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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논설위원이 간다] “공영방송 위기…시청자는 동정할 이유 없다”

중앙일보 2020.09.10 00:23 종합 23면 지면보기

지상파 살리기, 성공할까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OTT도 방발기금 내라
 

지상파 우군들의 지상파 구하기
공영방송들 일제히 수신료 여론전
시청자 86%가 인상에 부정적 조사
공정성 논란 시청자 불만 이어져

‘방송사들이 내는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을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부과하라.’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 자주 들리는 목소리다. 지상파 출신 의원들이 앞장섰다. KBS 부사장을 지낸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일 과방위에서 “방발기금과 정보통신기금을 통합하고, 인터넷 포털과 OTT 사업자에게도 기금을 징수하자”고 주장했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은 이에 “신중히 생각할 문제”라고 답했다.
 
방발기금은 전파라는 공공재를 사용하도록 정부 인·허가를 받은 방송통신사업자들이 그 반대급부로 매년 매출의 일정액을 내는 분담금이다. 지상파·종편·보도전문채널·홈쇼핑 등에 부과된다. 지난해 SBS는 142억원, MBC는 105억원, KBS는 87억원을 냈다.
 
지상파가 재정난에 처하면서 불만이 싹텄고, 시청자를 빼앗은 OTT로 불똥이 튀었다. 지난 7~8월 국회 과방위에서 MBC 아나운서 출신 한준호 민주당 의원이 운을 떼자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원칙적으로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OTT에) 기금을 징수 안 하는 불평등은 해소돼야 한다”며 지상파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OTT는 정부 허가사업이 아니어서 방발기금 부과의 법적 근거를 찾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에 부과할 수 있을지 현실성도 의문이다. 한 위원장이 글로벌 OTT의 공세에 맞서 국내 OTT 사업자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과도 배치된다. 논란이 커지자 한 위원장은 ‘OTT 사업자에게 방발기금을 언급한 적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유튜브에 방발기금을 징수하자’는 법안(대표발의 변재일 민주당 의원)이 발의됐다 불발에 그쳤다. 21대 국회는 유튜브에서 OTT로 대상이 바뀐 셈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일부 방발기금 지원 대상의 부적절함도 비판한다. 그러나 방발기금의 일부는 방송프로그램 제작비 지원으로 회수되기도 한다. 지난해 방발기금 87억원을 낸 KBS는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등을 통해 87억원의 제작지원을 받았다.
  
#“공영방송이 더는 필요 없다”
 
지난 1일 KBS가 주최한 ‘KBS 시청자 포럼’의 한 장면. 공영방송 KBS의 책무와 수신료 인상 등 재정 안정화 방안이 논의됐다. [사진 KBS]

지난 1일 KBS가 주최한 ‘KBS 시청자 포럼’의 한 장면. 공영방송 KBS의 책무와 수신료 인상 등 재정 안정화 방안이 논의됐다. [사진 KBS]

지상파는 연일 ‘수신료 여론전’도 펼치고 있다. KBS만 해도 올해 1000억 원대의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 경영혁신 부족, 미디어 환경변화, 젊은 시청층의 이탈과 고품질 콘텐츠 부족, 불공정 논란의 결과다. 이런 위기를 수신료 카드로 돌파하려는 모양새다. 방통위원장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여당 위원들이 지상파 위기와 수신료 인상을 언급할 정도로 우군도 많다. 박성제 MBC 사장이 “우리도 수신료를 받아야 한다”고 먼저 치고 나왔고, EBS는 “수신료 배분을 높여달라”고 가세했다. 지난해 KBS가 받은 수신료는 6705억원, 그중 EBS는 188억원을 배분받았다. 지난 1일 KBS 시청자포럼에서는 “현행 준조세 성격의 수신료를 조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자”(주정민 전남대 교수)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수신료에 대한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최은경 전남과학대 교수가 이날 소개한 ‘공영방송 수신료 관련 시청자 견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성인 1000명 중 수신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은 6%에 불과했다(6월 미디어오늘 조사). ‘폐지해야 한다’가 46%, ‘적정하다’가 26%, ‘인하해야 한다’가 14%로, 인상에 부정적 의견(86%)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최 교수는 “시청자들이 공영방송에 대한 만족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인하·폐지 의견이 60%에 달하는데 이는 단순 부정의견을 넘어 공영방송이 더는 필요 없다거나 수신료에 적극 반대하는 입장으로 보인다. 이것이 공영방송 정상화 이후 KBS가 받은 성적표”라고 꼬집었다.
  
