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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조국의 침묵 303번, 협소한 법으로 공직윤리 버렸다"

중앙일보 2020.09.09 00:51 종합 24면 지면보기

303번의 묵비권 행사한 조국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형사소송법 148조를 따르겠습니다.” 정경심 교수의 재판에서 조국 전 장관은 이 말을 300번 넘게 반복했다. 그가 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형소법 148조에 따르면 증인은 ‘친족 또는 친족관계에 있는 자’가 ‘형사소추 또는 공소 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사실이 발로될 염려 있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협소한 법 잣대로 윤리 증발시키고
법리가 적용되는 곳엔 윤리 들이대
법 지식을 가족 불·탈법 변호에 이용
공직 임명의 윤리적 기준 회복해야

사인이냐 공인이냐
 
하지만 증언을 거부하면 유죄판결을 받을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진실을 감춘다는 의심을 사기 쉽다. 행여 그럴세라, 이를 ‘편견’으로 규정하며 재판부를 향해 유죄 심증을 하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권리 행사에 편견이 존재한다. 다른 자리도 아닌 법정에선 그런 편견이 작동하지 않길 바란다.”
 
이 꼼꼼함이 불편함을 주는 것은 그가 사인(私人)이 아니라 공인(公人)이기 때문이리라. 그는 검찰 수사에서도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때 그는 “이제 검찰의 시간은 끝나고 법원의 시간이 시작됐다. 재판에서 무죄를 밝히겠다”고 했다. 공인이라면, 그 약속대로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법원의 절차에 협조했어야 한다.
 
게다가 그동안 줄기차게 검찰이 ‘상상과 허구에 기초한 정치적 기소’를 했다고 주장해 오지 않았던가. 증인 신문은 그 주장을 증명할 절호의 기회였다. 지지자들도 그가 상상과 허구에 기초한 검찰의 거짓말(?)을 낱낱이 폭로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 귀한 ‘법원의 시간’을 그는 303번의 침묵으로 흘려보냈다.
 
진실을 말할 수도 없고, 위증의 죄를 무릅쓰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으니, 차라리 침묵하는 게 유리했을 게다. 그가 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으나, 그는 전직 법무부 장관이다. 그런 그가 공적 사안에 관해 진실을 밝힐 ‘공인의 책무’를 외면하고 ‘사인의 권리’ 뒤로 숨은 것은 심히 구차한 일이다.
  
법리냐 윤리냐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불법은 없습니다.”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들었다. 청문회는 유·무죄를 가리는 형사재판이 아니라 공직 후보자의 윤리적 자격을 심사하는 절차. 그런데 거기에 엉뚱하게 법의 기준을 들이댄 것이다. 애초에 윤리적으로 문제 될 게 있었다면, ‘불법은 아니니 괜찮다’고 할 게 아니라 그 직을 마다하는 게 옳았다.
 
윤리의 문제를 사법의 문제로 환원시키면 검증의 임무는 국회에서 검찰로 넘어가게 된다. 다 자업자득이니, 무리한 수사를 했다고 검찰을 탓할 일이 아니다. “그깟 표창장 한장”이라도 그것을 위조한 이가 공인이라면 사건의 중요성은 달라지는 법. 게다가 그는 일개 장관을 넘어 집권 여당의 차기 주자 아니었던가.
 
며칠 전 그가 진보학자 강수돌의 말을 인용했다. “조 전 장관의 가족들은 현 교육 시스템의 문제와 모순을 알고는 있었겠지만 그 이상 몸부림을 치진 않은 듯하다. 오히려 입시에서 평가에 도움되는 것이라면 가능한 한 많이 모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것 같다.” 윤리를 법으로 환원시키더니, 위법은 윤리적 일탈 정도로 치부할 태세다.
 
제 인맥을 동원해 자식의 스펙을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 불법이 아니라 부덕에 해당한다. 그런데 정경심 교수가 어디 그 ‘부덕’ 때문에 기소당했던가? 거기에 문서 위조라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지. 이는 윤리적 비난이 아니라 법적 처벌을 받아 마땅한 위법이다. 정유라도 면접장에 가짜 메달을 들고 오지는 않았다.
  
