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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수술 받고도 지팡이 깎은 92세 할아버지…또 1000개 만들어 기부

중앙일보 2020.09.09 17:09

귀 안 들리자 시작한 지팡이 만들기 

2018년 충북 보은군 산외면에서 서재원 할아버지가 자신이 만든 지팡이를 소개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8년 충북 보은군 산외면에서 서재원 할아버지가 자신이 만든 지팡이를 소개하고 있다. [중앙포토]

 
암을 극복한 92세 할아버지가 자신보다 어려운 노인들을 돕기 위해 손수 만든 지팡이 1000개를 기부했다.

충북 보은 서재원씨 9일 대한노인회에 기탁
2015년부터 홀로 지팡이 만들어 나눔 실천

2월 구강암 재발, 치료 끝나자 지팡이 제작
서씨 “몸 허락하는 한 지팡이 계속 만들것”

 
 충북 보은군 산외면에 사는 서재원(92) 할아버지는 지난 3월부터 6개월간 직접 제작한 ‘장수 지팡이’ 1000개를 9일 대한노인회 충북연합회에 전달했다. 이번에 기탁한 지팡이는 서씨가 은행나무와 괴목나무 등 가볍고 튼튼한 나무를 선별해 밤낮에 걸쳐 만든 것이다.
 
 서씨는 청력이 급격히 나빠진 2015년부터 홀로 나무지팡이를 만들고 있다. 점점 귀가 들리지 않아 지금은 옆에서 큰 소리를 말해야 겨우 들을 수 있다. 서씨는 “몸은 성한데 귀가 잘 들리지 않아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지팡이를 만들 게 됐다”며 “지팡이 만드는 게 숙달이 되면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무료로 나눠줘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2015년 보은군 노인대학과 보은농협, 마을 주민 등에게 지팡이 205자루를 선물한 뒤 지금까지 각종 단체에 3700여 개를 기증했다. 이런 선행이 알려진 후 주변에서는 서씨를 ‘지팡이 할아버지’로 부른다.
 
대한노인회 충북연합회는 9일 장수지팡이를 전달받는 자리에서 서재원(가운데) 할아버지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사진 보은군]

대한노인회 충북연합회는 9일 장수지팡이를 전달받는 자리에서 서재원(가운데) 할아버지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사진 보은군]

모든 공정 혼자서…5년간 3700개 기부 

 이번에 기부한 나무지팡이 1000개는 서씨가 구강암을 극복하고 나서 만든 것이라 더 의미가 있다. 10년 전 구강암 진단을 받은 서씨는 지난 2월 초 병이 재발해 수술을 받았다. 아들 서동식(66)씨는 “암이 턱까지 전이돼 턱뼈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으셨다”며 “식사를 하기도 힘드신데 보름 정도 입원하신 뒤 3월부터 다시 지팡이 만드는 일에 몰두하셨다”고 했다.
 
 1928년생인 서씨는 젊은 시절 목수 일을 했다. 책상과 장롱 등 가구를 직접 만들어 판매할 정도로 나무 다루는 솜씨가 좋았다. 한번 눈에 익힌 물건은 밑그림만 대강 그려놓고 제작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팡이를 만드는 법도 따로 배운 게 없다. 제재소를 돌며 눈에 띄는 나무가 있으면 틈틈이 구해뒀다가 장에서 파는 지팡이를 흉내 내 만들었다.
 
 아들 동식씨는 “지팡이 손잡이는 단단한 주목나무를 쓰고, 지팡이 대는 밤나무, 은행나무, 피나무 같은 가벼운 재질을 여러 번 다듬어서 제작하신다”며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제재소를 다니실 수가 없어서 집 근처에 심은 나무를 베다가 지팡이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서재원 할아버지가 충북 보은군 산외면 자택에서 지팡이를 만들고 있다. [중앙포토]

서재원 할아버지가 충북 보은군 산외면 자택에서 지팡이를 만들고 있다. [중앙포토]

“노인도 재능 활용하면 지역사회 보탬” 

 서씨는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무거운 전기톱과 공정에 사용되는 그라인더·대패·끌·쇠망치 등 30여 개 공구를 직접 다룬다. 원목을 두께 10㎝ 송판으로 잘라낸 뒤 수십번의 대패질을 거쳐 지팡이 대를 다듬고 나무망치와 끌을 이용해 지팡이 손잡이를 만든다.
 
 완성된 지팡이는 길이에 따라 ‘150’, ‘155’, ‘160’, ‘165’ 등 숫자를 적어 10개씩 묶음으로 보관한다. 숫자 ‘160’에 해당하는 지팡이는 키가 160㎝인 노인이 사용하도록 맞춰졌다. 서씨는 “노하우가 없던 초창기에 눈대중으로 지팡이를 만들어서 키가 큰 사람은 사용이 어려웠다”며 “키 155~165㎝용 사이즈 지팡이를 가장 많이 만든다”고 했다.
 
 이번에 기증한 지팡이는 기존과 달리 손잡이에 못을 달아 대에 깊게 고정해서 부러지지 않도록 제작했다. 서씨는 “볼품없는 나무가 여러 번의 공정 끝에 쓸모있는 지팡이가 되듯 나이 많은 노인도 재능을 잘 활용하면 지역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며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지팡이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보은=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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