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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쓰지도 못할 금덩어리 쌓아두고 웃으면 가짜 부자

중앙일보 2020.09.09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57)

얼마 전 은퇴한 직장 후배는 직장인들 대부분이 은퇴 후 새로운 직업을 갖기 전에 겪는다는 소득 크레바스를 경험하는 중이다. [사진 pixabay]

얼마 전 은퇴한 직장 후배는 직장인들 대부분이 은퇴 후 새로운 직업을 갖기 전에 겪는다는 소득 크레바스를 경험하는 중이다. [사진 pixabay]

 
“선배님, 저 돌아버릴 것 같아요.”
“아니 왜, 무슨 일 있어?”
“퇴직 후 벌이는 없고 하루하루 나가는 돈은 많고,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걸 보면 미칠 것 같아요. 피가 바짝바짝 마른다니까요.”
“(잠시 침묵). 걱정하지 마. 진짜 부자로 사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까.”
 
얼마 전 은퇴한 직장 후배와 통화한 내용이다. 직장을 희망퇴직으로 그만둔 후 1년여 지나 대부분이 은퇴 후 새로운 직업을 갖기 전에 겪는 소득 크레바스를 경험하는 중이었다. 누구나 건너야 할 강이고, 나 또한 그런 소득의 단절에서 오는 절망감과 암담함을 경험했다. 선배라는 사람이 길을 가르쳐 주거나 하다못해 격려는 못 할망정 뜬구름 잡는 얘기를 했으니 후배가 당황했을 법하다. 진짜 부자라니? 아니 부자에도 진짜, 가짜가 있나? 있다. 부자를 일컬어 알부자, 졸부, 떼부자, 거부, 갑부 등의 표현은 있지만, 이제껏 진짜 부자, 가짜 부자라는 표현은 들어본 바가 없다.
 
그런데 은퇴 후 10년, 이제까지의 경험과 최근 읽은 어느 책을 토대로 판단한다면 진짜 부자, 가짜 부자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진짜 부자와 가짜 부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솝 우화를 들어보자. 어느 부자가 돈만 생기면 금덩어리를 사서 뒷 마당에 파묻고 매일 이를 바라보며 행복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인이 이를 몰래 훔쳐보고는 금덩이를 모두 파내 들고 줄행랑을 놓았다. 이튿날 금덩이를 보러 갔던 부자가 금덩이가 몽땅 없어진 걸 보고 대성통곡을 하니 지나가던 행인이 사연을 듣고 “통곡할 일도 아니네요. 어차피 쓰지도 못할 금덩인 걸. 이제 돌덩어리를 가득 채우고 그를 보고 행복해하면 되겠네요”라고 했다. 진짜 부자와 가짜 부자는 무엇을 얼마나 많이 벌고, 쌓아 놓았냐가 아니라 무엇을 벌어서 그를 얼마나 보람차고 의미 있게 쓰고 행복해하느냐에 달려있다 하겠다.
 
인생 2막을 보낸 직장을 그만둔 후 나의 벌이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더구나 코로나바이러스로 사업이 멈춰 수입이 거의 없다 보니 쪼들린 생활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수입이 많던 직장생활보다 지금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모든 걸 포기하면 그럴까? 맞다. 욕심을 포기하면 되더라. 거기다가 쓰임에 대한 관점을 바꾸니 작지만 의미 있는 소비가 나를 더욱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남부럽지 않은 부를 축적하고도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 보이지도 않는 내일의 부유함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사람, 부를 쌓고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세상을 뜨는 사람은 가짜 부자다. [사진 pixabay]

남부럽지 않은 부를 축적하고도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 보이지도 않는 내일의 부유함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사람, 부를 쌓고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세상을 뜨는 사람은 가짜 부자다. [사진 pixabay]

 
진짜 부자는 수입이나 재산의 양에 있지 않고 이를 얼마나 보람차고 의미 있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평생을 모아 남부럽지 않은 부를 축적하고서도 늘 목말라하고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 보이지도 않는 내일의 부유함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사람, 많은 부를 쌓아놓고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세상을 뜨는 사람, 모든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나이가 들어서는 자식들로부터 외면받고 외로움과 박탈감에 치를 떠는 사람은 가짜 부자다. 
 
반면 불확실한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사람, 자식에게 거저먹는 자세를 버리고 삶을 개척하고 영위하는 방법을 유산으로 남겨주는 사람, 나만의 욕심에 안달하지 않고 함께 사는 사회를 구현하면서 거기서 존경과 행복을 누리는 사람, 이런 사람이 진짜 부자임을 여러 사례가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 부자는 버는 양에 있지 않고 쓰는 질에 있다고 하겠다. 물질적 부보다는 정신적 부를 택함이 진짜 부자의 자세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설파한 예수나 무소유를 덕으로 삼은 법정 스님이나 진정한 부자가 아니었을까?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를 보면 더욱 확연하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으로서 물질적 부를 버리고 정신적 부만을 추구하기가 쉽지는 않다. 물질적 부와 정신적 부를 동시에 누리는 진짜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다. 바로 가수 션이 아닐까. 가수 션은 자신은 기부한다고 쓰는 데 날이 갈수록 버는 게 더 많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자신만의 영달을 위해 생활하는 사람의 주위에는 온통 빼앗아 가려고 하는 사람들만 모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기부하는 사람의 주위에는 늘 서로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마련이다. 내가 인생 2막에 잡은 직장은 우리나라에서 급여 수준이 제일 높은 회사였고, 상당한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생활했으면서도 왜 매일 불안하고 모자라는 듯한 결핍감을 느끼며 살았을까?
 
그런데 이젠 인생 3막,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이웃과 함께하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더니 마음은 오히려 부자가 된 듯하고 조금 모자라더라도 그럭저럭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이 행복감을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나만을 위한 욕심을 내려놓고 함께 사는 사회의 일원으로 서로 돕고 살자는 자세가 인생 2막에서 가졌던 가짜 부자의 속성을 버리게 했다. 거기에 더해 내가 내민 손에 이웃이 더 많은 것을 채워 주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다행스럽게도 직장 후배는 소득 크레바스 기간을 진짜 부자로 사는 법을 배우는 기간이라고 한 내 말뜻을 이해하고 인생 3막을 멋지게 펼쳐가고 있다. 진짜 부자가 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아니, 설사 어렵다고 해도 인생후반부에는 진짜 부자로 살아야 한다.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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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종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필진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 봉사는 자기애의 발현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남에게 봉사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연대가 줄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봉사는 나를 필요로 하는 대상을 찾아,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내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봉사다. “봉사하라, 봉사하라! 오래 가려면 함께 하자”고 외치는 필자의 봉사 경험을 통해 봉사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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