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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서울시 '반값 임대료' 다시 올리자···뼈 때린 '각득기소' 청원

중앙일보 2020.09.09 18:40
9일 오후 한 낮인데도 서울 중구 소공지하도상가 일부 점포가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모습. [사진 전국지하도상인연합회]

9일 오후 한 낮인데도 서울 중구 소공지하도상가 일부 점포가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모습. [사진 전국지하도상인연합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소상공인들의 호소가 점점 절규에 가까워지고 있다. 서울시의 공공상가 임대료 인하 기간이 끝난 데다 시 산하 공공기관마저 임대료 인상을 알리면서 상인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의 소극 행정을 지적하는 원망 어린 청원도 제기됐다. 
 

“市 행정 시민 눈높이 외면한 지 오래”
서울시 “재정 부담 커, 지원책 논의중”
전문가 “가격 개입 신중, 지원은 필요”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서울시 지하철 상가 임대료 삭감 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서울지하철교통공사(서울교통공사) 임차인 홍○○라고 밝힌 청원인은 사자성어 ‘각득기소(各得其所·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된다)’를 언급하며 “모든 것은 반드시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 사람 한 명이 바뀌었을 뿐인데, 전(前) 시장의 부재로 서울시 행정이 시민의 눈높이를 외면한 지 오래”라고 성토했다. 
 
홍씨는 “대구에서 코로나가 확산할 때 민간의 착한 건물주가 임대료를 반값으로 해주자 서울시가 공공 임대시설의 임대료를 50% 감면해줬다”며 “그런데도 고정비용을 이기지 못해 문 닫는 영업장이 속출하고 삶 자체가 송두리째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런데도 서울교통공사는 수없이 많은 자영업자를 외면하다 못해 서울시에서 전달받지 못했다는 앵무새 같은 답변만 반복하다 임대료 50%를 다시 인상했다”며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탁상행정의 표본이라 할 만큼 경직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공직자의 본분이 시민과 국민을 위해 존재할 때 저항에 부딪히지 않는다”며 코로나 재난이 끝날 때까지 인상한 임대료 50%를 감면해달라고 촉구했다. 이 청원에는 9일 오후까지 790여 명이 동의했다. 
 
※청원글 전문 보기 클릭이 안 될 시 www1.president.go.kr/petitions/592448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 지하철 상가 상인이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올린 임대료 인하 촉구 청원.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한 지하철 상가 상인이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올린 임대료 인하 촉구 청원.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서울시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생전인 지난 2월 말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영세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서울시와 시 투자·출연기관이 보유한 지하도·지하철·문화시설·유통시설 등에 입점한 상가에 대해 2~7월 임대료를 50% 낮춰주고 이를 8월 말까지 납부하면 된다고 밝혔다. 
 
당시 박 전 시장은 “서울시는 형평과 공정을 기치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이런 조치가 민간 임대사업자들의 착한 임대료 운동으로 확산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당초 약속했던 임대료 인하 기간이 끝나자 다른 조치 없이 임대료는 원상태로 돌아갔다. 서울시내 지하도 상가 상인 1500여 명은 탄원서를 냈지만 서울시는 재정 부담이 크다며 지원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중구 소공지하도상가에서 도자기 상점을 운영하는 정인대(66) 전국지하도상인연합회 이사장은 “소공지하도상가 140개 점포 중 100개는 휴업 중”이라며 “지금 임대료를 원래대로 되돌리면 견디지 못하고 다 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이사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하도 답답해 점심 먹으면서 상인들과 소주 한잔하고 있다”며 “운영하는 가게가 외국인 전문상가라 지난 1월부터 매출이 전혀 없다”고 하소연했다. 인근 상점 3곳은 폐업했고 임시로 문을 닫은 상가 주인들은 택배나 배달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간다고 했다. 
9일 오후 한 낮인데도 서울 중구 소공지하도상가 일부 점포가 코로나19로 폐업한 모습. 문에는 공실 점포 입찰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 전국지하도상인연합회]

9일 오후 한 낮인데도 서울 중구 소공지하도상가 일부 점포가 코로나19로 폐업한 모습. 문에는 공실 점포 입찰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 전국지하도상인연합회]

 
정 이사장은 “소상공인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서울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시장이 없으니 대행 체제에서 누구도 책임을 안 지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지난 3월 말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법적으로는 상인 개개인이 임대료 감면을 신청해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증명되면 감면이 가능하다며, 전체 상가에 대한 공식적 지원 방향을 곧 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시설공단이 운영하는 DDP패션몰에서는 갱신 시기가 된 일부 상가가 6.4%의 임대료 인상 고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료가 원상복구된 데에 이어 더 오른 것으로 상인들의 체감 인상률은 훨씬 높다. 
 
DDP패션몰이 위치한 동대문 상가 관계자는 “동대문 패션몰 매출이 평균 90% 줄었다”며 “적자 행진에 폐업이 줄을 잇고 있어 임대료를 올리면 칼부림 날지 모른다고 할 만큼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공단은 지난 7월 28일 1차로 14개 업체에, 지난달 6일 137개 업체에 임대료 인상을 고지했다. 서울시는 규정대로 했다는 입장이다. 공유재산은 매년 공시지가를 반영해 사용료를 정하는데 최근 공시지가가 많이 올라 인상 폭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임대료 논란에 관해 서울시 관계자는 “워낙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이라 임대료 인하 기간을 늘릴지, 다른 방식으로 지원할지, 그냥 규정대로 갈지 등을 논의하고 있다”며 “구체적 내용은 아직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서울시 관계자는 인하 기간 연장에 부정적 전망을 내비쳤다. 이 관계자는 “상반기에 소상공인에 140만원 현금 지원을 한 데다 공공상가는 민간상가보다 임대료가 싼 편이라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무엇보다 재정 여력 상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고 했다.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연합뉴스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임대료 같은 가격에 개입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면서도 상인들에 대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몇 달씩 문을 닫는 어려운 상황이니 갱신 시 1년 치 임대료를 한 번에 정하기보다 한두 달 임시 협약을 하고 추이를 보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는 “규정을 조례 등으로 수정할 수 있는 정치권에서 논의가 시작돼야 할 것”이라며 “임대료를 원상태로 복구하되 다른 방식의 보조금이나 바우처를 한시적으로 지급하는 등 주의 깊은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권한대행이 전임 시장의 이념을 바탕으로 좀 더 적극 행정을 해도 될 사안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인호 서울시의회 의장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서울시 공유재산 점포에 대해 인상된 최종 임대료를 다시 반값으로 몇 개월이라도 유예한다면 소상공인·자영업자 여러분께 큰 위로가 될 것”이라며 “입법적·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면 서울시의회가 신속하게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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