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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도 꽂힌 윤형근 단색화…김오키 색소폰 만나 음악이 되다

중앙일보 2020.09.10 13:19
윤형근 작가의 그림을 주제로 한 앨범 ‘윤형근’을 발표한 색소포니스트 김오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윤형근 작가의 그림을 주제로 한 앨범 ‘윤형근’을 발표한 색소포니스트 김오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 단색화의 거목 윤형근(1928~2007)을 주제로 한 앨범이 나왔다. 2일 색소포니스트 김오키(42)가 발표한 정규 11집 ‘윤형근’이다. 윤형근이 자주 사용하는 색깔을 소재로 만든 곡들을 켜켜이 쌓아 올렸다. 김오키의 베이스 클라리넷 솔로 ‘후광(Halo)’을 기반으로 진수영의 피아노가 더해지면 ‘청색(Ultramarine)’, 정수민의 더블 베이스와 만나면 ‘다색(Burnt Umber)’이 되고, 색소폰까지 모든 소리가 모여 타이틀곡 ‘청다색(Burnt Umber & Ultramarine)’이 완성되는 식이다. 총 6곡이 수록된 앨범을 차례대로 듣다 보면 단색화가 그려지는 과정이 절로 떠오른다. 단호하게 자신의 소리를 주장하던 악기들이 서서히 스며듦을 느낄 수 있다.  
 

색소포니스트 김오키 11집 ‘윤형근’ 발매
전시 협업 계기로 PKM 갤러리가 제작해
“깊고 무거운 첫 인상 살려서 질감 표현”
비보잉·격투기 거쳐 영화까지 도전 나서

이번 앨범은 PKM 갤러리에서 처음 제작한 음반이기도 하다. 김오키가 지난 4~7월 열린 전시 ‘윤형근 1989~1999’의 퍼포먼스 영상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됐다. 방탄소년단 RM과 이승기 등 젊은 스타들이 전시를 찾으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9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김오키는 “그 전까진 몰랐는데 그림을 마주하니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후 세 차례 복역하고 한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굴곡진 윤형근의 삶에 대해서도 알게 됐지만 “깊고 무거운” 곳을 향해 침전하는 첫인상을 살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악기가 지닌 질감을 살리기 위해” 주전공이 아닌 베이스 클라리넷을 택했다. 
 

“한국대중음악상 트로피 200만원에 팔아” 

지난 2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윤형근 개인전을 찾은 방탄소년단 RM. [트위터 캡처]

지난 2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윤형근 개인전을 찾은 방탄소년단 RM. [트위터 캡처]

지난해 발매한 9집 ‘스프릿선발대’로 올 초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악인’으로 선정되고 ‘최우수 재즈& 크로스오버 재즈 음반’ 등 2관왕에 오를 정도로 평단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정식으로 음악을 배운 적은 없다. 비보잉에 미쳐 백댄서로 무대에 서고, 태권도와 이종격투기에 빠져 살다가 뒤늦게 안착한 것이 색소폰이다. 그는 “음악을 제대로 하고 싶었는데 그 수단이 색소폰이었다”며 “운지가 리코더랑 똑같고 불면 소리가 나기 때문에 독학하기에 가장 적합한 관악기”라고 설명했다. “색소폰 동호회 가면 아저씨들 많잖아요. 그만큼 접근성이 좋은 거죠.”
 
김오키의 음악이 색소폰 혹은 재즈에 국한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만든 1집 ‘천사의 분노’(2013)로 데뷔한 그는 밴드 ‘김오키 뻐킹매드니스’로 때려 부수는 음악을 하고 ‘김오키 새턴발라드’로 애절한 발라드 음악을 연주하기도 한다. 노래를 덧입힐 때도 있지만 ‘독립하지 못한 해방에 의한 자유’(2013) 등 제목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편이다. 데뷔 앨범으로 ‘최우수 재즈 & 크로스오버 최우수연주’를 수상한 그는 “나오자마자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아서 엄청 부담됐다. 명성이나 수익이 따라오는 것도 아닌데 신경 쓰이는 게 싫어서 올해 받은 트로피 2개는 각각 200만원씩에 팔아버렸다”며 “다음엔 상금으로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 굿과 아프리카 음악도 서로 통해”

김오키가 서울 PKM 갤러리에 걸린 윤형근 작품 앞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모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오키가 서울 PKM 갤러리에 걸린 윤형근 작품 앞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모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렇듯 어디로 튈지 전혀 종잡을 수 없는 것이 그의 음악이 지닌 특징이기도 하다. 윤형근의 그림이 추사 김정희로부터 시작됐다면, 김오키의 음악은 미군 부대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용산 미군 부대에 자주 놀러 가서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AFKN도 항상 봤었고. 흑인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스피리추얼 뮤직도 좋아해요. 어렸을 땐 교회에 가면 부흥회도 하고 방언도 하는 모습이 좀 무서웠는데 한국에서 무당이 굿하는 것처럼 아프리카 음악도 들어보니 똑같더라고요, 언어와 사람만 바뀌었을 뿐이죠. 그런 게 신기해서 별신굿부터 아프리카 민속 음악까지 다양하게 듣는 편이에요.”
 
영화 ‘다리 밑에 까뽀에라’도 제작 중이다. 각본 및 감독에 도전한 그는 “‘코타로 증후군’ 뮤직비디오를 찍어준 친구를 통해 영화 스태프를 알게 되면서 용기를 냈다”며 “현대 사회를 풍자하는 코믹 스릴러다. 상업영화가 아니어서 극장 개봉은 힘들 것 같고 왓챠 같은 OTT에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 웹툰 ‘아티스트’ OST 작업에 이어 다이나믹 듀오가 이끄는 아메바컬쳐 15주년 기념 앨범 프로듀싱을 맡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장르를 넘나드는 도전 이유에 대해 “음악으로 생활하기 위한 것”이라며 “원래 4~5개월 스케줄 정도는 미리 잡혀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일이 확 줄어들었다. 이번 달은 괜찮은데 다음 달, 그 다음 달도 살 만하려면 ‘윤형근’ 앨범과 영화가 잘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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