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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불꺼진 산속 집에 홀로 남은 날 지켜준 강아지

중앙일보 2020.09.09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57) 

태풍 ‘마이삭’으로 큰 나무 뿌리가 뽑혀 잘려나갔다. 도시에 살 땐 뉴스에서만 보던 피해 상황이 자연과 함께하는 시골살이에선 참 많은 시련을 안겨주는 현실이 된다. [연합뉴스]

태풍 ‘마이삭’으로 큰 나무 뿌리가 뽑혀 잘려나갔다. 도시에 살 땐 뉴스에서만 보던 피해 상황이 자연과 함께하는 시골살이에선 참 많은 시련을 안겨주는 현실이 된다. [연합뉴스]

 
며칠 전 ‘마이삭’ 태풍으로 마당에 있던 사과, 대추는 다 떨어지고 큰 나무 몇 그루도 뿌리가 뽑혀 잘려나갔다. 어수선한 마음으로 살아남은 나무에 지주대를 박아 묶어 보지만 몇 초의 순간 바람은 말로 표현이 안 될 만큼 위력이 커진다. 도시에 살 땐 뉴스에서만 보던 피해 상황이 자연과 함께하는 시골살이에선 참 많은 시련을 안겨주는 현실이 된다.
 
볼라벤 태풍이 우리 동네를 관통했다. 두 동의 긴 하우스가 다 결딴났다. 그나마 바람이 지나가기 직전 아까운 비닐을 커터 칼로 죽 그어 철골 뼈대는 살려냈다. 이웃 여러 하우스 동은 마치 용트림하듯 철골이 휘어 솟아 올라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비, 매미, 볼라벤 등은 내 시골살이 적응력과 삶의 이력을 쌓게 해 준 이름이다.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에 내려온 2005년 여름 어느 날이다. 청량산 뒷산 어느 종중의 수만 평의 산 가운데 비어있는 재실에 잠시 살았다. 재실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을 말한다. 700고지 산꼭대기에 집 한 채. 남편은 ‘나는 자연인이다’ TV 프로그램 주인공처럼 좋아했다. 살려고 간 곳이 아닌 잠시 휴양하러 간 거라 따라 들어간 나도 얼마간의 불편은 감수할 수 있었다. 요즘은 어디든 사람이 산다고 하면 전기도 넣어주고 길도 만들어주는 등 최소한의 편의 시설을 설치해준다. 이전엔 스무 집도 넘게 살던 마을이다. 십년 동안 사람이 떠난 곳에 살러 들어간 한 가구를 위해 전기를 연결해주었다.
 
남편은 아궁이에 불을 피우며 나에게 불 쇼를 보여준다고 불렀다. 장작더미를 켜켜이 밀어 넣고 휘발유를 붙여 던졌다. 펑 하는 소리가 크게 났다. [연합뉴스]

남편은 아궁이에 불을 피우며 나에게 불 쇼를 보여준다고 불렀다. 장작더미를 켜켜이 밀어 넣고 휘발유를 붙여 던졌다. 펑 하는 소리가 크게 났다. [연합뉴스]

 
며칠 후 남편은 장난기가 발동해 아궁이에 불을 피우며 나에게 불 쇼를 보여준다고 불렀다. 장작더미를 켜켜이 밀어 넣고 휘발유를 붙여 던졌다. 펑 하는 소리가 크게 났다. 순간, 회오리 춤 쇼를 하며 방을 덥히고 굴뚝으로 사라져야 할 불이 로켓처럼 도로 달려 나와 순식간에 남편을 덮쳤다. 정말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었다. 허둥지둥 불을 끄고 나니 머리부터 팔다리까지 맨살이 드러난 곳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119에 구조요청을 하고 산을 미끄러지다시피 내려가다 119와 마주쳤다. 병원에 도착한 남편은 응급처치 후 미라가 되어 걸어 나왔다. 상처가 덧나면 안 되므로 입원을 해야 한단다. 난감 그 자체였다. 아직도 아궁이엔 장작이 타고 있을 것이다. 두 달 된 어린 강아지도 혼자 있다. 깊이 생각할 겨를 없이 남편을 입원실에 뉘어 놓고 산 입구까지 택시를 타고 내려 한 시간을 걸어 집에 도착했다.
 
들어온 지 열흘 만에, 그것도 산꼭대기 집에서 혼자 자야 하는 상황이 되니 철부지 같은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하필 그날 태풍 ‘나비’도 비바람을 몰고 쳐들어 왔다. 낮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견딜 만한데 해가 지고 나서부터가 문제였다. 가장 힘든 것은 화장실 문제. 화장실을 짓는 중에 우선 급한 일은 뒷산에 호미를 들고 올라가 구덩이를 파고 해결해야 했다. 세찬 바람에 전기까지 나가버렸다. 마당의 긴 장대에 묶여 흐릿하게나마 집을 비추며 서 있던 30촉짜리 백열등도 넘어져 꺼지고 암흑 같은 밤에 온갖 물건이 날아다니며 귀신 소리를 냈다. 정말 무서운 밤이었다.
 
그날 내게 힘이 되어 준 것은 양초와 강아지였다. 비는 억수같이 퍼붓고, 바람 소리는 귀신 곡한다는 말을 연상하게 했다. 비를 홀딱 맞고 호미로 구덩이를 파며 귀곡 산장 영화 찍는 듯했던 부끄러운 순간에도 강아지는 내 앞에 빤짝이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어 주었다. 컴컴한 산길을 300m 내리달아 당집(무속인들이 가끔 기도하러 올라와서 음식이랑 초, 소주 등을 놓고 간다)에서 양초를 꺼내 들고 올 때 비를 맞으며 함께 달려주고, 긴긴밤 촛불을 켜놓고 두려움에 혼자 주절거릴 때도 밤새 들어주던 녀석이었다. 그땐 한 개의 양초, 한 마리의 작은 동물이 사람보다 더 위대했다.
 
 
며칠 후 남편을 퇴원시키러 병원에 가니 남편과 똑같은 미라의 모습으로 또 한 분이 입원해 있었다. 그분도 불장난하다가 화상을 입고 온 거다. 모 농협 조합장이었다. 남자들이란 나이가 들어도 철부지 개구쟁이다. 여기에다 비밀스레 이야기하는데 나이든 남편은 함께 가는 든든한 친구이며 동반자이지 믿고 의지하지는 말자. 하하. 그래도 그날의 인연으로 많은 도움을 줘 시골서 터 잡고 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긴장을 내려놓고 지나간 고난의 일기를 문득 들춰본다. 코로나에, 연이은 태풍에 몸과 마음이 어수선하다. 고난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힘든 내일도 잘 지나가길 기원한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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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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