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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의 퍼스펙티브] 의사 파업 재발 막으려면 사회적 합의로 정책 결정해야

중앙일보 2020.09.10 00:21 종합 24면 지면보기

되풀이 되는 의사 파업, 무엇이 문제인가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

의사 수를 늘려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의료의 지역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정부 정책은 의사 파업 앞에 멈춰 서고 말았다. 대대적인 파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사들의 강력한 반대가 예상됐음에도 준비는 허술했다. 정책 내용은 부실했고 정책 추진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절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의 허술한 의대 증원 정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소수의 정책 결정자가 중요한 의료 정책을 좌지우지하며
의사 등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참여는 제도화돼 있지 않아
설사 책임 있는 소수가 정책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해도
왜 그런 결정 내렸는지 잘 설명하고 이해당사자 납득시켜야

정부가 의사 수만 늘리려고 한 게 아니었다면 보다 온전한 정책을 내놨어야 했다. 의료 취약지에 공공병원이나 민간병원을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응급환자 진료가 가능한 큰 종합병원으로 확충하고, 대학병원과 연계해 진료 수준을 높이며, 적자를 내지 않고 병원이 운영될 수 있도록 건강보험 진료비 가산제 같은 정책이 포함된 온전한 정책이 필요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예산과 추진 일정이 담긴 책임 있는 정책도 내놨어야 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과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뉴딜 정책에서도 공공의료와 지역의료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은 반쪽짜리였다. 정부 발표에 담긴 공공의료와 지역의료 강화 대책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예산도, 추진 일정도 없어서 정부 의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 반쪽짜리 정책이 코로나19와의 싸움으로 여력이 없어서였는지, 공공의료와 지역의료 강화가 의사 수를 늘리기 위한 장식품이었는지 정부의 다음 행보를 보면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1일 충북대병원에서 정부 의료정책 반대 파업을 하는 전문의·전공의를 지지하는 내용의 피켓을 든 충북대 의대 교수들. [뉴시스]

지난 1일 충북대병원에서 정부 의료정책 반대 파업을 하는 전문의·전공의를 지지하는 내용의 피켓을 든 충북대 의대 교수들. [뉴시스]

의대 정원을 늘리는 정책을 국민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 당사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결정했다면 의사 파업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000년 의약(醫藥) 분업부터 여러 차례 되풀이되는 의사 파업을 통해 정부가 의사들의 단체행동에 대응할 효과적인 수단이 별로 없다는 것도 이미 확인됐다.
 
하지만 정부의 중요한 정책 결정은 여전히 소수의 정책 결정자가 주도하고 있다.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참여할 기회는 제도화돼 있지 않다.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근거로 정책이 만들어졌는지 의사들을 포함한 이해 당사자들이 알지 못한다. 설사 책임 있는 소수가 정책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해도 정부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하고 이해 당사자를 납득시켜야 했다.
  
의사들은 정책 반대보다 대안 제시 힘써야
 
2000년 의약 분업 반대 파업 이후 의사 파업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2012년 포괄수가제도 도입 반대 파업, 2014년 원격 의료와 의료 영리화 반대 파업이 있었다. 왜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인 전문직종인 의사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국민과 정책 결정자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하고 파업 같은 극단적인 수단에 의존하는 것일까.
 
의사들은 늘 의료정책에 현장 전문가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실제 의료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대부분의 정부 위원회에는 의사협회가 추천한 수많은 전문가가 참여한다. 대부분의 정책에 의사들이 참여하지만,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전문가 의견을 잘 소화해서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정부의 정책 능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의사협회가 새로운 의료정책을 제안하거나 정부가 제안한 정책을 정교하게 만드는 데는 소극적이고, 주로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반대를 하느라 정교한 정책을 만들 기회를 놓치고 있다. 정부 정책을 반대할 때 대안이 되는 정책을 제안하거나 설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서양 의사들은 우리나라처럼 의료정책에 대한 불만이 많지 않다. 유럽 의사들은 정부 공무원으로, 직접 정책을 만들거나 정책을 정교하게 만드는 데 참여한다. 자신들의 의견이 잘 반영된 정책이 만들어지니 불만이 적고, 정책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하니 국민은 의사 집단을 신뢰한다.
  