#넷플릭스 추격, BBC도 흔들
 
사실 공영방송의 위기는, 우리 공영방송들이 모범으로 꼽는 BBC나 NHK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의 방통위에 해당하는 오프콤(Ofcom)이 지난 7월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사용한 미디어 서비스 중 가치 있는 서비스 3개’를 묻는 질문에 넷플릭스를 꼽은 사람이 44%로 제일 많았다. 2위는 BBC(43%), 3위는 유튜브(33%)였다. 오프콤은 특히 젊은층의 이탈이 심하며, 이들은 공영방송 콘텐츠를 넷플릭스 등으로 시청해 공영방송 프로인지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또 시청 환경 변화에 따라 비싼 수신료(월 2만원)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으며, 특히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75세 이상 고령자에게 수신료를 징수한 BBC를 도덕적으로 혐오하는 계층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NHK도 지난 6월 향후 3년간 300억엔(약 3356억원) 수입 감소를 예상하면서 위성과 라디오 채널 축소 등을 발표했다. 수신료 수입이 줄고 있지만 마에다 테루노부 NHK 회장은 “TV 아닌 PC나 모바일로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수신료를 받을 계획은 없다”고 못박았다. 모바일 시청자에게까지 수신료 부과를 확대하려는 국내 일각의 움직임과 배치된다.
 
영국 오프콤 보고서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시청자들이 여전히 흔들림 없는 공영방송의 가치 중 하나로 “공동체 및 가족의 화합”을 꼽았다는 점이다. 공영방송은 전 연령대에서 공동시청 혹은 가족시청하고 있었으며, 시청자들은 “공영방송의 보편성이 다른 사회계층 간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등 사회적 화합 측면에서 고유의 가치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공영방송이 사회통합 효과보다는, 정파성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적대적 진영 논리를 부추기는 우리 현실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조국 사태 보도나 이른바 ‘검언유착’ 관련 오보 등 정권과 코드를 맞추는 공영방송의 편파성은 진보 학자들마저 비판하고 있다. 손석춘 건국대 교수는 “저널리즘을 바로잡겠다는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등이 친정부 편향 세력의 영향권 아래 있다”고 질타했다.
 
앞서 KBS 시청자포럼에서 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방송의 공정성은 공영방송의 여러 문제 중 가장 심각하다. 공정성 시비가 있는 한 공적 재원을 더 확보한다든지 새로운 혁신 전략을 내세워도 공적인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공영방송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시청각매체 이용자 입장에서는 전보다 확장된 선택을 누리고 있다. (해외 고품질 콘텐츠를 접한) 시청자들은 공영방송의 사정에 대해 동정해줄 게 별로 없다”고도 덧붙였다. 공영방송이 ‘공공성의 최후 보루’를 자임하고 있지만 시청자가 지금처럼 그 존재 이유를 체감하지 못하고, 높아진 눈높이도 따라잡지 못하는 한 지상파 살리기는 기득권 지키기, 혹은 정치적 우군 살리기일 뿐이라는 얘기다.
 
미래세대에 방송사 브랜드는 의미 없어질 것
영국 오프콤이 지난 7월 펴낸 ‘시청자의 공영방송과의 관계에 대한 탐구:청년 시청자를 중심으로’ 보고서는 주요 시청층을 세 연령대로 구분했다.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있다. 첫째는 16~24세의 Z세대 혹은 ‘떠오르는(Emerging) 시청층’이다. 이들은 넷플릭스·유튜브로 영상 콘텐츠를, 스포티파이·애플뮤직으로 오디오 콘텐츠를 소비한다. 공영방송은 거의 보지 않고, 보더라도 넷플릭스를 통하기 때문에 공영방송 콘텐츠인지 알지 못했다. BBC나 HBO 같은 채널 브랜드에는 관심 없고 오직 콘텐츠 자체나 플랫폼에만 관심 있는 것도 특징. 이들에게 BBC 같은 방송사는 향후 프로덕션 같은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두 번째는 기술선도적 X세대인 ‘진화하는(Evolving) 시청층’이다. 20대 중반부터 40대까지다. 넷플릭스·아마존 프라임·유튜브 등 스트리밍 서비스를 쓰면서 공영방송도 함께 시청했다. 미디어 서비스를 가장 폭넓게 쓰는 시청층이다. 세 번째는 베이비부머 등 50대 이상인 ‘확립된(Established) 시청층’. 어려서 TV를 보며 자랐고 공영방송을 자신과 가장 관련성 높은 서비스로 꼽았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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