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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외교문제로 커진 미·중 IT전쟁, 데이터 안보표준 '충돌'

중앙일보 2020.09.10 06:00
중국이 미국에 맞설 '데이터 안보 표준' 만들기에 나섰다. 중국 왕이(王毅) 외교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8일 베이징에서 열린 디지털 거버넌스 심포지엄에서 '글로벌 데이터 안보 이니셔티브(全球数据安全倡议)'를 발표했다. 미국 정부가 중국산 소셜네트워크(SNS) 틱톡·위챗 사용을 금지하고, 틱톡 강제 매각을 추진 중인 가운데 나온 반격이다.
 

무슨 일이야?

· 이니셔티브는 국가전략을 지칭하는 말.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8일 데이터 이니셔티브를 발표하며 ▶다자주의 ▶안전과 발전 ▶공정과 정의 3가지를 강조했다. 
· 진짜 핵심은 '중국의 8가지 제안'에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기업 데이터의 '국적성'을 강조한 대목. 중국 외교부는 "기업은 사업하는 국가의 법률을 존중하고, 기업이 해외에서 취득한 데이터를 그 국가(해외국가)에만 저장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4항)와 "다른 국가의 주권, 관할권 및 데이터 관리 권한을 존중하고 타국 데이터에 접근해선 안 된다"(5항)고 밝혔다. 
 

왜 중요해?

틱톡을 사이에 둔 미·중 디지털 갈등이 글로벌 '데이터 안보 표준경쟁'으로 심화되고 있다. 판이 커지면 한국도 휩쓸릴 수 있다.
 
· IT·산업 이슈가 국제외교·안보 싸움으로 확장됐다. 미국과 중국 모두 최근들어 외교·안보 최고 책임자가 전면에 나섰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절묘한 시기에 중국이 데이터 거버넌스와 디지털 주권 문제를 들고 나왔다"며 "중국과 가까운 국가와 여타 국가는 선택을 고민해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 때 미·중은 해킹 문제로 갈등을 시작했고, 화웨이 사태를 거쳐 지난해 하반기부터 데이터 주권 문제가 핵심으로 부상했다"고 지적했다. 틱톡은 줄곧 이어진 미중 데이터 주권 다툼의 한 파편이란 얘기다.
 
미·중 ‘데이터 거버넌스’경쟁.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미·중 ‘데이터 거버넌스’경쟁.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미국의 선공

미국은 8월 5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클린 네트워크' 정책을 발표했다. 다음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바이트댄스(틱톡의 모회사) 거래금지 행정명령이 나왔다.
 
·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할 것"이라며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국가와 기업의 가입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 미국의 클린 네트워크는 지난해 중국 5G 위험을 지적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든 '프라하 제안'보다 더 압박 수위가 높다. 중국기업의 통신네트워크·중국 앱·클라우드·해저케이블 사용을 제한하는 등 중국 IT기업 전반을 겨냥했다.주목할 점은 한국의 SK텔레콤·KT를 포함해 ·일본·대만 등 글로벌 통신사 30여 곳을 안보 위협이 없는 '클린 회사'로 지정하며 클린 네트워크에 암묵적으로 편입시켰다는 것. 

 
미국 국무부가 선정한 5G 클린국가 및 클린 통신사. 미 국무부

미국 국무부가 선정한 5G 클린국가 및 클린 통신사. 미 국무부

중국의 반격

중국은 미국이 공산당을 언급하는 게 불편하다. 중국 국내 총생산(GDP)의 3분의 1을 디지털 경제가 떠받치는 상황에서 고립되지 않고 활로를 찾는 게 숙제. 이니셔티브에서도 미국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미국을 저격했다.
 
· 왕이 외교부장은 "일방적으로 '클린'이라는 구실로 다른 나라를 압박하고 '안보' 핑계로 타국 첨단기업에 대해 글로벌 사냥을 일삼고 있다"며 비판했다. 미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 미국 정부의 우려를 방어할 대책(백도어 설정을 금지, 중요 인프라 공격이나 데이터 도용 금지)을 내놓으면서, 동시에 전선을 글로벌 데이터 안보 표준경쟁으로 확대하는 전략(국가의 데이터 주권과 관할권, 보안관리 권한을 강조)을 구사했다. 
· 중국 상무부의 핵심 IT 기술 수출금지(8월 28일)에 이어 다자주의에 기반을 둔 '데이터 이니셔티브'를 꺼내며 '우군 만들기'에 나섰다. 
 

누가 유리할까?

미국은 '위험한 중국' 프레임으로 중국 고립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에, 중국은 새로운 글로벌 규범을 만들고 동조 세력을 규합해 미국의 압박을 피하려 한다. 더 넓게 보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중국 포위망)'과 중국의 '일대일로(一带一路, 경제 실크로드 연결)전략' 싸움의 연장선. 
 
· 미 국무부는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국가와 기업이 클린 네트워크에 가입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대만은 8월 31일 공식적으로 '클린 네트워크' 참여를 선언. 월스트리트저널은 "8월 초까지 30개 이상 국가가 클린네트워크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중국은 9억명의 인터넷 시장 참여 기회를 강조하며 중진국 및 개발도상국을 포섭할 전망.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 3일 열린 G20 외무장관 회의에서 "데이터 보안 이니셔티브를 제안할 것"이라고 언급했었다.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아세안국가, 일대일로 수혜국이 주요 타겟.
· 박지영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중국이 5G·사이버 인프라를 아시아·중남미·아프리카에 보급하며 100조원 이상 쏟아부었기에 꼭 불리하다고 보긴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과는 무슨 상관

미·중 모두 자기 편에 서라고 한국에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 화웨이 사태에서 '개별 기업의 판단에 맡긴다'며 의견 표명을 미룬 한국에 두 번째 선택의 순간이 올 수도.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화웨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급 제재 조치(9월 15일 발효)로 인해 화웨이에 메모리반도체 공급을 중단하게 됐다. 
 
· 클린네트워크의 출발점인 프라하 5G 안보회의(2019년 5월)에는 한국 외교부 김건 차관보(당시 국제안보대사)가 참여했다. 미국 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핵심 동맹·우방국을 대상으로 '클린네트워크 참여'를 촉구하는 중.  
·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는 8일 국내 언론(디지털타임스) 기고에서 "한국판 뉴딜과 중국의 글로벌 데이터안보 이니셔티브는 통하는 점이 많고, 한국 기업이 적극적 참여를 통해 중국의 넓은 시장에서 많은 기회를 공유하길 바란다"며 이니셔티브 참여를 우회 압박했다. 외교부 김인철 대변인은 "중국의 공식 참여 제안은 없었다"며 "구체적인 참여 제안이 오면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 박지영 연구원은 "한국은 서구의 규칙을 따르면서도 데이터에선 국내 산업 보호를 중시해 중국과 정책이 유사한 측면이 있다"며 "선택의 압박이 오기 전에 데이터 주권과 관련된 명확한 우리 입장을 정리해 두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김상배 교수는 "IT 분야는 군사·정치보다는 창의적 해결책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며 "미·중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기 보다 미들파워로 데이터 주권 분야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엽·이유정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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