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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화가 강요배 “삶과 예술 둘다 천천히, 정직하게 가야”

중앙일보 2020.09.10 00:03 종합 18면 지면보기
강요배 작가는 ’제주는 섬 전체가 생태적 조화를 이룬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 같다. 한라산 자락에서 푸른 밤하늘을 보면 우주의 큰 집에 살고 있음이 실감 난다“고 했다. 한조 Ⅱ, 캔버스에 아크릴, 2018. [사진 돌베개]

강요배 작가는 ’제주는 섬 전체가 생태적 조화를 이룬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 같다. 한라산 자락에서 푸른 밤하늘을 보면 우주의 큰 집에 살고 있음이 실감 난다“고 했다. 한조 Ⅱ, 캔버스에 아크릴, 2018. [사진 돌베개]

“내가 화가다, 예술을 한다, 그런 건 다 둘째 문제에요. 중요한 건 인생 공부입니다. 그동안 그림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작업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림이란 것, 결국 저를 알아가는 과정이었죠.”
 

화단 45년 첫 산문집 『풍경의 깊이』
사람·역사·자연 향한 따뜻한 시선
“투명구슬처럼 내 생각 보이는 글들”

“1992년 고향 제주도로 돌아갔어요. 그곳이 가장 자유롭고 편한 곳이어서 간 거예요. 그때가 한참 한국 사회가 ‘세계화’ 얘기로 떠들썩하고 다들 해외로 나갈 때였는데 거꾸로 난 시골로 간 거죠(웃음). 제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삼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앞서나가야 한다, 첨단이어야 한다. 미술계에도 이런 전위 강박증에 걸린 사람들이 많아요. 다들 뭔가 엄청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리죠.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휩쓸리지 않으려면 나를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게 훨씬 중요해요. 지금 최고라고 떠드는 것들도 나중에 시간 흐르면 평가가 달라지죠. 나를 존중하고, 길게 보고, 천천히 가야 해요···.”
 
마파람Ⅰ, 캔버스에 아크릴, 1992. [사진 돌베개]

마파람Ⅰ, 캔버스에 아크릴, 1992. [사진 돌베개]

현대미술 화가 강요배(68)의 말이다. 질문 하나를 던지면 잠깐 숨을 고르다가 조심스럽게 생각을 드러냈지만, 그의 말에선 옹골찬 심지가 보였다. 방탄소년단(BTS) 얘기를 먼저 꺼낼 만큼 유쾌하기도 했다. 인터뷰 도중 그는 ‘정직하게’ ‘장기적으로’ ‘자기 존중(self-respect)’이라는 말을 여러 번 강조했다. 그게 그가 살아온 방법이자 예술을 대하는 태도인 듯했다.
 
강요배가 최근 첫 산문집  풍경의 깊이 : 강요배 예술산문(돌베개)을 펴냈다. 자기 자신과 삶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와 자연, 그리고 그린다는 것의 의미를 집요하게 물으며 파고든 생각이 오롯이 담긴 책이다. 비 오는 날 파주출판도시 돌베개 출판사 사옥에서 만난 그는 “20대부터 60대까지 내 인생 45년간의 생각들, 절대 짧지 않은 기간에 쓰인 글이 여기 다 담겼다”며 “내 생각의 여로가 투명 구슬 속처럼 훤히 들여다보이는 글들”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얘기를 더 들어봤다.
 
그림만큼 강렬한 필치의 글로 첫 산문집 『풍경의 깊이』를 펴낸 강요배.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림만큼 강렬한 필치의 글로 첫 산문집 『풍경의 깊이』를 펴낸 강요배.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첫 산문 ‘마음의 풍경’ 첫 줄에서 “섬에서 자란 나는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고 썼는데.
“마흔한 살 되던 해인 1992년 제주로 돌아갔다. 돌아보니 나는 도시 체질이 아니더라. 도시에서 방황하면서 해가 갈수록 제주의 자연을 잊을 수 없었다. 도회지에서 시달린 내 마음이 제주에선 다 뚫리는 것 같았다. 마음이 홀가분해지니까 ‘호박꽃’ ‘마파람’ 같은 그림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1952년 제주 출신인 강요배는 한국 미술계에서 제주의 역사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뤄온 작가로 손꼽힌다. 서울대 미대(학·석사)를 졸업하고, 1980년대 말부터 제주도 4·3사건에 관한 연작을 그렸다. 1992년 ‘제주민중항쟁사건’을 주제로 전시를 연 뒤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간 뒤에는 제주의 자연을 화폭에 담아오고 있다.
 
1980년대엔 민중운동 미술그룹 ‘현실과 발언’의 창립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때 보낸 시간은 돌아보면 내게 중요하고 필요했던 시간, 즉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초반까지 3~4년간 사회와 역사의 맥락을 공부했다. 나를 알기 위해선 고향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원(始原), 종이에 펜과 먹, 1989. [사진 돌베개]

시원(始原), 종이에 펜과 먹, 1989. [사진 돌베개]

‘4·3 민중항쟁(이하 4·3)’ 연작을 했다.
“내가 지금까지 그려온 작품은 약 2000여 점 정도이고 그 중 4·3을 주제로 한 작품은 70~80점 정도다. 4·3 연작은 강요배가 역사를 배우고 민심의 흐름을 짚기 위해 공부한 결과였다. 4·3은 아직도 다른 각도에서 다뤄질 여지가 매우 많다. 비극의 역사를 마주하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일을 통해 힘을 얻기도 했다.”
 
역사를 알고 나면 자연이 달라 보인다고 했다.
“풍경은 사연 있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나는 제주를 다른 사람들처럼 관광객의 시선으로만 볼 수는 없었다. 역사를 이해하고 보면 어느 동네에나 있는 앞바다도 달라 보인다. 그 공간에 스쳐 간 시간과 사연과 내력이 지층처럼 겹쳐서 보인다. 그때부턴 호박이나 옥수수나 진달래, 보리밭 등 사소한 것들이 내겐 굉장히 재미있어지는 거다.”
 
지금 20·30대의 강요배를 만난다면.
“인생도, 예술도 다 길게 가는 것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젊을 때를 돌아보면 그때는 사는 게 급선무였다.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예술,예술 찾는 건 엄청난 사치다. 사는 것이 우선이다. 대신 예술은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풍경의 깊이』(돌베개)

『풍경의 깊이』(돌베개)

강 작가는 또 “화가도 자칫하면 자기 작품 앞에서 변명을 내세우거나 자신에게조차 거짓말하기 십상”이라며 “내 자리를 잘 찾으려면 정직하게 나를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자기를 과대평가하거나 오버하지도 않아야 하지만 쓸데없이 자기는 낮춰서도 안 된다”면서 “중요한 건 자기 존중이다. 방탄소년단(BTS) 음악이 세계 팬들과 소통하는 것도 그 바탕에 자기 존중의 메시지가 있기 때문 아니냐”고 반문했다.
 
“요즘 특히 베토벤의 교향곡 등 음악을 들으며 나는 아직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형태를 더 자유롭게 풀고 흐트러뜨려야 하는데, 아직도 형태가 너무 많이 남아 있다. 리듬을 담아야 한다. 좀 더 비어 있는 상태로, 좀 더 자유분방하게, 좀 더 부드럽게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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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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