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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기부자에겐 어렵고 불친절한 법 제도 개선돼야

중앙일보 2020.09.11 00:03 경제 4면 지면보기
이일하 한국자선단체협의회 이사장

이일하 한국자선단체협의회 이사장

워런 버핏이 올해 대규모 투자 손실에도 주식 29억 달러어치(약 3조8000억원)를 기부했다고 한다. 버핏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공언에 따라 2006년부터 매년 거액의 기부를 해오고 있다. 기부 당시 주식 가치 기준으로 그가 현재까지 기부한 금액은 370억 달러(약 44조3000억원)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로 기업과 개인이 모두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이 세계 수출 순위 10위 안에 드는 경제 강국임을 고려할 때 왜 우리나라에는 버핏 같은 고액 기부자가 나오지 않는 걸까? 아니, 버핏이 한국인이었다면 우리나라 기부법 현실에서 과연 수십조원을 기부할 수 있었을까? 현실인즉슨, 우리나라 기부법 아래서 버핏과 같은 고액 기부자는 나오기 힘들다. 한국에서라면 외려 엄청난 세금 폭탄을 맞았을 것이다.
 
2018년 별세한 고 황필상 박사는 ‘180억원 기부·140억원 과세(課稅)’라는 고초를 겪은 것으로 유명하다. 황 박사 사건을 계기로 2017년 말 국회는 ‘황필상법’으로 불리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성실 공익법인 등이 출연받은 주식이나 출자 지분의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 비과세 주식 보유 한도를 10%에서 20%로 올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정된 법률을 적용해도 황필상 박사가 겪은 세금 폭탄 가능성은 여전하다.
 
우리 사회 선의의 기부자에 대한 세금 폭탄을 막고, 선진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기부 문화의 근본적 변화와 확산을 위해서는 관련 기부법 개정이 필요하다. 대기업 집단이 세운 재단과 성격이 다른 공익법인을 구분하지 않고 획일적인 규제를 적용하는 현 제도를 고쳐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 경영권과 관련 없는 공익법인에 대해서는 주식 기부에 대한 과세 기준을 크게 완화해야 한다. 대기업이 세운 재단에 대해서도 20여 년 전과 달리, 지금은 감시·견제 장치가 겹겹이 도입돼 있다. 제도가 훨씬 투명해졌기 때문에 규제를 풀고 사후관리를 해도 문제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또한 미국 세법처럼 ‘의무 지출’이라는 제도를 둬 공익법인 재산의 일정 부분을 반드시 공익 활동에 지출하도록 사실상 강제하는 방법을 도입하는 등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부작용을 상쇄할 수 있는 방안을 법에 규정해야 한다.
 
코로나19와 태풍으로 전례 없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정부는 기업과 민간의 자원을 활용한 자발적인 기부문화 확대를 통해 이 난국을 극복하기 바란다.
 
이일하 한국자선단체협의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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