인지 부조화
 
공직윤리는 불법이 아니라는 법적 잣대로 무력화하고, 문서 위조의 불법성은 윤리적 일탈로 호도해 빠져나간다. 윤리가 필요한 곳에는 법리를 들이대고, 법리가 적용되는 곳에는 윤리를 들이대며 제 편할 대로 모드를 바꾸는 셈이다. 법을 전공한 학자가 윤리와 사법의 차이를 모를 리 없다. 고로 이 혼동은 의도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 혼동은 내면의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검증의 과정에서 그의 양면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의식의 진보성과 존재의 수구성. 이 명백한 모순을 자신에게 감추려면 언어를 혼란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밖으로 내세워 온 정의로운 진보학자의 자의식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지지층을 결속하기 위한 기동이기도 하다. 민주당의 김종민 의원은 얼마 전 ‘조국 흑서’를 “100권을 내도 여론 40%는 ‘조국 린치’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 어떤 사실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세뇌된 지지층. 이들만 있어도 통치가 가능하니, 나머지 60%가 뭐라 하든 궤변으로라도 이들 지지층을 계속 허구의 세계에 잡아놓겠다는 생각이다.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혐의를 전면 부정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상상과 허구’라던 검찰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 세뇌로 다져놓은 이 콘크리트에 균열이 생긴다. 그래서 혐의를 조금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리라. 물론 그게 양형에 유리할 리는 없다. 따라서 그것은 법적 대응보다는 정치적 기동에 더 가까워 보인다.
  
개천의 법꾸라지
 
‘조국백서’의 저자 최민희 전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애초 조국 전 장관이 대한민국의 초엘리트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초엘리트로서 그 초엘리트만의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었을 테고, 그 자식들은 그 초엘리트들 사이에 어떤 인간관계, 불법적이지는 않지만 어떤 특혜 같은 것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은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특혜 같은 것’을 정유라에게 준 죄로 이대 교수들은 줄줄이 구속됐다. 시험문제를 유출한 교감은 3년 6월의 중형에 처해졌다. 그 딸들은 미성년자인데도 실형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반면, 위조 사문서를 행사한 조민은 성년임에도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초엘리트의 특권이 인정되는 신분사회가 된 것이다.
 
조국 교수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하늘의 구름 쳐다보며 출혈 경쟁하지 말고 예쁘고 따뜻한 개천 만드는 데 힘을 쏟자!” 그러더니 제 딸만 용 만들어 구름 위로 보내놓고 법꾸라지가 되어 개천물마저 흐리고 있다.
 
정경심 교수를 위해 그는 전직 대통령보다 호화로운 변호인단을 꾸렸다. 돈 없고 못 배운 이들은 변호사 살이 돈 없어 살인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수십 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진보적 법학자의 법 지식은 원래 이들을 위해 쓰여야 했다. 그 지식을 그는 자신과 가족의 불법·탈법·편법을 변호하는 데에 쓰고 있다.
  
공직수행의 윤리적 차원
 
형사재판은 기준이 엄격하다. 합리적 의심을 모두 배제하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아무리 혐의가 짙어도 무죄가 나올 수 있다. 303번의 묵비권은 이를 노리는 전략적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이 법꾸라지 전략으로 사모펀드 관련 혐의만 벗으면, 그것으로 다른 모든 행위에 대한 윤리적·정치적 책임도 벗을 수 있다는 계산이리라.
 
거기에는 가족의 위법에 대한 미안함도,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책임감도, 감시에 실패한 민정수석의 자기 반성도 없다. 그에게는 그저 사인으로서 자신과 가족이 가진 법적 권리에 대한 의식만 있을 뿐이다. 아내가 기소됐을 때 그가 했던 말을 기억해 보라. “지금부터 제 처는 형사절차상 방어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나라를 두 쪽 내놓고도 사과 한번 한 적이 없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상투적 사과조차 없었다. 사과해야 할 것은 검찰과 언론이라는 식이다. 며칠 전에야 겨우 “가족의 일상에서는 경쟁 공화국의 논리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며 자신의 ‘강남성’을 ‘성찰’했지만, 이마저도 실은 ‘강남성이 위법은 아니잖냐’는 항변에 가깝다.
 
이 모든 것은 그에게 ‘공적’ 마인드란 눈곱만큼도 없음을 보여준다. 애초에 그는 공직을 맡아서는 안 됐던 것이다. 그런 그가 검증의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았다. 시스템이 망가졌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를 복구하는 것이다. 재판 결과는 그와 그의 가족의 사적 관심사일 뿐. 그들에겐 확인된 사실에 따라 합당한 책임을 지우면 그만이다.
 
위법이 아닌 모든 것이 윤리적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그와 그의 친구들의 궤변에 또다시 말리게 된다. 애초에 문제는 그가 형사재판의 협소한 기준으로 공직 윤리를 증발시킨 데서 빚어졌다. 고로 모든 관심을, 그가 없애버린 공직의 이 윤리적 차원을 회복하는 데에 모아야 한다. 그게 핵심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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