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국 아카데미상, 소수자 비중 낮은 영화 작품상 안 준다

중앙일보 2020.09.10 00:03 종합 18면 지면보기
올해 2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한 현장 모습. [AFP=연합뉴스]

올해 2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한 현장 모습. [AFP=연합뉴스]

여성·유색인종·성 소수자·장애인 등이 비중 있게 참여한 영화여야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를 수 있게 됐다. 올 2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비영어 영화 최초 작품상을 안겼던 미국 아카데미의 작품상 후보 조건에 다양성에 관한 규정이 신설됐다.
 

후보심사 기준에 다양성 규정 신설
여성·유색인종·장애인 등 참여해야

아카데미시상식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는 8일(현지 시간) 2024년 제96회 시상식부터 다양성에 관한 신설 기준 4가지 중 2개는 반드시 충족해야 작품상 후보에 오를 수 있다고 발표했다.
 
(A)스크린 속 표현, 주제 및 내러티브 (B)창조적 리더십과 프로젝트팀 (C)산업 접근성 및 기회 (D)관객 개발 등 영화가 만들어져 개봉하기까지 스크린 안팎을 영역별로 나눈 4가지 기준을 세우고 이 중 최소 2가지 영역에서 그간 주류 영화에 소외돼 온 여성, 인종 또는 민족 집단, 성 소수자, 장애인 등 소수자가 비중 있게 참여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참여 비율은 각 기준마다 세부항목으로 정했다. 그간 아카데미시상식에 쏟아진 ‘백인들의 잔치(#OscarsSoWhite)’란 비판 때문일까. 특히 인종에 대해선 백인을 제외한 “아시아, 히스패닉·라틴, 흑인·아프리카계 미국인, 미국 선주민, 중동·북아프리카, 하와이 혹은 다른 태평양섬 선주민, 그 밖의 부족 또는 민족” 등을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예를 들면 이런 방식이다. 기준A에 통과하기 위해선 ①주연 배우나 주요 조연 중 적어도 한 명이 위와 같은 백인 외 다인종 혹은 민족 출신일 것 ②조·단역의 최소 30% 이상이 다인종·여성·성 소수자·장애인 중 2가지 이상을 포함할 것 ③영화의 주요 줄거리, 주제 또는 내러티브가 소수자 집단에 관한 내용일 것 등 3가지 세부항목 중 적어도 하나는 만족시켜야 한다.
 
제작 현장을 아우른 기준B에선 연출·촬영·작곡·의상·캐스팅·편집·헤어·메이크업·프로듀서·미술·사운드·VFX·작가 등 책임자급 직책 중 적어도 두 명이, 혹은 전체 제작진의 최소 30%가 다인종·여성·성 소수자·장애인 등 주류에서 소외된 집단 출신일 것 등의 세부항목이 포함됐다.
 
제작·배급 분야에서 이런 소수자 집단에 유급견습·인턴십·교육·기술개발 기회를 주고(기준C), 마케팅·홍보·배급사 내 여러 명의 고위 임원이 이러한 소수자 출신일 것(기준D) 등 영화산업의 전 과정에 걸친 세세한 조건도 마련했다.
 
다만, 지금으로선 작품상 외 분야는 기존 규정을 유지한다는 방침이어서 실제 시상식 풍경이 얼마나 바뀔지는 2024년 시상식을 두고 봐야 할 듯하다.
 
이번 결정은 아카데미 측이 올해까지 유색인종과 여성 회원 수를 두 배로 늘린 데 이어 지난 6월부터 아카데미 측이 오스카 수상 자격에 다양성을 위한 새 기준 개발 태스크포스를 구성한 데 따른 결과다. 당시 아카데미 측은 이를 ‘아카데미 어퍼처(Aperture·조리개) 2025’ 계획이라 명명했다.
 
아카데미 측은 이번 다양성 규정에 대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의 다양성을 더 잘 반영하기 위해 스크린 안팎에서 공평한 표현을 장려하고자 고안됐다”면서 “영국영화협회(BFI) 다양성 표준에서 영감을 받았다. 또 현재 오스카상 후보 자격을 판단하는 미국영화제작가조합(PGA)과 상의했다”고 설명했다.
 
또 “전 세계 인구의 다양성과 영화의 창조성을 반영하기 위해 어퍼처는 더 넓어져야 한다”면서 “우리는 이번 기준이 우리 산업에서 오래 지속하고 필수적인 변화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전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