응급실·중환자실 의사 파업 제한해야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2일 의사협회의 집단 휴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2일 의사협회의 집단 휴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의사들은 파업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성공적으로 관철해왔기 때문에 정부와의 갈등이 고조되면 파업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이 높다. 의사 파업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주요 정책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돼야 한다. 건강보험료와 의료 수가를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좋은 예다. 의료계 단체 이외에 건강보험 가입자와 보험자·노조·전문가가 함께 논의해 결정한다. 이번 파업의 실마리가 된 의과대학 정원은 현행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의해 설치된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의사들은 정부 정책에 반대만 하지 말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파업이 아니라 합리적인 대안을 가지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현장 전문가의 의견이 반영되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의사 파업으로 인해 국민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의료법을 고쳐 의사들이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비우고 파업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국·공립 병원을 늘리고 대학병원과 국·공립병원 의료진은 국가 공무원의 신분으로 파업에 참여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
 
키워드
포괄수가제도 같은 종류의 질병에 대해 환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양이나 질과 관계없이 똑같은 치료비를 부과하도록 하는 제도.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 서비스 하나하나의 사용량이나 가격에 대해 진료비를 계산하는 행위별 수가제와 대비된다. 포괄수가제는 행위별 수가제에서 발생하는 과잉 진료를 억제해 보험 재정 안정 효과가 있으나, 과소 진료를 유발하기도 한다.
의사들도 시민 요구 부응해 전문가적 정당성 강화해야
올해 의사 파업은 어느 때보다 강경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전공의들까지 파업에 참여하면서 제때 치료를 못 받은 응급환자와 수술이 미뤄진 암 환자들이 적지 않게 생겨났다.
 
정부 계획대로 매년 400명씩 10년 동안 4000명의 의사를 추가 배출해도 늘어나는 의사 수는 전체 의사 수의 3%에 불과하다. 이들이 의대 6년과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10년의 의무 복무를 마친 후에야 기존 의사들의 잠재적인 경쟁자가 될 수 있다.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의대생이 국가고시를 거부하고 ▶전공의가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비우며 ▶대학교수까지 의대생과 전공의를 지지는 전례 없는 파업을 하게 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의사들은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비슷한 생각과 가치를 공유한다. 의과대학 내내 수업을 같이 듣고, 전공의 시절에는 병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이후에도 동료 의사들과 주로 어울리면서 사회화가 이뤄진다. 도제식 교육 수련과 엘리트 의식은 이 같은 과정을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의사들의 생각과 눈높이가 국민과 너무 다르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수 있다. 이번 의사 파업 과정에서 공공 의대는 ‘현대판 음서제’라는 주장을 포함한 많은 가짜뉴스가 의사 집단 내부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됐다. 이를 바탕으로 의사 집단 내부 결속이 강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래서 의사들은 몹시 분노하는데 국민은 의사들이 왜 분노하는지, 왜 파업을 하는지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 집단의 사회적 권위는 전문가의 정당성과 국민의 전문가에 대한 의존성에서 비롯된다. 오랜 기간에 걸쳐 서양 의사들은 전문직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 시민 요구에 부응하고 윤리 기준을 마련하며 자정 활동을 강화해왔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전문가가 옳다는 정당성을 확보해 왔다.
 
하지만 우리에게 서양의학은 역사적 맥락을 빠트린 채 그냥 의학지식으로 수입되어 의사들의 전문가적 정당성은 애초부터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 이익을 대변하는데 서툴렀던 의사들은 반세기가 넘도록 정당성을 강화하지도 못했다. 전문가로서 정당성이 부족하니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의사면허가 갖는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국민 신뢰를 상실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고, 역설적으로 약화하는 정당성을 대신하기 위해 의사 파업의 강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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