. 이는 사실상 ‘만경봉호 금지법’이다. 스가는 “연간 20회 가량 왕래하는 만경봉호를 타고 북한 통일전선부의 간부가 와서 선상에서 일본에서 암약하고 있는 공작원에게 지령을 내리고, 매번 10억∼20억 엔씩의 현금을 북한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런 배가 들어오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관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안을 통과시켰다. 스가는 자민당의 ‘대북 경제제재 시뮬레이션팀’의 좌장으로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현 군마현 지사)와 고노 다로(河野太郞·현 방위상) 등 소장파 의원들을 이끌고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만경봉호 금지법뿐 아니라 ‘외국환 및 외국무역법’조항을 개정해 조총련계 재일교포 기업인들의 대북 송금 경로를 차단했다. 유엔의 대북 제재와는 별개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일본의 독자 제재가 스가의 손에서 시작된 것이다. 또 NHK 라디오(단파) 와 ‘시오카제’란 이름의 별도 단파 방송을 통해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관한 대북 방송을 실시하도록 했다. 오래 전부터 일본 정치인 가운데 대북 강경파의 선두에서 활동해 온 셈이다. 그런 스가에게 대북 전단 금지법을 만든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비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대북 제재 완화와 경제 교류 협력 및 인도적 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 정부와의 대북 정책 공조는 스가 정권 출범 이후에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위안부 합의, 자부심에서 실망으로
 
“정치인의 직무는 국민의 먹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스가의 정치 신조대로 그는 지방 창생, 관광 부흥, 농업 개혁,통신요금 인하, 오키나와 미군 기지 이전을 위한 갈등 조정 등 민생과 직결된 내부 문제들에 치중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 이르는 동안 스가가 한·일 관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 정계 소식통은 “강제징용 소송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이 지난해 수출 규제 카드를 꺼내든 것은 아베와 총리 비서관인 이마이 다카야(今井尙哉) 정무비서관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과정에서 스가 관방장관도 강경론의 입장에 섰다”며 “그 배경에는 한·일간 위안부 합의의 실천이 한국 정부에 의해 사실상 폐기된 데 대한 실망감과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다소 길게 인용하면 이렇다.  
 
“스가 장관은 2015년 위안부 합의의 숨은 주역이었다. 합의문은 기시다 후미오 외상과 윤병세 외무장관의 이름으로 발표됐지만 합의문안을 만들기까지 협상을 지휘한 것은 총리 관저 직속의 야치 쇼타로 안전보장국장이었다. 그런데 이 협상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이끌어 간 숨은 주역은 스가 관방장관이다. 외교 당국간의 협상이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이를 해결하고 합의에 이르도록 독려한 사람은 스가였다. 이는 당시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과의 핫라인을 통해서였다. 주일 대사로 근무할 때부터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쌓은 관계가 국가정보원장,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옮겨 간 뒤에도 이어졌다. 스가는 위안부 합의를 큰 성과물로 생각했고 자부심을 가졌는데 한국 정권이 바뀐 뒤 합의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크게 좌절했다. 사석에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이병기 비서실장 이야기를 꺼내며 안타까워하는데 꼭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인다. ○○○상(さん) 대신 선생님 호칭을 붙이는 것은 이 비서실장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지만 위안부 합의가 뒤집힌 데 대한 실망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10일 발간된 『문예춘추』10월호 기고문에서 “이렇게 빨리 한·일 관계가 이상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이 아베 정권과는 대화가 어렵다고 본 것처럼 일본에서도 한국의 진보정권, 특히 문재인 정권과는 대화가 힘들다고 보는 기류가 강하다. 스가의 인식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그는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재판과 관련해서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 관계의 기본이며 이를 제대로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을 관계 악화의 원인 제공자로 돌리는 아베의 인식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오는 16일 아베가 물러나고 스가 정권이 출범해도 한·일 관계 개선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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